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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65호 발행인 법등[구창회] 발간일 2013-08-05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불교의 선정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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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화령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철학박사 중앙교육원장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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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5-31 06:10 조회 1,84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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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불교의 선정 (2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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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박사 화령(중앙교육원장)

수념처는 우리의 감각과 느낌을 관찰하는 수행이다. 감각과 느낌을 불교에서는 한 '마 디로 ‘감수’라고 하며 간단히 ‘수’ 라고도 한다. 우리가 몸으로 받아들이는 느낌 은 근본적으로 괴로운 것이다. 그러나 미망에 사로잡혀 전도된 생각을 가진 범부들은 ‘ 수’라는것을 쾌락을 가져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느낌이 지닌 근원적인 괴로움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부처님께서는 수념처 의 법문을 설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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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란무엇인가?


수는 한 마디로 우리의 느낌이다. 느낌에는 즐거운 느낌인 낙수, 괴로운 느낌인 고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 은 느낌인 불고불낙수가 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느끼는 것은 이른바 육촉입처인 안-이-비-설-신-의의 육근과 여기에 해당하는 색-성-향-미-촉-법의 육경 이 접촉할 때에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우리의 몸으로 가장 현저하게 느낄 수 있는 것으로서 피부를 들 수 있다. 더울 때 시원한 것이 와 닿으면 기분이 좋 고 피부가 무엇에 찔리거나 긁힐 때는 아 픔을 느껴 괴롭다. 이것이 바로 낙수와 고 수의 구분이다. 코로 좋은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좋고 나쁜 냄새를 맡으면 불쾌하 다. 이것도 낙수와 고수의 한 예이다. 불고 불락수는 멍하니 길가는 사람을 바라볼 때 나 생각 없이 하품할 때처럼 특별히 즐겁 다거나 괴롭다는 느낌이 없이 어떤 사물의 느낌을 받아들일 때를 말한다.

감수작용, 즉 느낌은 자세히 관찰해보면 일어났다가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과 정을 밟는다. 모든 느낌이 언제나 이러한 과정을 밟는다. 느낌이 일어나는 것을 생 기 , 느낌이 머무는 것을 정류, 느낌이 사라지는 것을 소산이라고 하는데 수념처는 한 마디로 이러한 느낌 을 자세히 관찰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느낌 자체에는 나다, 너다, 중생이다 하는 구분이 없지만 우리가 그 느낌에 자 우 기다, 혹은 남이다라고 하는 관념을 투입하게 되면 느낌은 곧바로 자기나 남이 라는 관점을 드러낸다. 예를 들면, 가려운 것은 그냥 가려운 느낌일 뿐인데 ‘모기 가 물어서 나의 손목이 가렵다’라는 식으로 대상을 설정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모기라는 놈은 나를 괴롭힌 괘씸한 놈이 되어 증오의 마음이 일어나게 되고 이 소중한 나의 피부가 가려우면서 부풀어 오르니 약이라도 발라줘야겠다는 생각 이 나면서 자기의 몸에 애착을 가지게 된다. 소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내 가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서 듣고 있는데 누군가가 시끄럽다고 하면서 소리 를 낮추라고 방해를 하면 그 순간 나와 남이라는 구분이 확실히 생기게 된다. ‘내 가 즐기고 있는 이 소리를 듣는 것을 방해하는 저 사람은 미워’라는 관념이 생기 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느낌은 그냥 느낌일 뿐인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주체 쪽 에서 나와 남이라는 구분을 하게 되므로 거기에서 자연히 탐진치가 일어나게 되 어 있다. 즐거운 느낌이 드는 것은 더 취하려고 하고 나쁜 느낌이 드는 것은 배척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수작용은 모든 업의 원동력이 된다. 수념처를 수행하는 것은 우리의 지혜를 운용하여 느낌을 관찰하고 알아차려서 ‘느낌’ 의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려고 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수’는 모든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


수는 일종의 연기법이다. 십이연기법에서 보듯이 촉으로 인하여 수[느낌]가 일 어나고 그렇게 일어난 수는 좋고 싫은 여러 가지 감정을 일으키며, 거기에 따 라 취사선택하도록 한다. 예를 들면, 향수 냄새를 맡는다고 치자. 냄새를 맡 는 그 자체는 촉이다. 여기까지는 그 냄새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지만 거의 순간 적으로 이것은 좋은 냄새구나하고 느끼게 된다. 이것이 ‘수’이다. 좋은 냄새 라고 느낀 순간 그 냄새의 느낌을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애 이다. 그런 다음에는 그 냄새를 더 맡으려고 하던지 그와 같은 향수를사던지 아니 면 다른 어떤 좋은 냄새를 추구하게 된다. 그것이 취  이다.

