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곳으로 건너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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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90호 발행인 법등[구창회] 발간일 2015-10-07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불교 이야기 / 칼럼 서브카테고리 명사 칼럼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시행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전 신문인 김시행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5-18 09:18 조회 2,574회본문
내가 그곳으로 가야한다. 내가 저 언덕으로 건너가야 한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의 배를 타고 선정과 반야의 다리를 건너 그곳으로 가야 한다.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인 인간은, 걸핏하면 세상만물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식으로 오만 방자한 모습을 자주 연출해 왔다. 인간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으며, 만물의 영장인 만큼 인간의 생육과 번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자기들 좋을 대로 해도 좋다는 아전인수식 해석이 역사상 최초로 벼락을 맞은 것은, 지구가 중심이 아니라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었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아홉 개의 별들 중 세 번째로 돌고 있는 작고 푸른 별이라는 발견은, 인간중심주의의 찬물을 끼얹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 이다.
태양이 뜨고 지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는 것이 아니듯이, 눈에 보이는 대로만 해석해서는 엄청난 오류를 범하게 된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보잘 것 없는 알음알이에만 기대어 불법을 해석하려 든다면, 코페르니쿠스 이전의 지구 중심주의에 빠져 있었던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
부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은 해탈에 이르고자 함이다. 그러나 자신이 건너편 저 언덕에 이를 생각은 내지 않고 언덕을 제 쪽으로 끌어당기고자’ 억지를 부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늘 내가 말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것이 깨달음의 세계와 거리가 있다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은 것이다. 그런데도 정진하기를 포기하고 마치 피안에 도달한 양 자신을 속이고 타인을 기만하는 일이 많다. 때로는 자신을 깨달은 사람으로 대접해 달라고 강요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몸과 마음을 내던져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복된 일이 찾아와 주기를 기도하고 바라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일이 잘되게 해 달라, 돈을 벌게 해 달라, 건강하게 해달라, 기도하고 빌고 호소한다. 헌금하고 시주하고 공양물을 바치고 갈구하고 애원한다. 이만큼 믿음을 표시 했으니 그 보답을 해주시오. 라고 요구하는 것 같다. 한쪽에서는 그래야만 복을 받는다고 부추기고 강요한다.
무엇을 갖다 바치든 부처님께서는 그런 것이 필요하지 않다. 본래 ‘내 것’이란 없다고 가르치신 부처님이 아닌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갖다 바쳐도 실은 아무것도 바친게 없으며, 아무것도 희생한 것이 없다. 복을 달라고 비는 기도와 헌금, 시주는 부처님을 향한 시끄러운 애걸일 뿐이다. 제 아무리 손짓하고 목청을 높여 부른다 해도 건너편 언덕이 내게 다가오지 않듯이, 부처님은'내 곁에 오지 않고 거기 그렇게 계실 뿐이다.
내가 그곳으로 가야한다. 내가 저 언덕으로 건너가야 한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의 배를 타고 선정과 반야의 다리를 건너 그곳으로 가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자의식의 죽음이라는 통행증을 구입해야 한다. 내 몸 살림에 집착하는 자의식, 내 의식 살림에 집착하는 자의식의 죽음이라는 표를 사지 않으면 안 된다. 피안으로 가는 방법은 오직 그것뿐이다. 그밖에는 어떤 통행증도 무용지물이다.
자의식의 죽음은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관념의 죽음이다. 관념의 죽음은 좀처럼 수용키 어려운 자아부정의 처절한 작업을 요구한다. 아상과 아만을 깡그리 부셔 버리는 일, 이제 더 이상 ‘나’와 '나의 것'이라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 내가 나를 부정해야 한다. 티끌 같은 찌꺼기조차도 용납하지 않는 의식의 설거지를 행해야 한다.
그것이 어렵거든 반대로 자의식을 확장하라. ‘나’라는 집착의 울타리를 타인까지 확장하고, 나아가 일체의 유정물, 무정물까자 범위를 넓혀가라. 일체 만물이 모두 다 그울타리 속으로 들어오도록 자비의 손길을 벋쳐라. 그래서 마침내 전체와 하나가 되라.‘나’는 사라지고, 보살의 대자대비로 하나 되는 순간까지 확장하라. 그것 또한 나의 죽음과 다르지 않다. 자아부정과 자아 확장은 그렇게 ‘죽음’에서 만난다. 죽어야 건너리라. 죽음으로써 살리라. 그렇게 건너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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