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소식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관십이처 ' 육근과 육경의 접촉에서 번뇌가 일어나 관십이처는 법념처 수행의 핵심'

페이지 정보

호수 172호 발행인 법등[구창회] 발간일 2014-03-05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불교의 선정 서브카테고리 -

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화령 필자소속 - 필자호칭 정사 필자정보 철학박사 중앙교육원장 리라이터 -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5-25 10:21 조회 2,774회

본문

연재글: 불교의 선정 (27회)

관십이처 ' 육근과 육경의 접촉에서 번뇌가 일어나 관십이처는 법념처 수행의 핵심'

관십이처는 우리의 감각기관인 육근과 그 대상인 육경을 관하여 육근과 육경이 접촉하면서 일어나는 우리의 번뇌를 관찰하여 그것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십이처라는 것은 일체법을 감각과 지각의 인식 위에서 고찰 하여 인식의 주관적 능력으로서의 육내입처와 객 관적 대상으로서의 육외입처의 12가지로 구분한 것이다. 주관적 능력으로서의 육내입처라고 하면 우리가 이 것을 통하여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안(눈) - 이 (귀) - 비 (코) - 설(혀) - 신(몸) - 의 (마음)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을 육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객 관적 대상으로서의 육외입처는 우리가 바깥에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 대상으로서의 색 (색깔과 모양) - 성 (소리) - 향(냄새) - 미 (맛) - 촉(촉감) - 법 (인식의 대상으 로 나타나는 것)의 여섯 가지를 말하는데, 이것을 육경 혹은 육진이라고도 한다. 육진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 이 번뇌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십팔계는 앞에서 말한 십이처에 감각과 지각을 인식하는 그 자체로서의 육식, 즉 안식 - 이식  - 비 식 - 설식 - 신식 - 의식의 여섯 가 지 인식을 더하여 18가지로 나눈 것이다. 감각과 지각을 인식 하는 그 자체는 각각의 감각과 지각을 인식하는 인식주체라 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여섯 가지라는 것이다. 이처럼 육근, 육 경, 육식을 합하여 18가지의 경계, 즉 십팔계라고 부른다,.

불교에서는 일체를 삼과라고 하여 오온과 십이처, 십 팔계로 구분하는데 이것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고 본다. 존 재하는 모든 것이란 우리 앞에 현상으로서 나타나는 일체법 을 말하는 것이다. 즉, 모든 존재는 이 삼과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일체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인도의 외도들이나서양철학 등에서 말하는 것 과 같은 본체라든가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연기의 세계에 서는 그 어떠한 것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란 없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서로의 관계성 위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했다. 그러한 현상을 우리는 ‘세계’라고 부르고 ‘ 일체’라고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시간과 공간 가운데에서 우리가 감각과 지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인정하지 않 는다. 이 말은 우리의 감각이나 지각으로 인식되는 현상계만 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구히 변하 지 않는 어떤 실체나 본체는 설령 있다고 하여도 우리의 인식 이 미치지 못하는 한 그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 다. 우리의 인식이 미치지 못하면 그것의 존재여부는 우리의 판단을 벗어나있기 때문에 입증될 수가 없다.

또한 그러한 본체나 실체라는 것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 기 때문에 우리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며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수행이나 깨달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오온, 십이처, 십팔계라는 우리의 인식세계를 통하여 일체법을 설명하고 파악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우리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 은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현상계뿐인 것이다.

연기의 세계에서 우리에게 현상으로서 나타나는 것을 불 교에서는 유위법이라고 한다. 이것을 행이라고 도 한다. 제행무상 이라고 할 때의 행이다. 우리는 이 유위법, 즉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현상계 속에서 생멸변 화하며 괴로워하고 기뻐하고 집착하고 싸우면서 살아가는 것 이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이 현상계 이외에는 어떠한 세계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일체 의 현상계를 불교에서는 일체라든가 일체법이라고 하는 것 이다. 왜 이러한 오온, 십이처, 십팔계를 일체라고 하는지 한 번 살펴보자.

예를 들면, 우리가 무엇을 보거나 듣는다고 할 때 그 대상 이 되는 것이 없으면 보거나 들을 수 없다. 또 그러한 대상이 있다고 하여도 눈이나 귀라는 기관이 없으면 그러한 대상은 파악이 되지 않다. 또눈과 보이는 것이 있고 귀와 들리는 것 이 있다고 하여도 그것을 파악하는 인식능력이 없으면 그것 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즉, 우리가 눈과 귀가 있어도 인식주체가 없으면 우리는 아 무 것도 보지도 듣지도 냄새 맡지도 못한다. 우리가 눈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어서 어떤 대상을 본다고 할 때에 눈과 대상만 있다고 해서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파악이 되지 않다.

눈을 통하여 망막에 비친 것을 시신경을 통하여 인식하는 작용이 없으면 눈이든 망막에 비친 물질이든 그것은 없는 것 과 같다.

