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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게 가질수록 풍요롭다. 부탄식 행복론 승려감독 키엔츠 노부의 <나그네와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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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79호 발행인 법등[구창회] 발간일 2014-10-06 신문면수 11면 카테고리 영화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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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은주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김은주 자유기고가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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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5-23 13:50 조회 1,7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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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영화에서 불교보기 (36회)

적게 가질수록 풍요롭다. 부탄식 행복론 승려감독 키엔츠 노부의 <나그네와 마술사>

영화를 보기 시작하고 처음 얼마 동안은 사실 지겨웠습니다. 영화를 보는 눈이 높아졌는지 제3세계 영화는 많이 허술하게 보 였지요. 주인공 연기도 어색했고, 교훈을 주려는 감독의 태도도 거슬렸고, 개연성 없는 조연들도 한심스러웠습니다. 그런데 한 10분 쯤 지나자 이런 결점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순수함’과 ‘착함’이 영화의 큰장점인데, 장점이 보이기 시작한것입니다.

‘저 사람들이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있다고? 할 정도로 순진해 보이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은 마음을 훈훈하게 만 들었5니다. 반세기 전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부탄 사람들의 착 한 모습은 이기심과 물질주의에 물든 마음을 돌아보게 했습니 다.

이 영화〈나그네와 마술사〉(부탄, 2003)는 부탄의 유명한 승 려이기도 한 키엔츠 노부 감독의 작품입니다. 앞서 그는〈컵〉이 라는 영화를 통해 색다른 불교영화를 보여주었는데, 최근엔〈바 라, 축복〉이라는 영화도 만들었다고 합니다.〈바라, 축복〉은 제 1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내정되었다고 하네요.

키옌츠 노부 감독은 새로운 흐름의 불교영화를 개척했다고 생 각합니다. 그의 영화는 불교인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 ‘욕망’의 생성과 소멸에 대해 말합니다. 다소 묵직한 주제지만 무겁지는 않습니다. 영화 주인공들은 모두 크든 작든 욕망을 가진 존재들 이지만 그 욕망의 허망함을 깨달을 준비가 된 착하고 순진한 사 람들이라는 공통점을 또한 갖고 있기 때문에 영화는 오히려 가 볍고 밝은 편입니다.

〈나그네와 마술사〉의 주인공은 부탄의 한적한 시골 마을 공 무원입니다. 그는 젊고 잘생겼으며, 공무원이라는 괜찮은 직업 도 있고, 사람들에게 신망도 받고 있으며, 다른 사람 눈으로 봤 을 때는 남부러울 게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자신 의 현실에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친구의 반나 절 치 일당이 자신의 한 달 월급과 맞먹는 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는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미국에 가서 많은 돈을 벌고 싶어졌습니다. 이런 마음이 생겨 나니까 부탄에서의 삶은 시시하고 재히없고, 빨리 벗어나고 싶 은 것이 돼버렸습니다. 이렇게 무미건조한 삶을 살던 어느날 친구한테서 초청장을 받게 됩니다. 영화는 공무원 돈덥이 미국으 로 떠나기 전 비자를 받기 위해 부탄의 수도 팀부로 가면서 본격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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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드림’에 물든 돈덥을 볼 때까지만 해도 부탄이라는 나라는 평범했습니다. 우리하고 별로 다를 게 없었습니다. 돈덥이 '미국'이라는 욕망을 품고 사는 모습은 '돈을 많이 벌어 흥청망청 쓰고 싶다’는 우리 욕망과 닮았습니다. 너무나 익숙해서 정당 한 것으로 여기고 살았던 욕망입니다. 이 욕망의 타당성에 대해 서 생각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감독은 물질적 욕망의 모 순을 지적합니다.

돈덥이 시골마을 공무원이라는 자산의 현실에 만족하지 못했 던 것은, ‘미국’이라는 요망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돈덥 으로하여금 이 욕망을채우게 하는 것이 그를 행복하게 하는 것 인가, 아니면 이 욕망 자체를 제거해 버리는 것이 행복인가, 감 독은 영화를 통해 이 실험의 결과를 보여주려고 합니다.

물론 결론은 간단합니다. 욕망은 비울수록 행복하다고. 감독 은 부족한 삶이 오히려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아이러니컬한 풍경을 사실적 묘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며칠에 한 번 그것도 비정기적으로 다니는버스를 놓친 돈덥 은 히치하이킹을 하기위해 서있었습니다. 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 가장 먼저 만난 인물은 사과장사입니다. 사과장사 또한 히치 하이킹으로 팁부로 가려는 사람입니다. 차가 없는 마을에서는 이것이 보편적인 방법인 모양입니다.

