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체험- 법경정사 중국불교수행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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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84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6-11-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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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01 18:37 조회 2,388회본문
중국 4대 성지 - 보현보살의 도량 아미산을 다녀와서 (2)
금정에는 4가지의 기이한 경관이 있다. 첫째가 일출 금정에서의 일출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두 번째가 운해다. 마치 구름이 바다와 같이 펼쳐진다. 365일 중에 맑은 날이 60〜70일 밖에 안되므로 일출과 운해는 거의 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볼수 있다면 그 것은 행운이다. 아니 보현보살의 가피가 아니면 보기 어렵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천성불교협회 비서장 굉개스님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세 번째가 불광이다. 부처님의 광채가 계곡에서 비추어진다는 것이다. 낮 2〜4시 사이에 아미산 계곡에서 무지개같은 둥근 광채 가 선명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빛을 보는 사람은 그 속에서 자기 그림자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굉개스님은 아직 보지는 못했고 노승들로부터 얘기만 들었다고 했다.
네 번째는 연등을 단 것처럼 깊은 밤 계곡 곳 곳에서 불빛이 일어나는 성등이다. 성스러운 연등불빛이라 하여 성등이라 한다. 이를 만등 이라고도 한다. 이 연등은 보현보살의 경배 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이 불빛이 호랑이 눈빛이나 반딧불이 아닌가 했다지만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고 한다. 성등은 불광보다 보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믿기지지 않는 현상들이다. 보현보살 도량임을 드러내고자 일부러지은 것이라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의심하고보면 끝이없고, 중요한 것은 내가 그것을 성스럽게 받아들이고 보현보살의 행임을 믿는다면 아미산 자락이 보현보살의 성지로서 내가 순례한 것으로 족한 것이란 생각이다.
보현보살이 코끼리를 목욕시킨 곳 -세상지
점싱공양을 마치고 다시 걸어 내려와 케이블카로 하산했다. 아미산의 또 다른 골짜기로 향했다. 목적지는 세상지이다. 세상지는 해발 2070미터의 높이에 있다. 1시간30분 가량을 걸어 세상지에 도착했다. 오르고 내리는 수많은 계단 도착할 즈음에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운동부족임을 절실히 느꼈다. 설악산 봉정암을 다녀 오신분 들은 왠 호들갑이냐 하겠지만 왠걸 걷지않다가 갑자기 걸어대니 젊다고 배겨낼 재간이 있나.
세상지는 아미산에서 가장 낙후된 사찰이다. 깊은 산 정상에 있는 데다 사면이 가파른 절벽이라 사람들의 왕래도 드물다. 올라가면 금정이요 내려 가면 선봉사, 홍춘평, 청음각이다. 내려 갈수록 형편이 나은 편이다. 그나마 관광객이나 참배객들이 다녀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지는 올라오는 사람 들이 없다. 그러니 가난할 수 밖에... 세상지는 보현보살이 세상에 화현 하였을때 잠시 코끼리를 목욕시켰던 연못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못 안에는 코끼리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의 커다란 돌이 놓여 있다. 세상지의 대표적인 전각은 미륵전, 대웅보전이다. 미륵전에는 포대화상존자, 그뒤에 위타보살이 모셔져 있고, 대웅보전에는 앞에 석가모니 삼존소불, 그 뒤편에는 관세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앞의 석가모니와 뒤의 관세음보살 절묘와 조화의 존상배치다.
세상지에 도착하여 우리 일행은 부감원 스님과 차담을 나누었다. 원래 세상지에는 명나라 시대 당시 정자 하나가 있었는데 청나라 때에 사찰이 건립 되었다고 했다. 세상지의 유명한 풍광은 밤에 달을 보는 운치가 뛰어나고 특히 연못에 비쳐지는 달빛이라고 한다. 그 아름답기가 그지 없다 하여 ‘상지야월' 이다.
저녁공양을 마치고 세상지에서 3일 째 밤을 맞았다. 숙소와 침구에서 곰팡 이 냄새가 진동을 했다. 밤의 온도는 초겨울처럼 차가왔고 줍기로는 뼈속 까지 한기가 느껴졌다. 이불 하나로는 부족하여 이불 두 채를 돌돌 말아 잠을 청했다. 새우잠으로 아침을 맞으니 온몸이 욱씬거렸다. 아미산에서 3번째 맞는 아침이다. 대중 세수를 하고 죽과 빵으로 아침공양을 마친후 경내 앞 절 벽으로 나갔다. 처음으로 산능선을 제 대로 볼 수 있었다. 구름이 완전히 걷 히었다. 저멀리 아미산의 다른 능선이 눈에 들어왔다. 맑은 하늘과 맞닿은 산 능선, 간간히 끼인 구름과 골짜기에 드 리워진 운무, 신선이 사는 별천 지가 바로 여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맑은 날씨도 잠시, 날이 밝아 지면서 또다시 안개와 구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앞이 너이질 않았다. 아미산의 날씨가 늘 이렇다.
