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봉 스님 영결식 봉원사서 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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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79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6-06-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교계소식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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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31 05:42 조회 2,706회본문
순천 선암사에서 다비식
이날 영결식에는 태고종 총무원장 운산 스님, 봉원사 주지 환우 스님, 조 계종 기획실장 동선 스님, 천태종 관문사 주지 춘광 스님(감사원장)등 각 종단 스님들과 이명박 서울시장, 강금실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이미경 국회 문광분과 위원장, 도올 김용옥 교수 등 사부대중 5백여명이 참석했다.
법주인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 기능보유자 김구해 스님(범패)의 명종 의식(염불을 통해 식을 알리는 의식)으로 시작된 영결식은 월해 총무 부장의 행장보고로 식이 진행됐다.
이어 운산 스님은 영결사를 통해“만봉 스님께서는 단청과 불상으로 불교미술의 정수인 단청기능보유자로 국내 최초의 인간문화재가 되시어 국가 주요 문화재 복원은 물론 주요 사찰의 불화단청 작업에 큰 공헌을 하신 분” 이라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한국의 불교문화를 고양함으로써 민족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타의 추종을 불 허한다”고 만봉 스님의 공적을 말했다. 또 운산 스님은 “우리 종도들도 만봉 스님의 애종정신과 스님의 가르침을 거울삼아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평소 스님의 큰 발원이셨던 전승 관 건립불사를 원만히 성취시키겠다” 고 덧붙였다.
이명박 서울시장도 조사를 통해 “훼 된 문화재라도 만봉 스님의 붓끝이 닿기만 하면 금방 만들어진 것처럼 소중한 우리 문화재로 탄생됐다”며 “스님이 국가문화재 복원에 남겨놓은 공적은 우리 후손들에게 우리 전통문화의 자긍심을 불어 넣어주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자주 봉원사를 찾아 만봉 스님을 뵈었다는 도올 김용옥씨는 “평소 붓을 놓지 않는 스님의 수행정신에 감동했다”고 운을 뗀 뒤, “태고종과 조계종의 불편한 관계를 대화로 풀 것을 당부해 온 스님의 모습에서 수행자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각계 각측의 조사에 이어 이날 영결식은 최복숙 만봉불화전승회장의 추모시와 봉원사 합창단의 조가 음성공양, 문도대표와 분향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한편 만봉 스님은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나 1916년 봉원사로 출가해 여덟살 때 금어 예운 스님의 제자로 단청 과 인연을 맺었다. 1924년 불교전문강원을 수료하고 1926년 금어자격을 취득했으며 이후 수많은 사찰과 고궁에 단청과 불화를 남겼다.
197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이 된 이래 태고종 서울교구 종무원장, 봉원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특히 1998년에는 은관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스님의 불화작품은 금강산 표훈사, 유점사, 장안사, 마연사, 서울 봉원사, 도봉산 도선사, 백련사, 보문사, 법륜사, 남대문, 경복궁, 경회루, 보신각, 양주 회암사, 남한산성, 태고총림 선암사, 안동 봉정사, 마곡사 등에 남아있다.
또 1978년 세계불교도 우의회 동경 총회 기념 전시회를 시작으로 2005년 6월 모란갤러리에서의 마지막 개인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시회를 열어 한국 불교미술의 우수성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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