순하고 맑은 얼굴의 사과장사는 급한 게 없는 사람처럼 보였 습니다. 비자를 발급받지 못할까봐 촌조해햇는 돈덥과 달리 그 는 차가 오면 타고, 자리가 없다면 다음 번 차를 타고 가겠다는 듯 여유롭습니다. 심지어 돈덥이 자기가 먼저 타겠다고 으름장 을 놓지만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그러다가 스님이 오고, 이어 쌀로 만든 페이퍼를 팔가위해 팀 부로 가는 모녀까지 가세해서 모두 다섯 사람이 차를 기다립니 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차를 얻어 타려고 길거리에 앉아있는 데 차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몇 대의 차가 지나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다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영화는 이들이 팀부로 가는 차를 기다리는 2박3일 동안의 여 정입니다. 이들은 길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차를 기다리면서 불 을 피워 음식도 만들어 먹고, 스님한테서 이야기도 듣습니다. 사 과는 얼른 팔지 않으면 썩을 수 있고, 페이퍼도 축제에 맞춰 팔 아야 하는데도 그들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차를 기다 리는 현재를 느긋하게 즐기는 모습이었습니다. 물질적인 것 때 문에 정신적인 평화를 잃는 모습은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상당한 내공을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이 바로 부탄의 평범한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불편한 교통, 이 현상만 보면 주인공들이 많이 괴로울 것 같은 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물질적인 부족은 오히려 정신 적 풍요를 만들었습니다. 차를 기다리면서 어울려 음식도 만들 어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행복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불편한 교통이 축복처럼 여 겨졌습니다.

물질과 정 신의 반비례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인상 적 이 었습니다. 과학자가 실험을 통해서 결과물을 보여주듯 감독 은등장인물을 통해서 ‘적게 갖는 것이 오히려 풍요롭다’는 자신 의 가치관을 입증했습니다. ‘미국’을 추앙하던 주인공으로 하여 금 마음을 바꾸게 하는 것으로서 자신의 실험이 성공적이었음을 입증했습니다.

그런데 영화에는 ‘아메리카 드림’에 물든 돈덥을 위해서 새로 운 이야기 하나가 추가돼 있습니다. 끼워진 이야기는 우리나라 조신설화하고 비슷한 내용입니다. 환상이라는 설정을 통해 욕망의 위험성을 경계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여자를 유독 좋아하는 마술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마술 사는 동생이 건넨 물을 마시고는 환상을 봅니다. 산속을 헤매다 가 길을 잃었는데 늙은 남자와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사는 오두 막을 발견하고, 거기서 도움을 받습니다. 그런데 점차 마술사는 젊은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됐고, 자신들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늙은 남자를 죽이려고 합니다. 계획은 실패했고, 마술사는 도망 을 치다가 사랑하는 여인까지 잃게 됩니다. 그러다가 환상에서 깨어나면서 깜짝놀랍니다.

비록 환상이긴 하지만 사람까지 죽이고자 했던 자신이 두려웠 던 것이지요. 이런 지경까지 이르게 만들었던 욕망의 위험성을 마침내 깨달으면서 다시 근면성 실한 마술사가 된다는 이야기였 습니다. 돈덥의 이야기가 현실을 바탕으로 욕망을 은근하게 표 현했다면 마술사 이야기는 욕망의 위험성을 직접적으로 보여준 이야기였습니다.

스님이 들려준 마술사 이야기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돈덥은 쌀 페이퍼를 팔러 떠나는 소녀에게 반해서 점차 미국행을 포기하 게 됩니다. 아름답고 착한 소녀가 자기 마을에 사는데 굳이 미국 으로 갈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지요. 그가 미국에 가려던 애초의 목적은 돈을 많이 벌어서 예쁜 여자를 만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미국까지 구태여 가지 않아도 자기 마을에 예쁘고 착한 소녀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미국행을 포기합니다. 자기 집에 파랑새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영화는 해피엔딩 으로 막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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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얘기는 결국 욕망을 버리면 행복이라는 곳간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욕망에 눈이 가려 그 파랑새를 보지 못할 뿐이 라는 것이지요. 좀 뻔한 결론이지만 진리는 원래 흔하고 단순한 것이지 않습니까.

스님 감독이 만든 부탄 영화가 좋은 이유는 욕망만 잘 다스리 면 사는 거 쉽지 하는 마음을 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이 단순하고 간단하게 여겨지게 하는 게 좋았습니다. 다른 영화에 서는 보기 어려운 사람을 만난 것도 좋았습니다. 너무 착하고 단 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즘 세상에 저런 사람들이 어디 있어, 할 정도로 순진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마음을 맑게 만 들었습니다. 힐링에 도움이 되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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