세상지 스님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아침8시 다음 목적지인 선봉사로 향했다. 선봉사로 가는 도중 조계종의 초전지 그 조그마한 암자를 멀리서 볼 수 있었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조그만 사찰. 우선사를 만났다. 목적지 선봉사는 한참을 더 가야한다. 우선사는 한나라 때 승상 장가이가 벼슬을 그만두고 지낸 곳으로 ‘신선을 만난 곳’ 이라 하여 후대사람 들이 절을 짓고 우선사라 하였다고 한다. 기념사진을 몇장 찍고 다시 길을 재족했다. 인적이 드문 깊은 산속에서 약초캐는 사람들을 만났다. 약초를 꺼내 보이며 맛 보란다. 쓴맛이 나고 뒷맛은 조금 단맛이 나는 약초였다.
우리 나라에도 있는 것으로 소염제로 쓰이는 황련이라고 했다. 아침 8시에 세상지를 떠나 목적지 선봉사에 도착 한 것은 11시. 세상지에서 선봉사까지 는 16km거리. 3시간을 걸어 도착한 곳 이다. 제일 힘든 코스였다.
신선이 사는 봉우리 - 선봉사
해발 1752미터의 선봉사. ‘산선이 사는 봉우리’ 라 선봉사다. 기념촬영을 하고 바로 점심공양을 했다. 배가 많이 고팠다. 선봉사도 세상지와 마찬가지로 절집 살림살이가 넉넉지 못한 곳이다. 어려운 살림인데도 꽤 많은 음식을 내놓았다. 괜히 미안하다. 자기네들도 먹고살기 힘드는데... 이 음식들을 준비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 산아래에서부터 짊어지고 올라왔을까. 공양을 마치고 경내를 둘러보았다. 선봉사의 전각으로는 재신전, 대웅보전이 전부다. 재신전은 정면에 사나운 모습의 재신.
그 뒤편에 위타보살이 있다. 위타보살은 장군상으로 호법신장의 일종이다. 재신전을 지나 대웅보전. 앞에는 석가모니불, 뒤편으로 아미타불, 그 좌우 구석진 곳에 지장왕보살과 보현 보살이 자리잡고 있다. 석가모니불을 중앙으로 하여 그 좌우측 벽면에는 18존자가 모셔져 있다. 중국에서 보는 대웅보전과 미륵전의 일반적인 존상의 배치다. 처음에는 우리나라 사찰과는 이질적인 가람과 존상배치라 낯설었지만 자꾸보니 정겹다. 대웅보전의 천정이 이채롭다. 팔길상만다라가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팔길상은 인도의 문양으로 좋은 일이 일어나고 성취되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경내 참배를 마치고 곧 구로동굴로 향했다. 구로동굴에 신선어 9명이 살고 있는데,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미산에 들어올라치면 번개를 내리쳐 근접치 못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번개노인이란다. 구로계곡 안에는 미로처럼여러 굴이 있었다. 한 번 길을 잘못 들면 영원히 길을 잃고 만다. 결국 굶어 죽고만다.
