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념 처(6)"관사성제-멸성제2-열반의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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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79호 발행인 법등[구창회] 발간일 2014-10-06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불교의 선정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화령 필자소속 - 필자호칭 정사 필자정보 철학박사 중앙교육원장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5-23 12:54 조회 2,507회본문
법 념 처(6)"관사성제-멸성제2-열반의 단계"
열반적정은 우리를 괴롭게 하는 모든 속박과 번뇌를 떨 쳐버리고 심신이 안온한 이상적인 상태를 말한다. 아무 것에도 걸림이 없는 무애자재의 경지가 열반이다. 그것 은 번뇌의 근본인 무명을 제거하고 지혜를 밝힘으로써 가 능한 것이다. 우리가 깨친다는 것도 지혜를 밝혀 무명의 번뇌를 멸하고 무애자재의 경지를 얻는 것을 말한다. 그 렇기 때문에, 깨친다는 것은 곧 열반적정을 얻는다는 말 과같다.
열반을 얻기 위한깨침에도두가지가 있다. 견도와 수도가 그것인데, 견도는 이론적, 관념적인 미 망으로서의 견혹을 끊는 깨침이고, 수도는 정의적,습관적인 미망으로서의 수혹을 끊는 깨침이다. 쉽게 말하면, 견도는 삿된 견해를 여의고 바른 견 해를 지님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고, 수도는 올바 른수행에 의하여 우리에게 훈습된 나쁜 습성을 버림으로 써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견혹에는 흔히 탐/진/치/만/의의 근본 번뇌와 심신에 실체적 자아가 있다고 보는 신견, 모든 것은 단멸한다든가 상주한다고 생각하는 치우친 견해인 변견,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하는 사 견, 자기의 견해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견취견, 터무니없는 계율이나 맹세를 해탈의 참 원인으로 여기는 계금취견의 오견을 더하여 열 가지가 있다고 본다. 이것을 더 상세하게 나누어 팔십팔 사라고도 한다.
수혹이라는 것은 우리가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는 감각 적, 육체적 미혹으로서 정의적이고습관적인 번뇌라고 할 수 있는데, 오랫동안의 습성으로 인해 우리에게 훈습된 번뇌이다.
견도에 의하여 연기와 사성제의 이치를 잘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그것을 체득하여 실천하지 않으면 별 소 용이 없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는 말과 같 이 소금이 짜다는 것은 알아도 그것으로 음식의 간을 맞 추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 같다. 이론적으로는 알아도 실천이 안 되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이론적인 깨 침만으로는 부족하고 그러한 깨침이 체득이 되어 실천될 수 있어야 진정한 열반에 이를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론적으로도 사성제와 같은 교 리를 잘 이해해야 할 뿐 아니라, 수행에 의하여 사성제의 도리를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깨침을 견 도와 수도로 구분하는 것 이다.
이론적인 깨침은 열반에 이르기 위한 초보적인 단계이 다. 많은 재가신자들이 부처님을 처음 뵙고 시론, 계론, 생 천론의 삼론에 의해 불도로 인도되고, 더 나아가서 연기 의 이치와 사성제에 대한 설법을 듣고 법안을 얻었다고하 는 것은 바로 이 초보단계의 깨달음을 말하는 것이다. 어 떤 사람들은 이처럼 연기나 사성제에 대한 이치를 이론적 으로 이해해서 초보적인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불 법/승의 삼보를 믿으며 공경하고 계행을 지키는 것에 의하여 연기나 인과의 이치가 깨쳐진다. 이 것을 사증정이라고 한다.
이지적으로 깨치든 실천에 의해서 깨치든 초보의 깨달 음을 얻은 사람은 불교의 진리에 맞게 살아가며 계율을 범하지 않고 나쁜 짓을 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사람은 지 옥 . 아귀 . 축생 등의 악취계에 떨어지는 일이 없다. 이것 을 불타법 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은 미 래에 반드시 열반에 이를것이 결정되어 있다고해서 정성 결정, 혹은 정정취라고 한다. 또 이 러한 사람은 다시는 윤회의 세계에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불퇴전의 위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처럼 견혹을 끊어 법안을 얻는 것만으로도 삿된 견해 를 여의고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으며 범부의 윤회의 세계 를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최고의 깨달음인 열반에 이르 기 위해서는 견혹만 끊어서는 되지 않는다. 수혹이 남아 이다는 것은 아직도 습관적인 악습과 습성 등이 남아 있 더는 의미이다. 그러므로수혹을 완전히 단절하지 않으면 최고의 깨달음에 이를 수가 없다.
견혹은 지혜로써 그 잘못을 인정하고 사견을 버리면 즉 시 끊을 수 있는 것이지만, 수혹은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 부터 우리의 본성처럼 훈습된 것이기 때문에 끊기가 어 렵다. 나쁘다고는 알고 있어도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 것 이 수혹이다. 수혹은 오랫동안의 습성에 의해 굳어진 거 의 본능에 가까운 번뇌이기 때문에 끊기가 그만큼 어려 운 것이다.