그런데 만약 그 냄새가 좋아서 더 맡으려고 하는데 누가 옆에서 구린내를 풍기며 방해한다면 어떤 감정이 일어날까? 당연히 싫은 느낌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 고는 자기가 맡는 좋은 냄새를 방해하는 그것에 대하여 진심을 일으키게 될 것이 다. 이처럼 촉을 통하여 접수된 느낌이 좋고 나쁜 것에 따라 감정이 일어나고 그 것을 가지려고 하거나 방해하는 것에 대하여 탐진치가 연속하여 일어나기 때문 에 수는 모든 업력의 원인이 된다. 다시 말하면 고통의 원인이 된다는 의미이다. 좋은 것은 더 가지려고 탐심이 일어날 것이고 가지지 못하면 진심이 일어날 것이 고 때로는 무리히게 가지려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한다. 나쁜 느낌도 마찬가지 이다. 나쁜 것을 제거하지 못하면 화가 날 것이고 그러다가 보면 어리석음을 저 지르기 마련이다. 좋고 나쁜 느낌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른바 좋지도 않고 싫지 도 않은 불고불낙수의 경우에도 그것에 주의하지 않으면 일종의 안 전감을 주면서 어리석음의 경계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보면 좋은 느낌이든 나쁜 느낌이든 아니면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은 느 낌이든 그러한 것들에 주의하지 않으면 결국은 탐진치 삼독을 일으키는, 즉 모 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원인으로서 작용한다. 좋은 느낌은 탐심을 일으키 고 괴로운 느낌은 진심을 일으키며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은 느낌은 어리석음을 일으킨다. 그래서 수념처를 통하여 느낌의 실체를 분명하게 알아차려서 탐진치의 괴로움을 벗어나려는 것이다.



수의분류


수는 보통 고수, 낙수, 불고불낙수의 세 가지로 나누지만 이것 말고도 불교에 서는 2수, 3수, 4수, 5수, 6수, 18수, 36수, 108수 내지 무량수 등 여러 가지로 분류 하고 있다. 그만큼 불교는 우리의 마음작용과 느낌 등에 대하여 엄밀하고도 섬세 하며 철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기에 따라 수행법도 세밀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냥 “믿씁니다!”라고 눈 질끈 감고 기도하는 그런 종교와는 차원이 다르 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잡아함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때로는 일수 를 설하며 어느 때는 이수, 혹은 삼, 사, 오, 육, 십팔, 삼십육 내지 백팔수를 설하며 무량수를 설하기도 한다. 무엇을 일수라 하는가? 모든 수는 다 괴로움 이니 이를 일수라 한다. 무엇을 이수라 하는가? 심수와 신수를 이수 라 한다. 무엇을 삼수라 하는가? 고수, 낙수, 불고불낙수를 삼수라 한다, 무엇을 사수라 하는가? 이른바욕계수, 색계수, 무색계수 및 불계수를 말한다........”

이 말씀 가운데에서 ‘일수’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느낌에 고, 낙, 불고불낙 이 있지만 이 모든 느낌은 한결 같이 무상한 것이며 괴로움의 원인이 되기 때문 에 그렇게 일컫는 것이다.

‘이수’라고 하는 것은 몸으로 느끼는 신수와 마음으로 느끼는 심수이며 ‘삼수’는 고수, 낙수, 불고불낙수를 일컫는 것이다. ‘사수’는 욕계와 색계, 무색계의 수와 함께 모든 느낌을 초월한 불계수를 말한다. 즉, 욕계계수는 성욕, 식욕 등을 벗어나지 못한 욕계중생이 느끼는 여러 가지 느낌 을 말하며, 색계계수는 색계 사선에 머무는 유정 혹은 색계의 제천 이 선정의 애착을 벗어나지 못하고 느끼는 여러 가지 느낌을 말한다.

무색계계수는 무색계정에 머무는 중생이나 무색계의 제천이 느 끼는 미세한 평등사수를 말한다. 이 삼계의 수는 비록 미세하고 거칠 며 더럽고 깨끗한 구분은 있지만 모두 궁극의 해탈을 얻지는 못한 것이기 때문에 ‘계수’라고 한다. 그러나 ‘불계수’는 바른 깨달음을 얻어 모든 것 을 초탈한 성자, 즉 아라한이 느끼는 여러 가지 느낌을 말한다.

‘오수’는 삼수 가운데에서 낙수와 고수를 세분하여 낙수와 희수로 다시 나누고 고수도 우수와 고수로 나눈것에 불고불낙수를 더한 것이다. ‘육수’ 는 육근이 다 수를 가진다고 보고 육수라고 한다. 안수, 이수, 비수... 식으로말하며 ‘육수신’이라고도 한다.

‘십팔수’는 육수의 하나하나가 삼수를 지니므로 그렇게 부르며 '삼십육수’는 십팔애의 하나하나에 탐착희수와 가 있다고 보고 그렇 게 부른다. ‘백팔수’는 삼십육수에 과거와 현재,미래의 수가 있다고 보고 이렇 게 부르며 ‘무량수’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여건에서 느끼는 것이 다 다르므로 무량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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