구로계곡 안에는 선봉사 재신전과 같이 또하나의 재신상이 모셔져 있는데 재물을 많이 모으고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신장이라고 한다. 재신상은 검은 호랑이를 타고 있는 모습으로 왼손에는 보석상자, 오른손은 큰 칼을 수지하고 있었다. 아주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구로동굴을 보고 다시 짐을 꾸려 홍춘평으로 향했다. 선봉사에서 홍춘평까지는 15km거리. 홍춘평은 해발 1120미터에 위치하고 있다. 홍춘평으로 가는 길은 줄곧 내리막 길이었다. 모두들 내려 걷는 것이 더 힘든 모양이다. 인대가 늘어나 못걷는 분도 생겼다. 어쩔수 없이 짐꾼의 가마를 신세지는 수 밖에.... 흥춘평으로 가는 길목에 아흔 아 홉 굽이의 계곡이 유명하다. 굽이굽이 돌고 돌아가는 계곡, 계곡에 이르니 오랜만에 들리는 물소리, 그동안 깊은 골짜기인데도 물이 흐르지 않아 그 운치가 덜하였더니 골짜기 반대쪽 홍춘평에는 제법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다.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일행과 떨어져 일부러 혼자서 걸었다.아무도 없는 계곡을 혼자서 걸으니 사실 조금 겁도 났지만 그래도 호적한 산길을 혼자서 걷는 일은 또다른 맛이 있었다. 염주알을 굴리며 옴마니반메훔을 큰소리로 부르면서 걸었다. 수많은 계단, 오로지 걸을 뿐이다. 아무런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다. 한 계단 한 계단, 걷고 또 걷고 걸을 뿐이다. 마치 만행의 길을 걷는 구도자처럼.…
홍춘효우와 천불연등의 사찰 -홍춘평
1시간 반을 걸어 홍춘평에 도착했다. ‘홍춘평’은달리 ‘천불선원’ 이라고도 한다. 천불연등이 모셔쳐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홍춘평이라는 이름은 홍춘이라는 나무가 많아서 붙여졌다고 한다. 경내에 들어서자 홍춘평'이 깔끔하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어젯밤 세상지의 잠자리가 너무 불편했기 때문이다. 홍춘평은 송나라때 지은 사찰로 명나라때 덕행선사가 중흥을 이루었다. 덕행선사에 대한 일화는 이렇다. 덕행선사가 석장으로 땅을 치니 그곳에서 물이 솟아나므로 대중이 그 물을 풍족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 우물이 마당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홍춘평에는 미륵전과 관음전, 대웅보전, 성현성불전 등이 있다. 15명의 스님이 수행하고 있다. 미륵전이자 관음전인 전각에는 관세음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이 나란히 모셔져 있다. 특이한 존상배치다. 일반적으로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 보현과 문수보살이 배치되는데 관세음 보살이 중심이다. 대웅보전에는 석가모니불과 좌우협시로 보현보살과 문수사리보살이 모셔져 있다. 전형적인 불상 배치형식이다. 그 좌우벽면에는 18존자상을 모시고 있다. 석가모니불 뒤쪽에는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는데 갓을 쓰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홍춘평의 제일 자랑거리는 관음전 입구 양쪽 벽면에 걸려져 있는 ‘백자 주련’이다. ‘100자로 쓰여진 글’이다. 내용인즉 오른쪽은 홍춘평의 풍광을, 왼쪽에는 홍춘평의 역사를 적고 있다. 홍춘평을 대표하는 것으로 두 가지가 있는데, 홍춘효우와 천불연등이다. 홍춘효우란 ‘홍춘평 는 늘 안개가 끼여있다’는 뜻이고, 천불연등은 관음전 2층에 걸려있는 대형 연등에 천불이 모셔져 있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천불선원이라는 편액이 산문에 걸려져 있는 것이다.
우리 종단 정사들의 숙소는 천불연 등 바로 옆에 있는 방이었다. 2층방에 복도식의 숙소는 조망권이 좋은 아파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공동샤워장이 있어 땀내나는 몸을 씻을 수 있어 좋았다. 다 좋을 수는 없는법. 화장실은 여전히 적응하기 어려웠다. 가능하면 큰일을 안보는 수밖에. 그러려면 음식을 조금 먹을 수 밖에 없다. 문이 없어 앞이 훤히 보이고 일어서면 옆사람이 내려다 보이는 화장실은 난감 그자체였다. 심란하기로는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였다. 뿐만 아니다. 전망좋던 흥춘평의 숙소는 잠 자리에 들즈음 정반대가 되어 버렸다. 쾌쾌한 냄새는 그나마 견딜만 하였지만 깨진 유리창으로 고양이가 들락거는데에 그만 소스라치게 놀랐고 잠마저 달아나 버렸다. 보통 신경쓰이는게 아니었다. 천장 곳곳에서 거미들이 집을 지어놓고 여기저기 기어다녓다. 이불은 일광소독을 하지 못해 그렇지 않아도 눅눅한 잠자리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이불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진도응 했다. 그러나 추우니 어쩌랴. 덮고 잘 수 밖에
쌍교청음과 생태공원 -청음각
다음날 아침 7시30분, 공양을 끝내고 서 우리 일행은 8시30분 청음각으로 출발했다. 청음각으로 내려가는 길은 수월했다. 평탄한 길도 제법 있어 여유를 가지고 경치를 구경하며 내려왔다. 청음각은 아미산 생태공원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 때문인지 관갱객이 제법 많았다. 다음날 아침 7시30분, 공양을 끝내고서 우리 일행은 8시30분 청음각으로 출발했다. 청음각으로 내려가는 길은 수월했다. 평탄한 길도 제법 있어 여유를 가지고 경치를 구경하며 내려왔다. 청음각은 아미산 생태공원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 때문인지 관갱객이 제법 많았다참으로 반가 웠다. 아주머니 두분이 서울에서 왔다고 했다. 우리 보고 여긴 왠일이냐고 했다. 한국에서 온 중국불교수행체험단이라 하니 오히려 그 쪽에서 더 반가워했다. 아미산에는 아직까지 한국 관광객이 많지 않았다. 황산, 장가계, 구화산 등 중국 동부지역에 비해 한국 관광객의 발걸음이 뜸한 곳이다.
