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념처 (5) 관사성제 - 집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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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77호 발행인 법등[구창회] 발간일 2014-08-04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불교의 선정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화령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철학박사 중앙교육원장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5-24 11:39 조회 2,957회본문
법념처 (5) 관사성제 - 집성제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을 알아야 괴로움을 없앤다 갈애는 괴로움의 원천
집성제라는 것은 괴로움의 원인을 밝힌 것으로서 갈애라는 것이 우리를 고통의바다에서 윤회하게 만들며 좋아하고 탐내는 것과 함께 괴로움을 유발하는 원인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갈애에는 유애와 욕애와 무유애의 3가지 가 있다는 말씀이다. 갈애라는 것은 목이 말라 타들어가는 듯이 갈증을 느끼는 것이다. 마치 물고기가 뭍으로 올라와 물을 안타깝게 필요로 하는 것처럼 우리의 욕심과 집착이 이와 같은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갈애를 업력을 일으키는 동인으로 본 다. 중생들이 갈애가 없다면 윤회할 일도 없다. 예를 들면 씨앗이 하나 있다고 치면 그 안에는 적당한습도가 있어 그 것이 땅에 묻히면 싹이 난다. 이 경우에 업력은 마치 씨앗 과 같고 갈애는 씨앗 속의 습도와 같아서 업력으로 하여금 오온이 생겨나게 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오온은 곧 괴로 움의 원천이 된다. 만약 갈애가 없으면 업력은오온을 생겨 나게 할 방법이 없다. 이러한 원리가부처님께서 갈애가고 의 원인이 된다고 하신 이유이다.
갈애는 또한 희와 탐을 함께 갖춘다고 하였는데 다시 말하면 갈애가 곧 희와 탐이라고 할 수 있다. 희와 탐 은 좋아하고 탐내는 것이다. 이것이 도처에서 애락을 추구 한다고 했는데 중생은 어느 곳에 태어나든지 반드시 감각 의 즐거움에 탐닉하고 생명에 애착을 가진다. 중생은 이 러한 것으로 자기의 생명을 전개하며 자기의 삶에 집착하게 된다.
갈애에는 욕애와 유애, 무유애의 3가지가 있다고 했는티 욕애는 감각적 욕망이며 유애는 자기 존재에 대한 애착이 다. 무유애는 자기 부정 혹은 자기 초월에 대한 욕망을 의미 한다. 욕애는 말하자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보고 싶고 자 기가 좋아하는 것을 먹고 싶고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을 듣 고 싶어하는 욕망 등으로서 외부의 것에 탐착하는 것이다. 즉, 바깥의 경계에 탐닉하고 애착을 가지는 것으로서 여기 에는 색애, 성애, 향애,미애,촉애와 법애의 6가지가 있다.
조금만 주의를 가지고 관찰해보면 우리는 바로 이 욕애 의 덩어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의 삶이 거의 모 두가 이 6가지 욕애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먹고 마시고 냄 새 맡고 소리를듣고 성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며 여기에 정 신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자존감이나 명예심 등으로 똘똘 뭉쳐진 것이 우리 인간이다. 특히 지금 세대의 사람들은 오 직 이러한 외부의 대상에 대하여 탐욕스럽게 돌진하고 있 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줄 모르고 오로지 바깥의 대상에 대하여 자기의 욕심을 충족시키려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깨닫지 못한 모든 중생들 의삶이 바로 이러한 욕애의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유애라는 것은 존재에 대한 갈애로서 자신을 영원한 것 으로 여기고 탐착하는 것이다. 유애에는 4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욕계에 대한 갈애이다. 욕계에 태어난 자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탐착하며 더 좋은곳에 태어나기를 바란다. 두 번째는 상견(자기의 실체가 있어 이것이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함께 일어나는 갈애로서 중생에게 어떤 실 체가 있어 다음 생으로 연속하여 삶을 이어가는 것이며 결 국에는 그 실체와 본아가 합일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세 번째는 색계와 무색계에 대한 갈애와 탐착이다. 네 번째는 선나에 대한 탐착이다. 이러한 갈애는 모두 자기 자 신의 존재와 실체에 대한 집착에서 생기는 것으로서 윤회 를 면하지 못하게 한다.
