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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기 대상 "가족과 함께 하기에 시련도 감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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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65호 발행인 법등[구창회] 발간일 2013-08-05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참된 나를 찾는 여행 후기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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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5-31 06:38 조회 1,75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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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기 대상 "가족과 함께 하기에 시련도 감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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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와 불교총지종의 지원으로 “참된 나를 찾는 여행”과 “한마음 캠프” 가 진행된다는 말에, 들뜬 마음으로 신청서를 받아들었다. 학교대표로 나가게 된 부산 시수학과학경시대회와 거짓말처럼 겹치는 것이었다.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상황 이었다. 그러나 뜻밖의 희소식이 들려왔다. 나와 같은 상황인 친구들, 선생님이 계셨던 것이었다. 그렇게 나를 포함하여 경시대회에 참가한 4명과, 음악교과서 편집 작업으로 인해 점심때부터 시간이 나시는 오영주 선생님, 그 외 2학년 후배 2명과 3학년친구 2명 으로 조금은 특별한 우리조가 구성되었다. 팀명은 앙스!  입에도 쫙쫙 붙고 숨 은 뜻도 좋은 팀명이라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D-day인 6월 1일 오후, 시험을 성공리에 마친 태정이, 두원이, 형탁이와 나, 해운대에서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신 오영주 선생님, 그리고 건강상의 문제로 합류가 늦어진 광수까지, 6명이 동래역 모였다. 근처의 터미널에서 이동하여 진주행,고속버스 에 몸을 실었다. 맨 뒷자리를 점령한 우리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설렘이 묻어있었다. 그 만큼 우리는 이 캠프를 원하고 있었다. 최상의 라인업과 최고의 선생님으로 구성된 우리 조인만큼, 출발부터 흥이 넘쳤다.

역에 하차한 후,10분정도 도보로 이동하여 진주성에 도착하였다. 진주성에 와본 것 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우리 옆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어느새 진주성 입구가 눈앞에 펼쳐졌다. 먼저 출발한 우리 조원 태형 이와 승환이, 수용이, 소나무맛 프링글스 김재근 선생님이 우리가 오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계셨다. 감격적인 재회를 마친 우리는 우리의 정서와 얼이 고스란히 녹아있 는 진주성속으로 참된 나를찾는 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진주에서 자라신 김재근 선생님의 설명으로 촉석루를 지나, 성곽을 한 바퀴 돌아보 았다. 진주성의 곳곳에서 우리의 멋을 느낄 수 있었다. 촉석루에서 논개가 왜적을 끌어 안고 몸을 던졌다는 호수를 바라보고 있자니 , 왠지 가슴 한쪽이 뭉클했다. 나는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 내가 할수 있는 것은 얼마 없지만, 논개의 정신을 본받아 나라 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는 생각에 추억도 많이 남겼다. 그러고 보니 도시의 건물 숲을 떠나 이렇게 역사적인 장소에, 좋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며. 걸어본 것도 제법 오랜만 이었다. 가끔씩은 이렇게 여유를 가지고 재충전을 하는 것도 필요한데, 그동안 이런 일, 저런 일로 너무 숨 믹히게 지내 오지 않았던가! 묵혀있던 숨이 그제야 풀리는 듯한 기 분이었다.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준 진주성에게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목면시배지로 이동하였다.



숨겨진 문익점선생의 다른모습

우리는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이동하여 목면시배지에 도착하였다. 목면시배지는 우 리나라에 목화를 들여오신 것으로 유명한 문익점 선생이 목화를 재배하고 면을 처음으 로 생산하던 곳이다. 문익점이 목화를 들여왔다는 것은 어릴 적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 고, 초등학생들도 아는 상식적인 것이지만, 책이나 매체를 통한 간접경험이 아닌 직접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많이 기대되었다.