청음각은 계곡을 따라 지어진 사찰 이다. 높이가 해발 710미터. 계곡이라그런지 전각은 하나밖에 없다. 명나라 때 건립된 사찰이다. 청음각 아래는 계곡, 물, 바위가 멋들어지게 펼쳐져 있는 곳으로 자연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쌍교청음이라. 청음각을 내려오면 정자를 사이에 두고 똑같은 모양으로 두 개의 계곡이 흐르고 그 계곡 위에 두 개의 다리가 놓여져 있다. 쌍교청음은 이를 표현한 이름이다. 꼐곡 아래 두 갈래로 떨어지는 폭포는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폭포 아래의 못 에 커다란 돌덩어리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소의 심장과 같다하여 우심정이라 한다 . 청음각 주변은 전체가 자연생태공원이라 물과 바위, 계곡, 동식물박물관 등이 있어 관광코스 일 뿐 아니라 참배사찰로서도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청음각 아래서 부터 아미산 입구까지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로 넘쳤다.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을 정도였다.
청음각을 냬려오면 평지가 있어 산입구가 가깝다고 여겨졌지만 한참을 내려오는 동안 평지이다 싶으면 깊은 계곡이요, 계곡이다 싶으면 또 평지였다. 입구까지 내려와보니 그곳이 꽤 놓은 산자락임을 알 수 있었다.
수행체험의 교훈- 일체유심조
아미산 입구까지 한참을 걸어서 내려오니 넓은 주차장은 사람과 차들로 붐볐다. 버스를 타고 첫날 묵었던 보국사에 도착했다. 고단한 산행 일정이 모두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 왔다. 숙소에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저녁 늦게 도착했던 첫날, 말할 수 없이 지저분하고 심 란하게만 여겨졌던 그 숙소는 온데간데 없고 깨끗하고 반듯한 침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숙소를 잘못 찾아왔나 싶었다. 우리가 두고 간여행 가방이 그대로 놓여져 있는 것을 보고서야 우리 방인 줄을 알았다. 그렇게 지저분해보인던 방이 그렇게 깨끗해 보일 수 없다었다. 지난 4일간의 산행에서 마주쳤던 숙소에 비하면 최고 급 호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묘했다. 심란하여 잠을 이룰 수 없었던 방이 너무나 깨끗해 보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동안의 산행이 완전히 다른 방으로 바꾸어 놓았다. 아니 나를 그렇 게 바꾸어 놓았다. 방은 그대로 였다. 죽은 바퀴벌레도 그대로 있었다. 청소도 안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불결해보 이지도 심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푸 근함과 함께 피로감이 밀려 오면서 아늑함마저 느껴졌다. 마음 한 곳에서 원효스님의 일화가 떠올랐다. 전날밤 마 셨던 물이 꿀맛 같았지만 이튿날 해골 바가지에 고인 물이었음을 알았을때 토하듯 역겨움을 느꼈으니 ‘일체유심조’라. ‘모든 것은내마음으로 짓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온 몸에 전율이 느껴졌라. 참 으로 무명중생임을 피부로 느꼈다. 무엇이 옳다하고 무엇이 그르다 할 것이 있으며, 좋다 나쁘다는 분별을 어찌 가질 것인가. 긍정과 부정의 극단, 그 어디에도 걸림이 없이,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는 마음자세, 집착과 얽매임 '없이 받아들이는 자세. 이번 불교수행체험에서 얻은 교훈이요 커다란 배움이었다. 여기에 보현행과 자비행이 곁들어져야 한다. 자는 남에게 즐 거움을 베풀어 주는 것이요, 비는 고통을 없애주는 것이다. 내 마음에서 부터 내자신에게 먼저 시작되어야 하 리라. 자신이 자신에게 자비스러워야 남에게도 자비를 베풀 수가 있는 것이다. 자리이타가 다른 것이 하니다.
시련과 고통은 지나고 나면 이미 시련과 고통이, 아니다. 어떠한 시련과 고통, 악조건도 이겨내지 못할 것이 없다. 이 목숨이 다하지 않는 한 이번 수행체험에서 얻은 마음공부다. 그리고 11일간의 일정동안 보는 것, 듣는 것, 경험하는 모든 것이 수행이요 체험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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