한반도 개항의 중심이자 인천상륙작전의 역사적 고장 인천의어제와 오늘 「인천광역시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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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92호 발행인 법등[구창회] 발간일 2015-11-04 신문면수 11면 카테고리 박물관순례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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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5-18 07:12 조회 3,038회본문
서울의 서쪽 관문인 인천은 역사의 한 가운데선 많은 이야기를 지닌 도시다. 인천은 1883년 대한제국이 제물포를 개항함으로 한반도의 신문물 중심이 됐다. 또한 6.25 전쟁에서는 연합군 사령관 멕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의 판도를 뒤집은 역사를 지 닌 고장이다.
인천광역시립박물관은 1946년 4월 인천시 중구 송학동에 개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박물관이다. 인천지역의 향토사와 문화유산을 조사, 연구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여,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자는 취지로 설립되었습니다. 19에년 서해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연수구 옥련동 청량산 자락에 고인돌을 형상화한 현재의 건물로 신축 이전하였다.
지금도 다양한 사회교육프로그램과 활발한 조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박물관 바로 옆은 인천상륙 작전기념관이 있어 6.25 전쟁의 참상과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교육의 장소를 제공한다.
선사시대의 인천부터 지금까지
역사1실
박물관 현관을 들어서면 먼저 역사실을 관람할 수 있다. 선사시대로부터 고려 말까지 인천의 주요 유적과 유물을 전시한다.특히 문학산 일대와 계양산 주변이 선사시대로부터 통일신라 시대까지 문화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계양구 동양동에서 발굴 조사된 삼국시대 초기의 토광묘를 비롯하여, 인천의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인주 이씨 가문의 '이자연 묘지명1 등의 다양한 자료를 볼 수 있다. 또한 경서동 출토 녹청자를 비롯하여 강화 선두리 출토의 도기와 창후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도자류를 통하여 고려 시대 도자문화의 화려함을 느낄 수 있다.
역사2실
조선시대부터 8.15 광복 이전까지 인천의 자료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남동구 도림동 파평 윤씨 소남 종택의 고문서를 통하여 주자성리학에 충실한 사대부문화가 존재 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1883년의 개항을 기점으로 밀려드는 서구문물의 한가운데 서 있던 인천을 통해 시련의 한국근대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1918년 완공된 인천항 도크와 일제강점기 아래 최대 호황을 누리던 시기 인천의 거리모습은 또 다른 볼거리를'제공한다. 특히 조수간만의 차이가 큰 인천항의 선박 출입항 과정을 모형으로 제작하여 청소년들에게 체험의 공간을 제공한다.공예실
원저단경호, 광구병 등의 삼국시대 토기로부터 고려청자를 거 쳐 조선백자와 분청사기, 그리고 철화와 청화백자의 아름다운 선과 색상 등 우리나라 도자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또한 조선 시대에 제작된 불상과 보살상 각 1구씩과 중국 명대에 제작된 청동관음보살상이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명대 관음보살상은 제작시기와 발원내용을 소상히 알 수 있는 명문이 남아있는 흔치 않은 작품입니다. 조선후기 사대부가의 여러 목제품도 공예실에서 만날수 있다.서화실
조선시대의 회화와 고문서를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다. 산수화, 화조화, 사군자 등 다양한 장르의 회화를 선보인다. 강세황; 김홍도, 이하응, 정수영 등 대가들의 작품들을 눈여겨 볼만하다. 서화실의 한편에는 조상들의 철학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고문서류와 대각국사 의천의 탑비, 북관대첩비의 탁본 등도 전시되고 있다.
기증실
1946년 개관 때로부터 현재까지 인천광역시립박물관에 기증, 기탁된 유물을 선별하여 전시하였다. 특히 인천 태생으로 한국 미술사의 개척자적 업적을 쌓은 우현 고유섭(1905~1944) 선생의 유품과 주요 저작물을 비롯하여, 서구 공촌동에서 출토된 숙의 문씨 묘지석 2매 등 귀중한 유물들을 볼 수 있다.
인천 사람 우현 고유섭 선생과 한국 미술사
인천광역시립박물관 광장에는 한 젊은 학자가 도자기를 복있는 동상이 하나 서 있다. 바로우현 고유섭 선생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 미술사학의 문을 연 선구자다.1905년 인천에서 출생한 선생은 1925년 서울 보성고등보통 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철학과에서 미학과 미술사를 전공하였다. 대학에서 미학 및 미술사에 입문한 선생은 리글학파와 뵐플린학파의 실증적인 학문에 매료되었다. 또한 서양미술사, 동양미술사, 중국미술사, 일본미술사 등의 미술사 강의를 접하면서 조선미술사 연구에 원대한 포부를 키운다.
1930년 졸업 후 경성제국대학 미학연구실의 조수로 근무하면서 국내의 중요한 고대 미술품의 조사와 연구에 매진한다. 중국, 일본, 인도와 구별되는 한국 특유의 미의 본질을 찾고자 한국의 불교 조각과 탑 연구, 고구려 미술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1933년 3월 개성부립박물관 관장으로 부임한 고유섭 선생은 10여 년간 박물관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유물의 자료수집과 연구, 유적의 답사, 유물의 실견에 매진하였고 방대한 양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때 그의 미술사 연구의 초점은 전국에 분포하고 있는 석탑에 대한 연구였다. 삼국 중 백제와 신라, 통일신라 때의 석탑들을 양식론에 입각하여 체계화하였다.
사후 그의 연구결과를 모아 황수영 전 동국대 총장 등이 책으로 간행한 것이 『조선탑파의 연구』(1948년)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고대 조형을 질과 양으로 대표하는 탑파에 관한 최초의 학술적 논의이자 역작이다.
고유섭 선생은 석탑분 아니라 불교미술의 전 분야에 걸쳐 관심 을 가졌다. 특히 불교조각의 발전에 주목하였다. 1940년 발표한 「한국의 조각」에서는 처음으로 조각을 중심으로 미술사적 시기구분을 시도하였고, 각 시대별 조각의 양식적 변화와 특징을 정리하였다.
또 1930년경부터 회화사 연구를 시작하여 규장각 장서를 중심으로 회화에 관한 문헌을 발췌하는 작업을 5-6년간 진행하였다. 이는 사후에 『조선회화집성」으로 출간되었다. 조선시대 회화사연구는 화론의 집성에서 시작하여 안견, 강희안, 정선, 김홍도등 화가별 연구에까지 이르러 한국회화사의 기틀이 되었다. 고려시대 회화에 관한. 연구들은 지금도 능가하기 힘든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고려청자를 중심으로 한 도자기 연구에도 관심을 가져 20여 편의 논문을 남겼다.
고유섭 선생은 이밖에도 우리 미술사 전반에 관한 글을 꾸준히 발표하였고 미술사 기초자료 수집에 남다른 열의를 보였다. 안타깝게도 1944년 40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하였다.
선생이 생전에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한 글들은 죽은 뒤 제자이던 황수영, 진홍섭이『한국미술사급미학 논고』(1963년) 우『조선화론집성』(1965년) 우『한국미술문화사논총』(1966년) .『송도의고적』(1977년)등으로간행하였다.
고유섭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국내에서 우리 미술사와 미학을 본격적으로 수학한 학자이자, 우리 미술을 처음으로 학문화한 학자로서 높이 평가된다. 그의 우리 미술사에서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에서 ‘우현상’을 제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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