듣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귀가 있어 어떤 소리가 고막에 울려 퍼져도 그것을 인식하는 이식이 없으면 그 소리는없는 것과같다. 이처럼 인식의 대상이 되는 것, 인식 을 하는 기관, 그리고 인식하는 그 자체 가운데에서 어느 것 하나라도 없으면 그것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삼과에서는 인식의 대상을 경이라고 하고 인식기관을 근이 라고 하며 인식 그 자체를 식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러한 근 과 경과 식이 동시에 어우러져야 우리에게 비로소 현상이 나 타나는것이다. 이것을 근. 경. 식의 삼사화합이 라고 한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어우러지는 삼사화합의 순간 을 촉이라고 한다. 그 촉으로 인해서 우리는 좋다 나쁘다 고 하는 감수 작용이 생긴다. 거기에서 다시 여러 가지 생각 이 잇따라 일어나고 종합적인 판단이 서게 되며 그로부터 우 리의 기쁨과 괴로움 등등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근 . 경 . 식의 어느 하나라도 결여하게 되 면 우리에게 현상세계는 나타나지 않다. 간단히 말해서 눈이 장애인 사람은 눈의 세계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귀가 장 애인 사람은 소리의 세계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근과경과 식의 세 요소가 어우러져야 비로소 우리에게 현상 이라는 것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삼사화합에 의하여 보는 세 계, 듣는 세계, 냄새의 세계, 맛의 세계, 촉각의 세계, 또 이러 한 것들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종합적인 생각의 세계가 나타 나 우리에게 현상으로서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현 상세계의 원리를 설명한 이 삼과를 일체 혹은 일체법이라고 하는것이다.

육근과 육경의 진상을 보지 못하여 번뇌가 발생 좋아하는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의 집착이 괴로움을 만든다

문제는 근과 경의 접촉과정에서 인식이 일어나고 그것이 우리를 결박하여 괴로움을 만든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중생 은 육내처와 육외처의 진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바깥대상 과 접촉하는 순간 욕염이라는 것이 생긴다. 우리를 번 뇌에 들게 하여 괴로움을 유발하는 것은 육근도 아니고 육경 [육진]도 아니다. 육내처와 육외처가 서로 접촉하는 순간 마 음에서 일어나는 욕염 때문이다.

예를 들면 꽃을 보면 그냥 꽃이 아름답다고 느끼고 말면 그 뿐이지만 그 꽃을 꺾어 자기 집 화병에 꽂아넣어두고 싶다는 식으로 욕심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것이 우리를 속 박하여 가지지 못하면 안달하고 가지려는 것을 방해하는 것 이 나타나면 그것을 미워하고 성내며 끝없는 번뇌의 고리를 만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결박’이라는 것으로 우리의 심신을 속박하여 자유로운 삶을 방해하며 해탈에 이르게 하지 못하 는 원인이다.

육근과 육경의 접촉에서 일어나는 탐욕이 십결을 일으킨다

우리를 번뇌에 옭아매는 결박을《대념처경》의 주석서에 서는 열 가지로 구분한다. 이것을 ‘십결’ 혹은 ‘십결박’이라고 하는데 다음과 같다.


탐결 : 좋아하는 것과 접촉할 때 일어나는 욕심

진결: 싫어하는 것과 접촉할 때 일어나는 화나는 마음

만결: 나밖에 없다는 오만한 마음이 일어날 때만 결이 생긴다

견결: 보고 듣는 모든것에 대하여 사견을 내어 상.락.아.정 (변 하지 않고 즐거운 것이며 실체가 있고 번뇌 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

의결 : 어떤 사물에 접촉할 때에 거기에 감정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의심하는 것. 예를 들면, 오래된 물건에 귀신이 붙었다고 생각하는 것 등.

계금결 : 사견에 의하여 어떤 의식이나 의례 등을 해탈이나 깨달음의 방법으로 잘못 알고 행하는 것. 예를 들면 짐승의 흉 내를 낸다거나 이상한 물건에 기도하거 나 잘못된 수행방법을 행하는 미신 등 에집착하는것

유애결 : 좋아하는 것에 탐착하여 미래에는 더 좋은 상태로 태어나 그러한 것을 누리 기를 바라는 것

질투결 : 타인의 성공이나 재산, 명예 등에 대해 질투하는 것

간인결 : 자기의 것이 아까워 다른 사람과 함께 누리려고하지 않는것 무명결. 무명결은 다른 번뇌와 함께 나타나 는 것으로서 진리에 눈뜨지 못한 것


십결은 단독으로 일어날 수 없고 반드시 상응하는 심과 심 소와 함께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안근과 색진의 접촉과정 을 명백히 관찰해야 하며 이 둘의 접촉에 의하여 일어나는 번 뇌를 살펴 그 일어나는 과정과 멸하는 과정을 살피는 것이 관 십이입처의 목적이다.

눈이 어떤 것을 보았을 때는 본다는 의식을 가지고 그 보는 대상이 어떻게 느껴지는가를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듣는 것 도 마찬가지이고 맛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함으로 써 육근과 육진의 접촉에 의해 생기게 되는 번뇌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초과인 수다원과를 얻게 되면 견결 - 의결 - 계금결 우 질투결 우 간인결의 5가지 결박을 끊을 수 있다고 한 다. 제이과인 사다함과를 얻으면 현저한 탐결과 진결을 끊게 되면 제삼과인 아나함과를 얻게 되면 미세하게 남아있는 탐 결과진결을 끊을 수 있다고 한다. 제사과인 아라한과를 얻게 되면 만결과 유애결, 그리고 무명결을 체거할 수 있게 된다.

한 마디로 관십이입처는 육근과 육경의 접촉을 통하여 우 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면밀히 관 찰하여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법념처 수행의 한 방법이라고 할수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