문익점은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나라 백성들도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도록 하기 위 하여 원나라의 목화씨를 들여온 애국자로써 유명하다. 그러난 그분이 존경받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나라에 목화를 들여온 첫 번째 사람이 문익점이 라는 증거는 없다. 이 전에도 목화씨를 가지고 들어온 사람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거기서 그쳤다. 그들은 목화씨를 들여오기만 할뿐 성공적으로 수확하 여 면직물과 생산방법을 대중화시켜 백성들의 겨울을 따뜻하게 하지는 못하였다는 것 이다. 하지만 문익점은 해냈다. 숨겨 들여온 몇 개의 씨 중 가까스로 한 개의 씨를 개화 시키는데 성공하였고, 면과 생산방식을 백성들에게 널리 알렸던 업적은 우리나라 의생 활의 혁명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가이드분의 유익한 설명을 5분정도 듣고, 우리는 본격적인 구경에나섰다. 우선 박물 관을 돌아보았다. 목화씨의 종류나 재배방법뿐만 아니라 면을 생산하는 과정을 커다란 모형이나 동영상으로 직접 확인해볼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친 우리는 실제 목화밭으로 나갔다. 넓게 펼쳐진 수천 평의 목화밭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목화를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혹시 이번 기회에 볼 수 있을까 기 대를 했었는데, 아쉽게도 철이 지나는 바람에목화를 보지는 못하였다. 실제로 풀을 베 시며 일을 하고' 계신 농민분이 한 분 계셨지만, 바쁘신지 아쉽게도 대화를 할 수는 없 었다.

가이드분에 따르면 문익점은 엄청난 효자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삼년동안이나 산소 곁에서 먹고 자며 지켰다는 것이다. 삼년 상을 치루 던 중, 왜적 이 들어와 백성들을 약탈하던 때가 있었다고 하는데, 모두가 집을 버리고 피난을 갈 때 에도 문익점은 묵묵히 어머니의 묘를 지켰다고 하고 이에 왜적미저 감동하여 다행히 화를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를 높이 평가하여 나라에서는 효자비각이라는 비석도 세워주었다고 한다. 문익점은 여러모로 참 배울 것이 많은 위인인 것 같다. 이전에는 문익점하면 목화만을 생각하였는데 이렇게 효성이 지 극한 사람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목면시배지에서 이런 저런 많은 것을 깨닫고 반성하였다. 마음이 한 뼘은 자란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협동심을 기르기 위하여 우리 조 모두 함께 점프샷을 찍은 후, 목면시배지를 떠났다.

숙소로 가기 전, 우리는 근처의 천연잔디구장이 있는 이름 모를 초등 학교에 잠시 방문하였다. 이런 저런 재미난 사진들도 찍고잠시 휴식을 가졌다.



미션과 명상 그리고 즐거운 밤


ANG's는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이자 숙소인 지리산 청소년수련원으로 향하였다. 어 디서 많이 들어본 한 이름에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설마 하였는데, 그 설마 가 기어코 사람을 잡고 말았다. 약 5년 전 초등학교 때 왔었던 그 수련원이었다. 내가 그다지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내 일생 최악의 수련원이었던 만큼, 걱정이 앞섰지만, 5 년이면 대통령도 바뀌는 긴 시간이 아닌가. 어쩌면 재건축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기대를 걸어봤다. 하지만 왜 안 좋은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는 것인가. 더러운 화장 실과 벌레와 공동계약을 맺은 숙소까지 .

변한 것은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놀러온 캠프가 아니기도 하고, 이렇게 좋은 친구들, 선생님들과 함께 기에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다.

숙소를 배정받아 짐을 풀어놓고, 영양가 넘치는(차마 양심에 찔려 맛있다고는 못하 겠다.) 저녁식사를 섭취한 우리들은 곧 저녁 활동에 들어갔다. 사실 이번 활동이 캠프 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었다. 바로 조별 미션수행과 명상이었다. 캠프의 테마가 나 를 찾아 떠나는 여행인 만큼 나에 대해 다시 되돌아보고 생각해보는 시간이 정말 중요 했다. 우리 조의 미션은 “감사하는 마음 표현하기”였다. 그렇게 웃음기 넘치고 활기차 던 우리조도 주제가 밝혀지고 개인 시간이 주어지니 모두 적는 것에 몰두하여 자연스 레 정숙이 되었다.

