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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숭산 자락의 유서 깊은 선 수행 전진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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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78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6-05-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전통사찰 문화탐방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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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29 05:08 조회 1,38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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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숭산 자락의 유서 깊은 선 수행 전진도량
충량 예산 수덕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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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하늘에 빛나는 햇볕의 고상함이 물씬 풍기는 화창한 날씨, 온 세상이 울긋불긋 연노랑 꽃들로 출렁 이는 생명의 태동과 환희의 계절, 차장사이로 밀려오는 향긋한 봄바람에 너울너울 춤이 절로 난다.

서울에서 차를 타고 곧게 드러난 서해안 고속도로를 몇 분 달리다 보니 해미 톨게이트와 수덕사라는 푯 말이 보인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예산으로 들어선다. 구불구불한 시골의 길이지만 들판에는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고 농부들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 직인다. 길가에는 노란 개나리가, 산 속에는 분홍빛 진달래가 흔들리는 바람결을 타고 멀리서 찾아온 손님 들을 반겨준다.

수덕사에 다다르니 벚꽃들이 활짝 함박웃음을 머금은 채 꽃잎들을 흩 날쾨며-,환영의 찬가를 부르고,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여 아름다운 연 등이 입구의 양옆에 길게 늘어서 무명의 모든 중생들을 해탈케 하고 있다.

수덕사 일주문을 들어서니 수덕여 관이란 허스름한 초가집에 큰 간판 이 보인다. 수덕여관은 한때는 이 나라의 내노라하는 시인, 화가, 묵객 들이 드나들던 여관이다. 수덕여관에는 조선말기 여류시인이며, 문학 가인 김일엽과 나혜석이 거쳐하였으며, 이후 당대 대화가인 이응노 화백이 생활하였던 곳이다. 일엽스님은 목사의 딸로 태어나 가부장적인 사회인습에 숨막혀 하였으며, 여성. 은 남성을 위한 소모품이 아니라고 절규했고 여성은 남성을 위한 장식 물이 아니라고 부르짖으며 몸을 던져 연출한 행위 예술가이며 전위 예술가였다. 또 여성은 어머니 아니면 창녀라는 이분법적 기독교 신화에 반기를 든 용기 있는 행동가였으나 파란만장한 32년 속세의 삶을 접고 수덕사 여승으로 출가하였다.

수덕여관에는 “‘엄마가 보고 싶어 현해탄을 건너 왔다”는 열네살 앳 된 소년, 일엽스님이 일본 유학시절 일본 명문가 출신 오다 세이죠와의 사이에 낳은 사생아이며 일엽스님의 아들이다. 모정에 목말라 있는 아들에게 “나를 어머니라 부르지 말고 스님이라 불러라”라고 냉정하게 말했지만 그 소년이 잠자리에 들 때 팔베게를 해주고 젖무덤을 만지게 해주었다.”는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문을 들어서니 사천왕들이 ‘모든 중생들의 번뇌 와 마장을 버리라’고 호령하는 듯 무섭고 근엄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다. 사천왕문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  황화정루의 큰 가람이 보이고. 고풍스럽고 수 백년의 인고와 벗을 함께 해온 대웅전이 근엄하게 서있다.

수덕사는 호서지방의 금강산이라 일컫는 덕숭산자락의 유서깊은 사찰로 599년 백제 지명법사가 세운 뒤 원효대사가 다시 지었다고 전해진다. 수덕사 대웅전은 1308년(고려충렬왕 34)에 건립된 우리나라 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국보 제 49호)이며, 경내에는 유형문화재 제 103호인 3증석탑과 육괴정 문화재 자료 181호인 7층석탑, 만공선사 사리탑이 있고, 1990년 중창한 황하루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으며, 황하루 지하에는 성보박물관이 있다.

수덕사는 “홍주 마을에사는 수덕이란 도령이 있었다. 수덕고령은 훌륭한 가문의 도령이 었는데.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터의 먼 발치에서 낭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집에 돌아와 곧 상사병에 결린 도령은 수소문한 결과 그 낭자가 건너마을에 혼자사는 덕숭낭자라는 것을 알게 되어 청혼을 했으나. 여러번 거절당한다. 

수덕도령의 끈질긴 청혼으로 미침내 덕숭낭자는 자기집 근처에 절을 하나 지어 줄 것을 조건으로 청혼을 허락하였다. 수덕도령은 기쁜 마음으로 절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탐욕스런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절을 완성하는 순간 불이 나서 소실되었다. 다시 목욕재개하고 예배 후 절을 지었으나 이따금 떠오르는 낭자의 생각 때문에 다시 불이 일어 완성하지 못했다. 세 번째는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고 절을 다 지었다.

그 후 낭자는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으나 수덕도령이 손을 대지 못 하게 했다. 하지만 이를 참지 못한 수덕도령이 덕숭낭자를 강제로 끌어 안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면서 낭자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낭자의 한 쪽 버선만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고 옆에는 버선모양의 하얀 꽃이 피어 있었다. 이 꽃을 버선꽃이라 한다. 낭자는 관음보살의 화신이었으며 이후 수덕사는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고 산은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이라 하여 덕숭산 수덕사라 하였다.“는 창건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아름답게 펼쳐진 가람, 장엄하게 늘어선 연등, 덕숭산 자락의 유서깊은 기맥이 흐르고, 보이진 않지만 무릇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신 옛 선사인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의 호탕하고 자유자재한 음성을 들으며 수덕사의 경내를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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