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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 화엄 밀교의 전통이 남아있는 봉정사 삼성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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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56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2-11-07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연중기획 산신각 탐방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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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종열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안동 김종열 기자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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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05 05:26 조회 2,33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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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 화엄 밀교의 전통이 남아있는 봉정사 삼성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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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불법의 향기를 품은 국화 같은 고장


안동하면 소수서원, 양반 마을, 하회탈, 간 고등어 등 여러 단어들이 떠오른다. 몇 해 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한국을 왔을 때,하회마을 류성룡의 종가와 봉정사를 방문했다. 하회마을은(중요민속자료 제122호)은 풍산 류씨가 600여 년간대대로 살아온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다. 마을 이름을 하회 라 한 것은 낙동강이 ‘3’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 데서 유래되었다. 하회마을은 풍수지리학적으로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였다. 유학이 성행하고, 양반가의 명망으로 이름이 높은 안동에는 의의로 많은 불교문화재가 남아있다. 고려시대 전탑의 웅장한 모습을 전해주는 신세동 전탑을 비롯해 살아있는 불교건축 박물관인 봉정사, 거대한 통 바위 위에 불두 만 조성해 얻은 제비원 미륵불 등 발길 닫는 곳 마다 불교의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봉정사는 소백산 자락의 천등산에 자리한 전통 사찰로 국보 제15호인 극락전, 국보 제311호인 대웅전, 보물 제1614호 후불벽화, 보물 제1620호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보물 제 448호인 화엄강당, 보물 제449호인 고금당, 덕휘루, 무량해회, 삼성각 및 삼총석탑과 부속암자로 영산암과 지조암, 중암이 있다. 천등산 자락은 국화 재배로 유명하다. 사찰이 위치한 서후면은 해마다 10월 마지막 주에 국화 축제를 열고, 전국의 불자와 관광객들에게 국화의 진한 향기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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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선녀도 감복한 불퇴전의 수행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이 창건하신 사찰이다. 스님이 한창 수행 정진 할 때, 산세 좋기로 유명한 대망산(지금의 천등산) 기슭의 바위굴에서 공부했다. 스님의 수행 정진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천상4션여카 바위굴을 찾아 하늘에서 가져온 등불로 굴 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는 설화가 있다. 이때부터 스님이 공부하던 바위굴을 ‘천등굴’이라 하고, 대망산이라 불리던 산의 이름도 ‘천등산’이라 부른다. 능인스님은 이후 더욱 수행에 매진하여 얻은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서 날리니 지금의 봉정사 자리에 떨어져 산문을 개산한다. 스님이 날린 종이 봉황이 머물렀던 곳이라 하여 봉정사라는 이름을 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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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는 창건 설화만큼 오래 된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 다름 아닌 봉정사 극락전이다. 가공석 및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과 주심포건물로 고려시대의 건물이지만 통일신라시대의 건축 양식을 내포하고 있다. 이 건물은 감실형으로 주벽이 토벽으로 밀폐되고 따로 낸 문얼굴에 널빤지 2장을 사용한 문짝을 달았고 좌우 협칸에는 살이 각 11개가 달린 광창이 있고, 그 구성이 매우 간결하면서도 아름답다. 본존은 아미타불만 모시고 있지만, 후불탱화는 본존불인 아미타불과 좌우 협시보살인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그린 삼존도형식을 취한다.



천등산을 감싼진언의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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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산이었던 천등산은 봉정사 극락보전 왼편으로 삼성각을 두고 있다. 여느 삼성각과 마찬가지지만, 외전으로 자리하는 터라 그리 크지 않은 소박한 단칸집이다. 그러나 출입구 양쪽에 벽을 설치하여 언 듯 보기에는 단칸이지만 세 칸으로 보이는 양식이다. 산신, 칠성, 독성을 나란히 봉안한 전각은 천등을 이어나가는 외호신으로 그 자리를 지켜가고 있다. 

산신도와 산신상을 함께 모셨는데, 지나치게 커 보이는 소나무는 다른 지역의 산신도의 양식과 조금 다른 특별함을 보인다. 산신각을 천천히 살피던 중 지붕아래 보에서 범자 옴자와 마자를 발견 할 수 있었다. 그동안 여러 사찰의 산신각, 삼성각을 취재했지만 범자가 보나, 도리에 새겨진 것은 처음이었다. 천등사 대웅전의 우물 천정에서도 관세음보살 육자진언을 만났다. 정확한 사료의 분석과 검토를 해야 밝혀지겠지만,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의 화엄종의 수 사찰인 부석사를 중심으로 널리 퍼진 화엄 밀교에 그 연원을 추정해 본다. 또한 11세기 이후 우리나라에 소개되고, 13세기 경에 널리 퍼진 밀교 경전 『대승장엄보왕경』의 육자진언과 성관음구제사상의 영향으로 밀교적 화엄사상이 고려 말기에 이 지역에도 퍼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제비원 미륵불과 성주풀이

 

서후면 봉정사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제비원 미륵 석불은 보물 제116호로 자연암벽에 불신을 새기고 그 위에 머리는 따로제작하여 올려놓은 거구의 불상이다. 미소를 띤 풍만한 얼굴은 긴 눈과 우뚝 솟은 코, 붉게 채색된 두터운 입술과 함께 장중하고 근엄한 인상이다. 삼도가 뚜렷한 목에는 특이하게 연주문을 새겨 장식하였다. 양쪽 어깨를 덮은 통견의 법의 주름은 도식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대좌는 불상의 발아래 단판연화문으로 음각으로 새겼다. 얼굴의 강한 윤곽이나 세부적 조각 양식으로 보아 11체기 무렵, 고려 마애불의 유행과 함께 제작된 불상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음각으로 새겨진 수인에는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오른손은 내려서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 중품하생인을 짓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미타여래이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이 마애불의 이름은 제비원 미륵으로 불리고 있다. 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과도기 불교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단서이다. 자연거석을 하나의 석상 보고자 하는 고려 마애불의 특징적 이기도 하다. 또한 불상의 일부를 입체적으로 표현된 양식은 통일 신라의 조각 기법과 고려의 표현 양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신라 말기부터 고려 초기 사이의 정치적 변동과 맞물려 미륵신앙이 점차 고개를 들었다. 특히 하층민들의 경우 종교성이 강한 미륵신앙에 새로운 희망을 걸게 된다. 제비원 미륵불은 고려 건국의 복잡한 정세를 타고 변모하는 민중불교의 성격을 가지는 미륵신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석불상이라 볼 수 있다.

제비원 미륵불은 오랜 민속신앙인 성주신앙과도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가옥을 짓거나 이사를 하면 성주신에게 고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성주신은 가택신을 말하는데 선조들은 성주신이 가옥을 지키고, 가옥내의 모든 일을 관장한다고 믿었다. 바로 그 민속 신앙의 발원처가 안동의 제비원 미륵 부처님이다. 성주고사 때 부른 ‘성주풀이’에는 “성주의 근본이 어드메냐? 경상도 안동 땅 제비원이 본일러라. 제비원에 솔씨 받아...”라는 가사에 나오듯 이곳 제비원 미륵이 바로 우리나라 모든 가택을 지켜주는 성주신임을 확인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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