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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서 본 밀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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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73호 발행인 법등[구창회] 발간일 2014-04-03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학술 / 전시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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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종열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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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5-25 09:28 조회 2,62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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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서 본 밀교승

1. 신라 혜통국사


신라로 돌아와 국가의 재난과 왕실의 병을 다스려 국사가 되다.


용은 혜통이 자기를 쫓아낸 것을 원망하여 본국의 문잉림에 와서 인명을 더욱 해쳤디. 이때에 정공이 당에 사신으로 갔는데 혜통을 보고 일러 말하기 를 “법사가 쫓은 독룡이 본국으로 돌아와 해가 심하니 빨리 가서 그것을 없애 주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정공 과 함께 인덕 2년 을축에 본국으로 돌아 와 그것을 쫓아버렸다.

용은 또 정공 을 원망하여 이에 버드나무로 변하여 정공 집의 문 밖에 나있었다. 정공 이 그것을 알지 못하고 다만 그 무성한 것을 기려서 매우 사랑하였다. 신문왕이 죽고 효소왕이 즉위하여 산릉을 닦고 장사지내는 길을 손질하였는데, 정공 의 버드나무가 길을 가로막아 유사가 베어 버리려 하였 다. 정공 이 화를 내며 말하기를 “차라리 내 머리를 베지 이 나무는 베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유사가 이를 아뢰니 왕이 크게 노하여 사구에게 명해 말하기를 “ 정 공이 왕화상 의 신술을 믿고 장차 불손한 일을 도모하려 하여, 왕명을 업신여 기고 거역해서 내 머리를 베라고 하니 마땅히 좋아하는 바에 따를 것이다”라고 하였 다. 이에 그를 주살하고 그 집을 묻어버렸다. 


당나라 공주 병의 원인이었던 교룡은 혜통 국사의 주역으로 공주의 몸에서 빠져 나온 다.

혜통의 신력에 앙심을 품은 교룡은 스님의 조국인 신라로 숨어들어 백성들에게 해악 을 준다. 당나라로 사신을 온 정공은 독룡의 해악을 혜통에게 알린다. 혜통은 서기665년 신라로 돌아온다. 혜통은 문잉림의 독룡을 다시 쫓아버린다. 하지만 독룡의 앙심은 더욱 깊어 이번에는 당나라에 있던 혜통 스님에게 독룡의 해를 전한 정공의 집 문앞의 버드 나무로 숨어든다. 효소왕 이 즉위하자 선대왕의 장례를 치르는 길의 방해가 되는 정공의 버드나무를 배려한다. 정공은 자신이 아끼는 버드나무를 베려면 자신의 목을 베라 한다. 이에 격노한 효소왕은 정공을 죽이고 버드나무를 베어버린다. 이는 오랜 기간 버드나무 에 깃들어 있던 독룡의 계락으로 혜통을 불러들인 정공에 대한 복수였다.


조정에서 의논하기를 “왕화상이 정공과 매우 친하여 당연히 꺼리고 싫어함이 있을 것이니 마땅히 먼저 그를 도모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갑병을 시켜 그를 찾아 잡게 하였다. 혜통 은 왕망사에 있었는데 갑병이 오는 것을 보고 지붕 에 올라가서 사기병과 붉은 먹을 묻힌 붓을 가지고 소리치기를 “내가 하는 것을 보아 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에 병의 목에 한 획을 긋고 말하기를 “너희는 마땅히 각 자의 목을 보아라”라고 하니 그것을 보니 모두 붉은 획이 있어서 서로 보고 놀랐다. 또 소리쳐 말하기를 “만약 병의 목을 자르면 응당 너희 목도 잘릴 것인데 어찌 하겠 는가”라고 하였다. 그들이 도망와서 붉은 획이 있는 목을 왕에게 보이니 왕이 말하기 를 “ 화상 의 신통력이 어찌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바 이겠는가”라고 하고 이에 그를 내버려 두었다.