사실 세상은 감사할 것투성이다. 복권에 당첨되었다거나, 돈을 주었다거나, 중요한 시험에서 찍은 문제가 우연히 맞았다는 것과 같은 일 이외에도 돈을 잃어버리거나, 버 스를 놓친다거나, 집에 휴대폰을 두고 나온 것과 같은 얼핏 보기에는 짜증나고 부정적으로만 보이는 일들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면 충분히 감사할만 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감사할 것들이 연속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고, 이렇게 감사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에도 역시 감사할 줄 알아야한다.

나 역시도 감사한 것이 참 많지만, 현재 우리 가족이 힘든 상황에 처해 있기도 하고, 오늘 방문하였던 목면시배지의 주인공 문익점의 효성이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아, 부모 님을 비롯한 우리 가족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기로 하였다.

골수이식을 받아야 할 정도로 갑작스레 악화된 동생의 건강에 우리 가족은 많은 고 난과 역경을 맞닥뜨려야 했다. 다행히도 내 골수가 동생의 골수와 꼭 맞아서 한 시름 덜 수 있었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이 현실이었다. 요즈음 이 런 생각이 자주 든다. 엄밀히 말하면 어머니와 동생을 잘 못 본다는 작은 불편함 외에 는 문제 될 것이 없는 나도 이렇게 슬프고, 지치고 힘이 든데, 당사자이자 어린 나이에 지독한 병마와 씩씩하게 싸워 나가고 있는 내 동생과 동생을 간호하기 위해 같이 무균 실에 들어가셔서 제법 오랜 기간 동안 밖에 나오지 못 하시면서도 우라걱정 때문에 하 루도 마음 편하실 날이 없으신 어머니, 동생 간호하랴 우리 뒷바라지하랴 하루에도 몇 번씩 양산과 부산을 오가시며 고생하시느라 요사이 핼쑥해지신 우리 아버지, 고 3이라 신경 쓸 첫도 많고 힘든 시기임이 분명한데도 혼자서 활기차게 뭐든지 잘 해나가고 있 는 우리 형은 얼마나 힘들고 괴롭겠는가.'가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슬퍼서 '눈물 이 난다. 그래서 더더욱.감사하다. 동생의 것과 꼭 맞아줘서, 내가 형으로써 이런 영광 스럽고 소중한 일을 할 수 있게 해준 내 골수한테도 너무 고맙고, 어른스럽게 씩씩하게 잘 이겨나가고 있는 내 동생에게도 너무 고맙고, 고생 많으신 우리 부모님과 형까지 모 두 너무 감사하다. 고기는 두드릴수록 연해지지만, 철은 두드릴수록 단단해진다. 우리 가족은 분명 철과 같은 가족이다. 이러한 시련과 역경 끝에는 분명 더욱 성장한 우리 가족이있으리라.

늘 감사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만, 이렇게 글을 적어 내려가고 떠올려보니 감 정이 북받쳐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뼈 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나를 비롯한 친구들도 마무리를 해갈 때 즈음 김재근 선생님이 우리 방을 방문하셨 다. 활동 중 하나인 명상을 하기 위해서였다. 넓은 방에 둘러앉아서 눈을 감고 명상을 하였다. 오늘은 이런 저런 느낀 점이 많은 하루이기도 하고, 간만에 가지는 명상시간이라 생각할 것이 많았다. 오늘 배운 점과 깨닫고 느낀 것을 되새겨보고 내 생활을 되살 펴보며 반성하고 있으니, 어느새 기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5분이 다 지나갔다. 다시 뜬 아이들의 눈에 감을 적에는 없었던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음을 느꼈다.

