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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 가을날 나뭇잎과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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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33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10-12-06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신행/설화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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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박묘정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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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3 09:27 조회 2,86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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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 가을날 나뭇잎과 대화
희망을 간직하면서 새 봄에 만나요

요즈음 난 기침에 많이 시달리고 있다.

기침 할 때마다 마치 내 몸의 수분이 다 빠져 나가는 느낌이다. 웬일인지 약을 먹 어도 소용이 없다. 내 몸도 나무를 닮아 가는 것 같다. 가을이면 나무들이 잎을 떨 어뜨리는 고통을 참아 내듯이 기침으로 내 몸의 일부분을 털어 내려는 듯 계속 된다. 고통스럽지만 이것도 내가 참아 내야만 할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끝날 때를 기다리 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하천 변의 나무들도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메마른 모습으로 서 있 다. 더러는 아직도 단풍이 든 예쁜 잎을 한아름 안고 있는 나무들도 있다.

가을은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지 만 이미 수확을 다 끝낸 가을의 끝자락은 쓸쓸하고 외롭다. 메마른 나무에 스치는 건조한 바람도 쓸쓸하고 마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누렇게 말라 버린 풀들도 쓸쓸하다.

스산한 바람에 떨고 있는 나무와 풀들은 다가 오는 겨울이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울 까? 그들은 긴 겨울 동안 추위와 무서움을 오로지 혼자 힘으로 맞서 이겨 내야 한다. 그들은 매년 겨울을 그렇게 버텨냈다. 불만을 터트리지도 않고 투덜거리지도 않는 다. 묵묵히 겨울을 이겨내는 그들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벌써 부지런히 잎을 다 떨어뜨린 나무들 은 앙상한 알몸을 들어내코 다가 오는 겨 울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도 곱게 물든 잎을 가득 안고 있는 나무들은 자신 의 분신인 나뭇잎을.멀리 보내지 않으려고 꼭 붙잡고 있다. 이미 떠나려고 준비하고 있는 나뭇잎을 나무엄마는 힘겹게 안고 있 다.

역부족이다. 바람 한번 부니 나뭇잎들은 한꺼번에 우수수 떨어진다. 무엇이 그렇게 좋아서 팔랑팔랑 춤까지 추며 내려 오는 지? 안타까워하는 엄마 나무를 벌써 다 잊 어버리고 친구들과 함께 활짝 웃으며 다같 이 어디론가 가고 있다. 재잘재잘거리며 달리기 시합이라도 하는 듯 멀리 굴러간 다.

아침에 길을 걸으며 난 '나무와 풀들을 하나하나 보며 이야기를 해 본다. “밤 사 이 잘 지냈느냐?

춥지는 않았느냐?” 마치 풀들이 말을 하 는 것 같다. “지난 밤엔 조금 추웠지만 참 을 만 했다고.”

어떤 것은 지금 뒤늦게 꽃을 피우고 있 다. 자운영과 클로버는 날씨가 점점 추워 영하로 내려가는데 꽃을 어떻게 지켜주려 는지 걱정이 된다. 왜 가을의 제일 끝자락 에 힘겹게 여린 꽃을 피워냈을까? 조금 있 으면 대지가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 올 텐 데.

여린 풀들은 추위에 온 몸과 잎을 한데 모으고 웅크리고 있다. 사람들도 추우면 몸의 면적을 최대한 줄이려고 잔뜩 웅크리 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보기에 식 물들은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지만 그들 이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하는 행동은 인 간과 비교했을 때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따사로운 햇살이 대지를 따뜻하게 비춰 주는 한낮이 되면 웅크리고 있던 식물들은 저마다 기지개를 켜기-시작한다. 태양을 향해 온 팔을 힘차게 벌려 따뜻한 햇살과 싱그러운 기운을 받아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다. 마치 포근한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배불리 먹고 만족한 표정으로 엄마 눈을 바라보고 있는 아기와 같다. 행복한 얼굴 을 하고 있는 식물들을 보고 있는 내 얼굴 에도 저절로 미소가 퍼진다. 이 순간 행복 이라는 예쁜 소녀가 살며시 찾아와 내 품 에 안긴다. 난 역시 행복한 사람이다.

행복이란 단어는 보기만 해도 마음을 설레게 하고 바로 행복한 감정 속으로 빠져 들게 된다.

마치 행복이라는 마술 속 세계로 빨려 들어 가듯이 우리들은 모두 행복해 진다. 마술이 풀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계속 마술에 걸리면 되니까.

오늘 아침 기온이 영하 5도까지 내려 갔 다고 한다. 그나마 살아남기 위해 버티던 꽃과 풀들이 힘을 잃고 축 늘어져 있다. 내 몸과 마음까지도 꽁꽁 얼어 버린다.

계절은 참 잔인 한 것 같다. 어김없이 찾아와 겨울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그모든 풀들을 하룻밤 사이에 얼려 버렸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겨울 동안 교들은 내년 봄 다시 예쁜 새싹을 틔울 꿈을 꾸며 모든 준비를 시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 은 결코 겨울 동안 잠만 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겨울을 보낼 준비들을 한창 하고 있다. 집집마다 겨울을 나는데 필요한 김장을 하느라고 바 쁘다. 우리집도 물론 김장을 마쳤다. 마음 이 부자가 된 것 같다.

나도 겨울 준비를 마쳤으니 아마 내 몸 과 마음의 찌꺼기들도 기침과 함께 -다 털 어져 나왔을 것이다. 드디어 나를 괴롭히 던 기침도 곧 멈출 것이다.

-박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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