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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념처 공통의 수습법 구삼심 사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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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81호 발행인 법등[구창회] 발간일 2014-12-05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불교의 선정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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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화령 필자소속 - 필자호칭 정사 필자정보 철학박사 중앙교육원장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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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5-23 10:20 조회 1,83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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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불교의 선정 (34회)

사념처 공통의 수습법 구삼심 사탐우

사념처 수행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녀야 하는 세 가 지 마음과 버려야 하는 두 가지가 있다. 이것을 간단히 구삼심 사탐우라고 한다.

세 가지 마음이란 열성과 정지, 그리고 정념이다. 열성 은 사념처 수행에 대해 열렬한 흥미를 가지고 정진 노력하는 것 을 말한다. 우리가 어떤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흥미 와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악기 연주를 배우거나 축구 등 의 운동을 배우는 경우에도 처음에는 자신이 그러한 것을 배워 보려는 뜨거운 관심과 열정이 있어야한다. 그런 다음에는 기초 적인 기술을 습득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안을 생각해 보고 그러한 예능이나 운동에 필요한 기술을 몸에 익힌다. 예를 들어, 기타를 처음 배울 때에도 손가락에 물집이 생기도록 반복하여 연습하고 공차는 기술을 배울 때에도 발톱이 빠지도록 연습해 야 겨우 필요한 기술을 몸에 붙일 수 있다. 취미나 잡기를 배우 는 데에도 열정과 노력이 있어야 하듯이 우리가 괴로움에서 해 탈하기 위한기술 습득에도 이러한 열정과 노력, 정진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것이 없으면 마음을 대상에 붙들어 매어 놓기가 어려우며 사념처를 닦아도 번뇌에서 해탈할 방법이 없다.

정지라는 것은 지혜를 말하며 정확하고 치우침이 없이 그 대상을관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어떻게 하여야자 기의 수행에 가장 유익하고 적합한 것인지를 잘 알아차리는 지 혜이다.

열성과 정지는 정념의 가장 중요한 연으로서 이것들이 없으면 정념이 뚜렷해지지 않는다. 정념과 열성과 정지는 함께 작용하는 것으로서 하나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비유하자 면 활을 쏘아 과녁에 맞추는 것과 비슷하다. 활을 쏠 때 우선은 목표를 바라보며 화살을 조준해야 하는 것처럼, 정지는 정확하고 치우침이 없이 안정되게 목표를 향해 조준하는 것이 다. 즉, 쏘아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조준하는 것 이 정지이다. 그리고는 활을 당기는 노력이 필요한대 이것이 정 진이다. 마음을 수행의 대상에 머무르게 하면서 선정력을 기르 는 것은 정념에 해당되는데, 마치 활을 쏘아 과녁을 맞추는 것 과 같다. 화살을 활에 메겨 과녁을 조준한 다음 시위를 당겨 과 녁에 정확히 맞추는 것과 같이 열성과 정지, 정념은 일련의 연 속된 행위로서 이 세 가지가 제대로 갖추어져야만 사념처를 제 대로 닦을 수가 있다.

사념처 수행에서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탐심과 번뇌를 버리 는 것이다. 세간의 탐욕과 번뇌를버리지 않고서는 고도의 선정 력과 지혜를 얻을 방법이 없다. 불교에서 말하는 세간은 오온, 명색, 십이처, 십팔계를 가리키는데 이것은 일시적이며 영원하 지 않으며 굳건하지 않은 것으로서 이것에 집착하고 이것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번뇌를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의 오욕락 에 탐착하면서 자신을 영원한 것으로 생각하고 자아에 집착하 며 번뇌로 물들어 있으면 수행이 될 리가 없다.

탐욕과 번뇌를 버려야 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하여 <잡아함경>에서는 부처님께서 공작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고 계신다. 부처님께서 과거세에 공작으로 태어나신 적이 있었는데 수행 에 대단히 힘썼으므로 사냥꾼에게 절대로 잡히지 않았다. 그러 다가 어느 날 한 마리의 암컷 공작에게 마음이 빼앗겨 정념을 잃게 되자 사냥꾼에게 잡혀버렸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사념처는 수행자의 근본이며 청정한 처소이 다. 그러므로 수 행자가 탐욕과 번뇌를 버리지 못하고 항상 정념을 지니지 못하 면 공작이 마음이 미혹되어 사냥꾼의 함정에 걸려 잡혀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에 항상 살피고자 하는 대상에서 마음을 내려놓 지 말아야하는 것이다.