명상을 끝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우리의 멘토 오영주 선생님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학교생활이나 여러 고민들을 이야기하다보니 시간은 금세 지나갔고, 얼마나 지났을까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끊었다. 노크소리는 어 딘지 모르게 신나있었다. 기대를 하며 문을 연 우리 앞에는 치킨이 있었다. 닭 냄새가 나자 조별미션과 명상 등 다소 진지한 활동으로 인히여 조용해져 있던 아이들의 눈이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환희에 젖어 소리를 질러댔고 환영의 댄스를 추 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배불리 먹은 저녁에 배가 차있었음에도 8명이 라는 최소의 인원으로 닭 여섯 마리를 게눈 감추듯이 없애버리는 기적을 일으켜냈다. 이로 인해 우리의 예산은 한 순간에 사라져버려 오영주 선생님께서 사비로 메우셔야했 다는 슬픈 전설이 있지만, 그때 그 순간, 우리는 정말 행복했다.

미친,듯이 먹어서 배가 남산 만해진 우리는, 간단한 세면을 한 후 열두시까지 오영 주 선생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다가 취침에 돌입하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잘 생 각은 추호도 없었다.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있는 이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보내고 싶은 것이 우리 마음이었지만, 낮에 친 경시대회와 오늘 했던 활동들의 피로와 함께 온 몸을 치킨으로 가득 채운 후폭푷으로 나타난 식곤증의 연합공격으로 인해 하나 둘씩 꿈나라 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첫째 날을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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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영달보다는 진정한 학자로


해가 떠오르는 이른 새벽, 우리는 기상을 하여 급속도로 아침식사를 마무리 지은 후, 오늘의 일과를 시작하였다. 난 잠자리가 바뀌어도 어디서든 잠을 잘 자는 편인데도, 전 날 밤에 이상하게도 잠을 제대로 못자서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우리는 가장 먼저 남명조식유적으로 향하였다. 조식은 퇴계 이황과 함께 1쎄기 영 남파의 쌍벽을 이루는 학자였다. 그는 어릴 적부터 머리가 뛰어나, 벼슬길에 오를 기회 를 여럿 얻었으나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벼슬을 하지 않고 오로지 학문에만 매진하였다 고 한다. 그는 많은 뛰어난 제자들을 키워내서 조선시대 학문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 다고한다.

하지만, 아침이라 비몽사몽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전날 문익점이 준 인상이 너무 강해서인지, 남명조식유적에서는 전날만큼 강력한 감명을 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조 식의 학문에 대한 열정은 꼭 본받아야겠다고 다짐하였다. 조식은 참 멋있는 사람인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에는 두뇌가 뛰어난 사람들이 학문을 즐기고 학문에 종사하기보다는 돈이 되거나 안정적인 공무원, 의사 등의 직업에만 관심을 가지는데 그는 벼슬길에 오를 기회가 많았음에도 평생을 오로지 학문에 매진하고 제자를 통해 서도 학문 발전에 이바지하였으니, 진짜 학문을 사랑하던 사람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어쩌면 진짜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이 아닌, 단지 부자만을 꿈꿨을지도 모르는 우리의 지난날을 반성하며, 남명조식의 반만큼이라도 학문에 대한 열정을 키울 수 있도록 노 력하여야겠다.

남명조식유적 탐방을 마친 우리는 마지막으로 겁외사에 들렀다. 겁외사를 둘러보며 지난 1박 2일을 되돌아보고 마음을 경건히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로써 1박 2 일간의 일정을 모두 마친 우리들은 끝이라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7월에 있을 한 마음 캠프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고 싶은, 가야만 하는해외여행을 기약하며 부 산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우리의 모습에는, 출발할 당시의 모습에는 없었던 무엇인가가 묻어있었다.


* 여행후기의 일부분은 약간의 편집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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