무유애는 단견(죽으면 모든 것이 없어져버리고 그 만이라는 생각)과 함께 일어나는 것으로서 단견을 지닌 사 람은 사후에는 윤회고 뭐고 아무 것도 없어져 버린다고 생 각하는 것으로서 자신이 죽어 없어짐으로서 모든 고통에 서 해방되기를 바라는 욕심이다. 강한 자기 부정에 의하여 자살을 바라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갈애가 일어나는 것을 생기라고 하며 갈애가 마음 속에 잠복하여 있는 것을 주착이라고 한다. 번뇌가 일어나는 데에는 잠복기와 생기기, 그리고 발작기의 3단 계가 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품고 있지만 평소에는 그 것이 잘 나타나지 않다가 어떤 계기가 되면 겉으로 드러 나서 표출된다. 예를 들면, 좋은 옷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 이 대부분의 여자에게는 있지만 평소에는 생각하지 못하 다가 옷가게 앞을 지나간다거나 세일하는 광고를 보면 거 기에 마음이 끌린다. 그리고는 사려는 생각이 나서 입어보 거나 하고서는 무척 마음에 들지만 돈이 모자라 못사게 된 다면 그 옷이 늘 눈에 아롱거릴 것이다. 살 능력은 안 되는 데 사고 싶은마음이 간절하면 돈을 꾸던지 아니면 심한 경 우에는 옷을 훔치려고 시도할지도 모른다. 마음에 잠복해 있던 욕심이 어떤 것을 계기로 마음에 떠오르고 그것을 충 족시키기 위하여 구체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 발작기 이다. 우리에게 번뇌가 일어나는패턴은 항상 이런 형식에 의하거 때문에 마음의 끈을 놓지 않고 욕심이 어떻게 머무 르고 일어나며 발작을 하는가를 잘 살펴 번뇌를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괴로움이 곧바로 뒤따 르기 때문이다.
갈애는 어디에서 생기는가?
그러면 갈애는 어디에서 생기하는가? 불교에서는 10가 지의 카테고리로써 설명하고 있는데 매 카테고리는 6 항목으로 나누어진다. 10가지 카테고리는 근조, 진,식조, 촉조,수조, 상조,사조,애조,심조,사조의 10가지 이며 여기에 각각 안 . 이 . 비 . 설 . 신 . 의와 색 . 성 . 향 . 미 . 촉 . 법의 6항목이 들어간다.
먼저 근조에 대해 살펴보면 우리의 심산 가운데에서 안 . 이 . 비 . 설 . 신 . 의의 6근은 사람을 유혹하며 그 것에 의하여 기뻐하게 하는 것으로서 갈애는 거기에서 생 기고 머무른다. 이것이 육내입처라고 하는 것으 로서 통상 사람은 이 6근에 대하여 강한 집착을 가지게 된 다. 그래서 자기의 몸을 돌보고 다듬고 아름답게 가꾸는 것 인데 사람들은 이러한 육내입처에 대한 집착으로 갈애를 생겨나게 하고 그것을 충족하려고 노력한다.
진조는 색 . 성 . 향 . 미 . 촉 . 법의 6진이 사람을 유혹하며 그것에 의하여 기뻐하게 하는 것으로서 갈애는 거기에서 생기고 머무른다. 진이라고 한 것은 이것들이 일시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번뇌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는 경이라고 한다. 이것이 육외입처라고 하는 것으로서 그것들에 대한 갈애가 마음 가운데 에서 생기고 머무른다. 우리가 오온을 관조할 때에는 육내 입처와 육외입처를 관조하는 것어며 이러한 십이처가 곧 오온이며 이른바 색법이라는 것이다.
식조는 안 . 이 . 비 . 설 . 신 . 의의 6식으로서 사 람을 유혹하며 그것에 의하여 기뻐하게 하는 것으로서 갈 애는 거기에서 생기고 머무른다. 6근을 통하여 이루어지 는마음의 형성과정을 살펴 보면 6식 또한 명확히 관조할 수 있다.
촉조는 안 . 이 . 비 . 설 . 신 . 의의 6촉이 사람을 유혹하며 그것에 의하여 기뻐하게 하는 것으로서 갈애는 거기에서 생기고 머무른다. 6촉은 반드시 육식을 수반하여 생기며 우리가 육식을 관조하게 되면 6촉 또한 관조할 수 있다. 강렬한 갈애는 6식과 6촉을 인으로 하여 마음에서 생 기고 머무른다.
수조는 안 . 이 . 비 . 설 . 신 . 의의 6촉으로 인하 여 일어나는 수가 사람을 유혹하며 그것에 의하여 기뻐하 게 하는 것으로서 갈애는 거기에서 생기고 머무른다. 어떤 것을 일러 6촉이 수를 낳는다고 하는가? 예를 들면 어떤 것 을 볼 때에 그 대상이 있고 그것을 눈을 통해 보며 그 순간 에 거기에 대한 인식이 일어난다. 그것이 촉이다. 그리고 그촉에 이어서 좋다거나 싫다는느낌이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수이다. 강렬한 갈애가 바로 이 수를 통하여 일어나고 머무른다. 이 수는 갈애가 생기고 거기에 집착하게 하는 가 장 기본적인 원인이다.
상조는 색 . 성 . 향 . 미 . 촉 . 법에 의한 6상이 사 람을 유혹하며 그것에 의하여 기뻐하게 하는 것으로서 갈 애는 거기에서 생기고 머무른다. 상과 식, 촉은 함께 일어 나며 명법을 관조함에 있어 식 뿐만 아니라 촉, 수, 상등도 관조해야 한다. 육식을 관조하게 되면 육상 또한 수월하게 관조할수 있다.
