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복한 불교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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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85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6-12-01 신문면수 11면 카테고리 만다라 세상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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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02 08:34 조회 2,689회본문
그해 여름 부처님은 베살리의 벨루 바 마을에서 마지막 여름 안거를 보내고 있었다.
그 무렵 부처님은 중병에 걸려 심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어느 날 시자인 아난다가 부처님을 찾아와 문안을 여쭈었다.
“부처님. 오늘은 매우 편안해 보이십니다. 그 동안 저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이 저희들을 위해 아무 말씀도 없이 열반에 들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난다야 그대들은 나에게 더 이상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진리에 대해 충분히 말했으며 더 이상 감춰둔 아무 것도 없느니라…..아난다야. 나는 이제 여든 살이다. 몸은 늙고 쇠하였다.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끈에 묶여 간신히 굴러가는 것과 같다…..아난다야. 그대들은 자신을 등불로 삼고의 지처로 삼으라. 또한 진리를 등불로 삼고 의지처로 삼으라. 다른 사람을 의지처로 삼거나 진리가 아닌 것을 등불로 삼아서는 안 된다...”
부처님이 열반하기 직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장아함〈유행경〉의 한 대목이다.
나는 지금도 이 경을 읽다보면 어느 새 목구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고 눈가가 뻐근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죽음을 앞둔 80 노인이 나이든 제자들이 그래도 못미더워 마지막으로 간절하게 타이르는 모습....그 장면은 언제 떠올려도 감동적이다.
부처님. 그분은 나에게 그런 존재다. 외람된 말이지만 엄한 스승이면서 또 한 자상한 아버지 같은 그런 분이다.
선문의 선사들은 부처란 마른 똥막 대기에 지나지 않는데 무슨 집착이냐고 ‘할 ‘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의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불타관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부처님을 아주 가까운 인간으로서의 스승으로 이해하기 시작 한 것은 두분 스승을 통해서였다.
한 분은 대학 때 불교개론을 가르쳤던 홍정식 박사 그리고 또 한 분은 한 번도 뵌 일이 없지만 책을 통해 깨우침을 준 일본학자 마쯔다니 후미오 박사.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불교는 전통적으로 대승불교를 신봉해왔다. 대승불교에서 붓다는초월적 능력을 행사하는 존재다. 길흉화복을 호소하면 그것을 들어주는 존재다. 그런 붓다를 인 간과 동일한 수준으로 끌어내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냐 이 점은 나에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인간의 아들로 태어나 진리를 깨달아 부처님이 되 었다면 그는 결코 신이 아니다. 그런 데도 사람들은 붓다를 마치 전능한 신 처럼 믿는다. 왜 그런 일이 생기게 됐을까. 어느 날 이런 의문을 토로한 나 에게 선생님은 웃으며 이렇게 말해주 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건 아마도 위대한 인격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게야. 위대한 스승을 잃은 제자들이 스승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보니 전설을 만들어간 게지.” 그러면서 읽으라고 권한 책이 그 무렵 번역돼 나오기 시작한 한글대장경의 장아함〈유행경〉이었다.
붓다가 돌아가시기 직전의 일을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는 이 경은 스승인 붓다에 대한 제자들의 존경과 제자들에 대한 부처님의 자비가 넘치도록 충만하게 묘사되고 있었다.
‘아, 부처님은 이런 분이었구나.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구나. 노년에는 병이 들어 제자의 부축을 받으며 길을 걷던 분이었구나....’
그것은 새로운 대륙을 발견한 사람이 갖는 흥분이었다. 법당 안 높은 자리에 권위와 우상으로 앉아 있는 먼 나라에서 온 손님처럼 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홍박사의 가르침을 통해 이런 오해를 씻어낼 수 있었다.
이에 비해 마쯔다니 박사와는 직접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다. 그러나 나는 누구보다도 마쯔다니 박사의 불교관에 큰 도움을 받았다. 박사와의 만남은 그가 쓴〈아함경 이야기〉라는 책 을 통해서였다.
박사는 이 책에서 한마디로 부처님도 인간이며 그분이 가르친 내용도 인간의 보편적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박사의 이런 주장을 읽으면서 엄청난 충격과 감동에 휩싸였다. 그렇다. 그것은 분명 충격이었고 감동이었다.
이때부터 나의 불교공부는 대승불교가 아니라 초기불교, 그것도 부처님의 생애를 중심으로 하는 근본불교를 화두로 삼아나가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 렇지만 대승불교가 전부인 한국불교에서 초기불교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스스로 ‘소승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부처님의 생생한 육성을 들을 수 있다면 그 것이 진리를 배우려는 사람이 취할 태도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그 무렵 막 번역돼 나오기 시작한〈법구경〉〈수타니파타〉그리고 사부 아함을 밤을 새우며 통독했다. 덕분에 나는 흔들리지 않는 불교적 인생관과 세계관을 확립하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는 이런 공부를 바탕으로〈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했다〉는 책도 쓰게 됐다. 지금 생각해도 이 때의 일을 참으로 다행하고 행복한 인연이었다.
나는 지금도 누가 불교공부를 하겠다고 하면 초기불교부터 공부하라고 말해준다. 그것이야말로 너무나 행복한 불교공부였기 때문이다.
홍사성의 불교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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