《대념처경》에는 “몸에 안주하여 내신을 관조하며, 몸에 안주하여 와신을 관조하며, 몸에 안주하여 내와신을 관조한다. 몸에 안주하여 생법을 수관하며, 몸 에 안주하여 멸법을 수관하며, 몸에 안주하여 생멸법을 수관한 다.” 라는 단락이있다. ‘수관’ 이라는 변화하는 모습을 따라 가며 관찰한다는 의미이 다. 한 곳을 응시하고 있으면 수관은 아 닌 것이다. 이 경전에서 말하는 몸은 애, 심, 법과 바꾸어 쓸 수 있으며 경전의 뒷 단락에서는 신과 마찬가지로 수, 심, 법에 대하여서도 똑같은 문장을 되풀이 하고 있다. 내나 외, 혹은 내외는 염처의 3개 층차를 가리킨다. 1

내외를 관한 다음에는 생멸을 관하는데 이것 또한 사념처의 중심이다. 생멸을 관한다는 것은 관하는 대상이 일어나고 사라 지는 것을 관하는 것이며, 일어나고사라지는 것의 원인을 관하 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심신인 오온의 실상을 여실하게 관 한다는 것을 말한다. 즉, 오온은 부단히 생멸변화하는 것으로서 무상한것이며, 부단히 생멸의 압박을 받는 것으로서 괴로운 것 이며, 오온은생멸이 무상한것으로서 절대 변하지 않는 ‘파’ 가 아닌 ‘무아’ 라는 것을 관찰하여 깨닫는 것이 다.

사념처를 닦을 때 매 일념처에는 모두 7종의 방법이 있다. 이것을 칠종수관이라고 하는데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무상수관으로서 신은 생멸무상 한 것으로서 항상 하는 것이 아니라고 관하여 상상을 제 거한다.

둘째, 고수관으로서 신(수, 심, 법)은 괴로운 것으로 서 결코 즐거운 것이 아님을 관하여 낙상을제거한다.

셋째, 무아수관으로서 신(수, 심, 법)은 무아이며 비애큐찌임을 관하여 아상(좌쳐)을 제거한다.

넷째, 염리수관으로서 신(수, 심, 법)은 무상하며 괴로운 것이고 무아라고 관하여 신체에 대해 싫어하는 마음[염 리]을 냄으로써 신체에 집착하지 않고 번뇌에 물들지 않게 되어 환희상을 끊는다.

다섯째, 이욕수관으로서 신(수, 심, 법)이 무상하 고 괴로운 것이며 무아인 것을 관하여 신(수, 심, 법)에 대해 염 심(번뇌)을 일으키지 않고욕심을 벗어나며 탐애를 일으키 지 않는것이다.

여섯째, 적멸수관으로서 신(수, 심, 법)은 무상이고 고이고 무아임을 관하여 어느 정도에 이를 때에 잠시 번뇌 를 제거하여 집상을 떨쳐버리고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 는것이다.

일곱째, 사견수관으로서 신(수, 심, 법)은 무상이고 고이며 무아임을 관하여 그것에 집착하는 것을 떨쳐버리고 마 음이 열반을 향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사념처를 닦을 때 하나의 관을 닦을 때마다 나머지 삼관도 함께 닦는 것을 총상념처 혹은 공상별관이 라 한다. 예를 들어 신부정관을 닦을 때 수를 고라 고 관하며, 심을 무상이라 관하고, 법을 무아라고 관하는 이러 한 방법을 총상념처라고 한다. 왜냐하면 사념처에서 일체 유위 법은 모두 무상이며 고이고 무아이며 공성이라 고 관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신념처는 무상이고 고이며 무아 이고, 수념처는 무상이고 고이며 무아이고, 심념처는 무상이고 고이며 무아이고, 법념처는 무상이고 고이며 무아인 것이다. 무 상, 고, 무아는 한마디로 공성이라는 것인데, 일체법은 모 두 무자성이고 공성이므로 사념처를 관하는 것은 결국 공을 관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별상념처는 사념처를 닦을 때 사념처를 나누어 닦는 것을 말한다. 다른 말로는 자상별관이라고도 한다. 별상념 처는 신념처, 수념처, 심념처, 법념처를 각기 나누어 닦지만 법 의 총체로서 보면 일체 유위법은 무상이며, 일체 유루법은 고이 며, 일체법은 모두 공성이고 무아성이므로 결과적으로는 총상 념처의 수행과 일치한다.

《대념처경》가운데에서는 21 종의 방식으로 사념처를 가 르치고 있다. 그중 14종의 방식으로 신념처를 해설하고 있는 데 안반념, 사종위의관, 정념정지, 관신부정,사계분별관과 묘원구관이 그것이다. 그리고 수념처와 심념처를 각 하나씩 들고 있으며, 법념처는 5종의 방식으로 해설하고 있다. 즉, 관오개,오취온, 육내입처와 육외입처, 칠각지와 사성제 가 그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사념처의 성취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룻 이사념처를 칠년만 닦으면 이과중의 하나를 얻 을 수 있다. 이 법에서 구경지를 증득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 면 불환과는 얻을 수 있다.”

이 말씀은 사념처를 부지런히 칠년만 닦으면 구경해탈의 완 전지, 즉 아라한이 되든지 그렇지 않고 번뇌가 조금 남아 있다 면 적어도 불환과는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부처님 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만큼 사념처 수행은 불교 수행의 전부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모든 수행법의 기초는 모두 사념처 를기반으로하여 변형되었거나 개선된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념처 수행은 불자라면 반드시 닦아야 할 수행방법이 며 관건은 얼마나 정확하게 사념처를 닦느냐이다. 또한 사념처 를 일상생활과 결부시켜 어떻게 닦아나가느냐이다. 사념처 수 행을 바르게 닦기 위해서는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정계의 준수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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