사조는 색 . 성 . 향 . 미 . 촉 . 법에 의한 6사가 사 람을 유혹하며 그것에 의하여 기뻐하게 하는 것으로서 갈 애는 거기에서 생기고 머무른다. 사도 또한 반드시 식과 함 께 일어난다. 식, 촉, 수, 상, 사를 합하여 ‘촉오법’이 라고 한다. 이 5가지의 명법을 관조하면 상응하는 나 머지의 명법도 수월하게 관조할 수 있다.
애조는 색 . 성 . 향 . 미 . 촉 . 법에 의한 6애가 사 람을 유혹하며 그것에 의하여 기뻐하게 하는 것으로서 갈 애는 거기에서 생기고 머무른다. 육근으로 인하여 일어나 는 마음의 형성과정을 통하여 불선법을 관조하면 서 반드시 이 6애를 관조하여야 한다. 애는 탐에 포함되는 것으로서 만약 탐심을 관조할 수 있으면 6애도 수월 하게 관조할 수 있다.
심조는 색 . 성 . 향 . 미 . 촉 . 법에 의한 6심이 사람을 유혹하며 그것에 의하여 기버하게 하는 것으로 서 갈애는 거기에서 생기고머무른다.
사조는 색 . 성 . 향 . 미 . 촉 . 법에 의한 6사가 사람을 유혹하며 그것에 의하여 기뻐하게 하는 것으로 서 갈애는 거기에서 생기고 머무른다.
심과 사는 심소에 속한다. 심은 심사라고도 하는데 바깥의 경계에 대하여 일어나는거친 정신작용이다. 사는 바깥의 경계에 대하여 일어나는 세 심한 분별작용이다. 식, 촉, 수, 상, 사의 5가지 명법을 관조하게 되면 심과 사도 수월하게 관조할 수 있는 데 이것들은 보통 동시에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상의 십조를 통합적으로 관찰해 보면 이 10가지 카테 고리는 우리가 바깥의 경계를 대할 때 거의 동시에 일어나 는 것으로서 이것들에 대한 탐욕과 집착이 우리의 괴로움 을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이것들을 세밀하게 관 찰하여 하나하나 제거해 감으로써 괴로움을 근절할 수 있 게 된다.
이것을 다시 설명해 보자. 예를 들면, 과일이 몹시 먹고 싶은데 사과가 앞에 하나 놓여 있다고 치자. 안근을 통하여 바깥의 경계인 사과를 보고 이것은 사과이구나 하는 식이 생긴다. 그리고 그 사과를 먹으려는 마음이 생기는 과정에 서 촉, 수, 애가일어나고 이전에 먹었던 사과라던지 이 사 과를 먹어도 아무탈이 없을까, 혹은이 사과는 누구의 것인 가 등등 거기에 따른 여러 가지 생각이 더불어 일어나는데 그것이 상, 사, 심과 사등이다.
우리의 육근을 통하여 바깥의 경계를 대하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과 생각을 면밀하게 바라보고 따라가며 관 찰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애욕과 집착이 어떻게 발생하는 지를 아는 것이 집성제이다. 병을 고치려면 원인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처럼 집성제는 괴로움의 원인을 밝히는 것 이며 그것이 곧 갈애이고 그러한 갈애의 형성과정을 세밀 하게 나눈 것이 이상의 10가지 카테고리이다.
깨달음은 정확한 관찰과 방법에 의하여서 만
이러한 십조에 대한 분석과 관찰은 집성제를 관찰하는 데에 있어 지나치게 세분된 점도 없지 않지만 불교는 원래 이렇게 세밀하고 정밀한 것이다. 그저 신을 믿는다고 모호 하게 관념적으로 죄가소멸되고 복이 온다고 믿는 것이 아 니라 몸과 마음의 작용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우리의 괴로 움이 발생하고 사라지는 과정을 매우 자세하게 관찰하여
합리적, 과학적으로 그 근원을 제거한다. 그렇기 때문에 불 교의 수행을 제대로 하려면 모호한 관념상의 추측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산중에 좀 박혀 있다가 어느 날 깨달 음을 얻었다고 큰 소리 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깨달은 것 이 아니라 깨달았다고 스스로 착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임 을알아야 한다.
이러한 세밀한 과정을 통하여 괴로움의 근원을 명확히 파악하지 않고는 괴로움의 근원도 잘라버리기가 어렵다. 추상적이고 모호한 자기만족적인 혹은 자기 기만적인 행 위에 의해서 깨달았다고 큰 소리 치는 것은 불교를 오히려 욕되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위에서 든 철저한 관찰에 의 한수행에 의하지 않고서 그저 오래 앉아만 있었다고 깨달 음이 얻어질 수는 없다. 정확한 관찰과 수행방법에 의하지 않고 깨달았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이른바 깨달았다고 하 는 사람들이 상식에 어긋나는 터무니없는 언행을 하거나 어이없이 사소한 유혹에도 쓰러져버리는 것이다. 괴로움 의 정확한 원인과 그 발생과정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바른 치료법이 나올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라고 이름 붙인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불교 수행 의 첫걸음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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