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국노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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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71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5-10-01 신문면수 1면 카테고리 총지캠페인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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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25 05:02 조회 1,753회본문
조선조 24대 왕 헌종이 23세의 나이로 후사가 없이 요절하자 왕족 중 기개 있고 출중한 인물 로 이하전이 왕위계승자 물망에 오른다. 그러나 외척 안동김씨의 반대로 철 종이 왕위에 오르고 이때부터 이하전은 안동 김 씨들의 감시와 미움을 받다가 1862년(철종13년)김순성, 이긍선 등이 그를 왕 에 추대하고자 모반을 꾀했다고 이재두가 무고하여 제주도에 유배된 뒤 사사되었다. 그 후 고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안동김씨 세력들을 축출하고 자신의 사촌인 이하전의 신원을 복권시켜준다.
그리고 그의 아들 이해창은 공신의 아들로서 인정받아 과거를 보지 않고 벼슬을 받을 수 있는 음보제도의 혜택으로 종친부 참봉이라는 벼슬로 시작하여 1904년 서울시장격인 한성부판윤을 지내다가 1910년 강제 한일합방에 협조한 공로로 일본으로부터 후작의 작위와 많은 은사금과 땅을 받은 인물로 현재 친일 매국노의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지금 그 후손들이 조계종 교구본사 봉선사의 말사인 수락산 내원암 일대의 4만8천여 평의 땅을 되돌려 달라는 재산반환소송을 했고 이에 맞서 내원암측은 위헌법률제청 신청을 내고, 후손들은 여론이 자신들에게 불리해지자 소 를 취하 하고, 다시 내원암 측에서는 소 취하 동의를 거부하는 등, 민사소송에서 보기 힘든 사태가 벌어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04년, 지난 한 해 동안 일제로 부터 거액의 은사금과 자작의 작위를 받은 이기용을 비롯해 정미칠적이면서 일진회 총재였던 송병준, 을사 오적 중 한명인 이근택 등 주요 친일파 32명의 후손들이 국가로부터 찾은 땅만 24만평이라고 법제사법위 소속 어느 국회의원이 발표했다.
이해창은 고종과 6촌지간이며 왕족의 아주 가까운 일가이다. 더욱이 만약 그의 부친이 죽지 않았다면 그도 왕이 될 수도 있었던 인물이다. 그렇다면 땅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한 그의 후손들도 모두 왕족의 후손들인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 중에서 가장 최근 600년간 이 땅의 백성들을 통치했던 왕조의 후예로서 자긍심이나 명예는 전혀 없고 오직 물질적 욕심만 보이는 옛 왕조의 후예들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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