신라왕궁은 정공을 주살하고 그와 교분이 두터운 혜통을 두려워하게 된다. 신하들은 혜통도 없애야 훗날을 기 할 수 있다고 왕에게 주청한다. 이때 혜통은 왕망사(지금의 동 국대 경주캠퍼스에서 왕망사라 적인 기와가 발견되어 왕망사의 위치를 추정 할 뿐이다. 이곳은 석장리라 불리는데 신라의 대표적인 조각승이자 밀법승인 양지 스님의 석장사 바로 옆이다.)에 주석하고 있었다. 왕은 군사들을 보내 스님을 죽이려하자 붓과 호리병 으로 신통을 보여 군사를 물리친다. 군사들은 왕에게 혜통 스님의 신통력은 사람의 힘으 로 막을 수없다고 간하고, 그를 내버려 둔다.

왕녀가 갑자기 병이 들자 조서를 내려 혜통이 치료하게 하였는데 병이 나아 지니 왕이 크게 기뻐하였다. 혜통은 인하여 말하였다. “정공은 독룡의 해를 입 어 죄 없이 나라의 형벌을 받았습니다.” 왕이 그것을 듣고 마음으로 후회하고 이에 정공 의처자를 면죄하고,혜통을 국사로 삼았다.

용은 이미 정공에게 원수를 갚고 기장산에 가서 웅신이 되었는데 해독을 끼치는 것이 더욱 심하여 백성들이 매우 괴로워했다. 혜통은 산 속에 가서 용 을 깨우쳐 불살계를 주었고, 웅신의 해가 이에 그쳤다.

혜통의 신통력은 신라인들의 큰 버팀목이 되었다. 왕녀가 갑자기 병이 들자 왕은 정공 의 사건에 대해 혜통국사에게 사과하고 왕녀의 병을 고쳐 주기를 간청한다. 정공에게 복수를 한 독룡은 기장산으로 숨어들어 웅신이 되어 백성들을 괴롭힌다. 스님은 자신과의 질긴 인연을 기진 독룡을 죽이기를 포기하고, 독룡을 교화 하기로 한다. 스님의 신통한 주력과 설법에 감동한 독룡은 스님에게 불살생계를 받고 해악을 멈추었다 한다. 이는 혜 통국사의 법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다. 자신과 끝없는 대립으로 많은 이들에게 해 악을 끼친 독용을 부처님의 법으로 귀의시키고 불자로서 계율을 지키는 웅신으로 변화 했다는 것이다. 이는 혜통의 교화 능력을 단편적으로 말해 주는 근거가 된다.

제6신주 혜통항룡

“신라로 돌아와 교룡을 물리치고 국사가 되다”조


신문왕의 병을 고치고 억울한 신하의 원한을 풀어주다


처음에 신문왕이 등창이 들어 혜통에게 치료해주기를 청하니 혜통이 와서 주문을 외우자 즉시 나았다. 이에 말하기를 “폐하가 예전에 재상의 몸으로 장인 신충 을 잘못 판결하여 종으로 삼아서 신충이 원한을 가지고 윤회하여 보복하는 것 입니다. 지금 이 등창도 또한 신충의 탈이오니 마땅히 신충을 위해서 가람을 창건하 고 그 명복을 빌어서 그것을 풀어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왕이 심히 그렇다고 생각하 여 절을 세우고 이름을 신충봉성사라고 했다. 절이 완성되자 공중에서 노래하는 소리가 났는데 이르기를 “왕이 절을 지어 주셨기 때문에 괴로움에서 벗어 나 하늘에 태어났으니 원한은 이미 풀렸습니다”라고 하였다. 어떤 책에는 이 사실이 진표의 전기에 실려 있으나 잘못된 것이다. 인하여 그 노래를 부른 곳 에 절원당을 지었는데 그 당과 절이 지금도 남아 있다.

제6 신주 혜통항룡 “신문왕의 병을 고치 다” 조


혜통 국사의 신통력은 왕이 재위 하면서 무심히 겪은 원한을 풀어 신하와 백성들이 불 만을 가지지 않도록 한다. 삼국유사의 이야기는 독용이라는 스님의 원적을 설정하고 끝 없는 싸움을 벌이지만 결국에는 불법으로 교화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로 만드는 능렦이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주력으로 재난을 막는 것은 일시 적인 방편이다. 부처님의 참가르침을 실천하여 업장을 소멸하고 열반의 길로 들어서게 혜통 국사는 그 법력을 발 한 것이다.


자료출처: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최남선〈삼국유사〉,홍법사〈불교대사전〉 

편집 정리 = 김종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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