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소박한 예술을 사랑한 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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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63호 발행인 법등[구창회] 발간일 2013-06-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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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5-31 10:38 조회 2,676회본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 (5월 25일 〜 7월 21일)
일본 근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민예학자인 야나기 무네요시, 한국이름으로 유 종열이다. 그는 로뎅, 윌리엄 블레이크 등 서구예술가를 시작으로 한 문화 에 대한 관심을 조선, 일본, 중국으로까지 넓혀 동서양을 초월한 미술교류활동을 활 발하게 펼쳤다.
윌리엄 블레이크, 조선, 영국, 일본, 중국 및 기타 아시아 민족문화에 대한 관심에 따라 진행되었던 그의 수집활동과 버나드리치와의 오랜 교우관계 등 문예사상가로 서 야나기 무네요시의 업적과 활동을 일본민예관 소장품을 통해 살펴보는 전시가 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에서 5월 25일부터 7월 21일까지 열린다.
잡지 시라카바, 윌리엄 블레이크 그리고 버나드 리지
1910년대부터 일본의 미술계에서는 일본과 유럽의 교류를 도모하고 유럽예술계 의 정보와 새로운 경향을 이입하려는 노력이 여러 경로를 통해 활발하게 이루어졌 다. 잡지 무시라카바는 1910년부터 1923년까지 야나기 무네요시를 비롯한 시가 나오야 (1883-1971,문학가), 무샤노코지 사네야츠(1885-1976, 문학가), 기시다 류세이 (1891-1929, 화가), 우치무라 간조(1881-1930, 종교 사상가) 등이 참여하여 기독교 신학을 비롯한 서양철학, 서양미술 등 서양문화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당시 야나기 무네요시의 역할은 기 획, 편집에서부터 표지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졌다. ‘시라카바’ 동인은 잡지발간 이외에도 강연회, 전시회 등의 활동을 펼쳤다.
야나기가 조선도자기를 접한 시점 은 1909년『시라카바』활동을 준비할 무렵 골동품점에서 모란무늬 항아리 한 점을 구입하게 되면서부터였다. 하 지만 본격적으로 야나기 무네요시의 관심이 조선으로 향하게 된 것은 조각 가였던 아사카와 노리타카(1884~1964)로부터 선물받은 조선시대 도자기 한 점을 보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아사카와 형제들의 도움으로 그는 경성,경 주 등 잘 알려진 도시를 비롯한 계룡산 가마와 같은 공예품 생산지를 여행하여 수집 을 행하였다. 그가 수집했던 공예품은 식민지 조선에서 사람들로부터 크게 주목받 고 있지 않았던 것들을 수집하였는데 고려시대, 조선시대 도자기를 시작으로 하여 가구, 각종 기구, 회화, 자수, 금속공예, 목공예, 석공예 등 전방위에 걸쳐져 있다.
야나기는 이러한 공예품에는 조선민족의 정서가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하였고, 식 민지 조선인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야나기는 조선의 고유한 전통문화가 일본군의 탄압에 의해 소실될 수도 있음을 우려하였고 1924년 조선민족미술관을 설 립하였다. 야나기는 예술이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태어난 것’으로서 ‘무심’, ‘무 작위’, ‘무의식’과 같은 개념으로서 설명하였다. 20세기 초 한국에서 미술사에 대한 개념과 지식이 부족했던 상황에서 그의 미학은 일본이 창출한 조선의 이미지에 상 당한 부분을 차지하였고 21세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예술이 야나기의 미학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동양사상과 종교의 구태 의연한 전통을 극복하기 위하여 서구근대문화와 기독교사상을 추종하였던 야나기 의 시각과 사상을 동양을 회귀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동양미의 재인식은 이 후 그의 예술론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도록 이끌었으며 종교미술, 민예론에 대한 체 계화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였다. 이번 전시는 야아기의 예술론을 순서대로 잘 알 수 있는 좋은 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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