예를 들면, 담배나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것이 몸에 나브다는 것은 알고 있어도 끊기가 어려운 것과 같다. 담 배나 술이 건강을 해치고 해롭다는 것은 알고 있어도 눈앞 에 담바!나술이 있으면 저절로손이 가는 것과마찬가지이 다. 이러한 것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의지가 필요 하다. 술이나 담배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여러 가지 나쁜습성들은 하루아침에 고쳐지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 는 자기 절제와 굳센 의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우리가 어떤 사실을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실행에 옮기 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이고 남 을 괴롭히고화내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누구나 알고 있지 만, 그러한 행위를 단절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사람에 따라서는 어떤 것이 나쁜지도 모르고마구 저지르는 사람 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지가 하고 있는 행위가 나쁜지를 스스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러한 행위를 고 친다는 것은 쉽게 되지 않는다. 견도와 수도도 이러한 차 원에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우리가 연기의 이치나 사성제의 도리를 어느 정도 이해 했다고는 하나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오랫 동안 습성으로 굳어져 온 우리의 나쁜 성향은 상당한 수 행에 의해서만 고쳐질 수 있다. 불교의 교리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도 일상생활상에서는 그것을 전혀 실 천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수행이 겸비되지 않으면 교 리적으로는 많이 알아도 싫은 것 보면 화나고 좋은것 보 면 기분이 들뜬다. 범부중생에게 있어 견혹을 끊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할지 모르지만 수혹을 끊는다는 것은 역시 쉽사리 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아무튼 견혹을 끊고 수혹을 완전히 끊어야만 아라한으 로서의 깨달음이 얻어진다. 경전에서는사향사과라고 해서 깨달음을 얻은 정도에 따라 여덟 가지로 구분한다. 수다원향, 수다원과, 사 다함향, 사다함과, 아나함향,아나함과, 아라한향,아 라한과가 그것인데, 이것을 예류, 일래,불환, 무학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즉, 수다원향이라는 것은 초보의 성자를 말하는 것으로 깨달음으로 향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다. 이것을 예류향 이라고도 한다. 깨달음의 흐름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수 다원과는 초보적인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이것은 예류과라고 부른다. 사다함향은견혹을 끊는 과 정이며, 그것을다끊으면 사다함과를 얻게 된다. 이 단계 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욕계에 한 번만 더 태어나면 색 계와 무색계를 지나 완전한 깨달음을 얻기 때문에 일래 향, 일래과라고 한다. 욕계에 태어난다는 것은 욕계의 번 뇌가 아직 다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욕계의 번뇌가 다하면 색계와 무색계에 태어나서 그러한 번뇌를 다 끊게 된다고 한다. 수다원향까지는 견혹을 끊은 견도의 성자로 불리어진다. 수다원과 이후는 수혹을 끊은 수도의 성자로 불리어진다. 즉, 수다원과와 사다함향, 사다 함과, 아나함향과 아나함과, 아라한향의 여섯 단계는 수 도의 성자로 불린다는 것이다.
아나함향은 수혹을 끊고 다시는 욕계에 돌아오는 일이 없이 색계와 무색계를 거쳐 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는 단 계에 들어가기 때문에 불환향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완성한 것을 아나함과라고 한다. 견도에서 일체의 견혹을 끊고 욕계와 색계, 무색계의 모든 수혹의 번뇌를 단멸하 면 아라한향이 된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아라한과를 얻게 되면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기 때문에 아라한과를 무학이라고 한다.
여기에 대해서 그 이전의 견도나수도의 단계에있는 성 자를 유학이라고한다. 배울 것이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무학의 아라한과를 얻으면 최고의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며, 모든 괴로움의 속박에서 벗 어나 열반을 얻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바로 이 아 라한과를 얻어 성불하신 것이다.
열반에 이르는 단계는 이처럼 복잡하지만 결국은 견도 에 의하여 바른 견해를 지니고,수도에 의하여 우리에게 훈습된 수혹을 떨쳐버리면 열반이 얻어지는 것이다. 그런 데 수혹이라는 것은 거의 우리의 생존본능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끊는다는 것은 여간한 수행이 아니고는불 가능하다. 완전한 열반은 그렇게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하다.
우리는 사성제를 관하면서 멸성제의 가르침을 통하여 열반의 의미를 대략적 이나마 파악하여 수행의 목표를 분 명히 해야 한다. 병을 다스리는 원리를 사성제에 비추어 볼때 멸성제는 병이 없어진 건강한상태를의미한다고할 수 있다. 그것이 열반이다. 즉 열반이라는 것은 괴로움의 굴레를 벗어나 건전한 상태로 되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면'우리의 현재의 삶은 모두 건전하지 못한 잘 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니 우리의 삶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미망의 세계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 이다. 열반은 그러한 상태에서 벗어나 정상적 인 상태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경전에서는 열반의 상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은 없다. 열반이라는 것은 직접 체험해봐야 알 수 있는 실천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우리는 사성제를 통하여 이론적으로나마 열반의 의미를 유추해 봄으로써 건강하지 못한 삶에서 건강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 을 설정할 수 있다. 멸성제를 잘 이해함으로써 우리가 도 달해야 할 궁극의 목표를 분명히 인식하게 되고 그에 따 라 고성제와 집성제, 그리고 마지막의 도성제도 더 잘 이 해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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