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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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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92호 발행인 법등[구창회] 발간일 2015-11-04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추계강공강의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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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5-18 06:02 조회 2,68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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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의식은 전오식과 제육식인 의식, 생명에 대해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말나식과 업종자의 보존처로서의 아뢰야식이 있다.


인간의 지식으로 알 수 없고 인간의 능력 으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을 불가사의라고 한 다.《화엄경》과《대지도론》에서는 5대 불가사의를 말하면 서 ①중생다소불사의 ② 용력불사의 ③선정력불사의 ④불법력불사의와 함께 ⑤업력불사의를 들고 있다. 업은 우리의 얕은 견식으 로는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의미이다.

불교의 업사상은 인간의 도덕적 행위와 인과관념이 결합한 것으로서 선인낙과, 악 인고과, 자업자득, 자작자수를 원칙으 로하고 있다.

인간과 우주의 현상에 대하여 ①결정론 ②우연론③무인무연론 등의 이론이 있었 는데 바라문교에서는 초보적인 인과의 사 상이 나타나 후일 윤회사상으로 발전했다. 타 종교에서는 선업과 악업의 과보로써 천 국과 지옥의 개념으로 발전시켰으나 불교 에서는 연기론에 바탕을 두고 업사상을 전 개했다.

업은 우리의 의지가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의지는 곧 마음이 며 모든 행위는 마음으로부터 이루어진다. 불교의 마음은 지, 정, 의로 나 누어지며 이 가운데에 업을 형성하는 것은 바로 의이며 이것을 사라 고한다.

내면적 의지를 사업이라 하며 이 것이 밖으로 나타났을 때 사이업이라 한다. 사업은 곧 의업이며 사이업은 구업 우 신업이 된다. 또한 모든 업은 도덕적 가치를 가지며 선,악,무기 3가지에 포함된다. 불교에서의 선은 현세와 다음 생 에서 자타의 이익과 행복을 증진하는 것이 며 괴로움을 유발하지 않는 참된 선은 반야 바라밀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스스로의 의지 로 나타나는 업은 과를 낳는데 불교에서는 이를 십선업과 십악업으로 구분한다. 또한 업은 표업과 무표업으로 나 누어지며 업의 본질은 선 우 악의 무표업이 다. 우리의 의지로부터 나타난 행위는 경 중, 선악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무표업으로 아뢰야식 속에 잔존하여 미래의 과를 초래 한다. 이것이 업종자로서 무시이래로 부터 간직되어 현재의 마음 가운 데에 잔존하여 있다.

업은 의지의 발동에 의하여 이루어 지는데 우리의 생각은 무기로서 선도 악도 아니지만 자성선의 마음이 상응하면 선의 의지가 되고 자성악의 마음이 상응하면 악 의의지가 된다.

예를 들어 자성악 가운데의 진에가 일어 나면 ①사에 상응하여 악사가 되며 ②악사로부터 갖가지 사려분별이 생기고 ③심사려에서 의지가 결정된다. ④결정사가 발동하여 구표업과 신표업으로 나타나며 이때 표업과 동시에 작용하는 의지를 동나승사라고 '한다. ⑤동발승사에 의하여 행위가 이루어 지면 신,구의 표업과 동시에 무표업이 생 겨 마음에 훈습되어 업종자를 형성한다.

업의 종류에는 공업과 타인이 대 신해 줄 수 없는 불공업이 있고, 결 과가 명료하게 정해진 정업과 결과 가 정해지지 않은 부정업이 있으 며, 인업과 만업등의 구분이 있다. 대체로 무거운 업은 정업이 되고 가 벼운 업은 부정업이 된다.

우리의 의식은 전오식과 제육식 인 의식, 그리고 생명에 대해 맹목적 으로 집착하는 말나식과 업종자의 보존처 로서의 아뢰야식이 있다. 말나식과 아뢰야 식은 항행식으로서 단멸함이 없이 무시이래로 지속되며 미래에 까지 지속한 다.

아뢰야식에는 육식으로써 받아들인 모든 것이 아뢰야식 가운데에 훈습된 명언종자가 있고 말나식의 아집이 하나 하나 훈습된 아집종자가 있으며 업종자로서의 유지종자가 있다.

우리가 죽을 때는 제육식 인 의식의 업이 끝나지 않아서 명료하게 작용하고 있는 때 인 명료심위를 거쳐 자체애위에 도달하는데 자체애위에는 지 금까지 살아온 경계에 대한 애착인 경계애, 지금까지 누려온 생명에 대한 애 착인 자체애,그리고 지금과 같은 경계에 태어나 같은 생을 누리려는 애착인 당생애가 있다. 마지막으로 아뢰 야식 자체의 업이 끝나는 불명료위에 이르게 되는데. 이 찰나에' 전생한다. 전생의 찰나에 최후까지 아뢰 야식에 붙어 떠나지 않던 말나식의 애가 연 으로 되어 아뢰야식안의 무수히 많은 업종 자 가운데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작용을 나 타냄으로써 새로운 생을 받게 된다.

우리의 생각과 언행은 모두 업종자로서 아뢰야식에 보존되어 미래의 과를 낳기 때 문에 수행을 통하여 일상생활을 제대로 살 지. 않으면 괴로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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