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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사랑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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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93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7-08-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지상설법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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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13 08:58 조회 2,62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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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기다림 끝에 찾아온 그래서 낯선 손님인듯 조금은 익숙하지 못한 수줍은 모습으로 비가 내린다. 절마당의 나뭇잎들과 텃 밭에서 자라는 생명들이 반짝거리며 춤추고 있다. 이 장마가 그치고 나면 훌쩍 더 성숙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모두 서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항존하는 삶의 문제〉

부처님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관점은 언제나 육신의 활동을 깊고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 즉 자기 자신의 내적 자증의 추구를 통하여 언제나 문제해결의 실마리로 삼지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는 연기의 법칙은 현상에 대한 의식과 그 의식들의 총체적인 인식을 떠나서는 바른 삶이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연기론적 삶의 진실과 사실을 말한 것이지요. 모든 현상과 존재는 그 원인과 관계 속에서 생멸하는 존재의 모습임을 천명하신 것 입니다.

“무명에 덮이고 가려져서 교만의 깃발을 높이 세우고, 애타는 애착의 그물에 걸려들며, 아첨하고 속이는 숲속에 들어가면 스스로도 벗어나지 못하며, 아끼고 탐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여 악한 세상에 몸을 받아 태어나는 나쁜 인연을 짓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은혜 갚을 줄 모르고 서로 원수로 여기며, 삿된 소견에 집착하여 뒤바뀐 생각으로 미혹되며, 어리석고 지혜없어 신심 이 없고, 악한 벗을 따르며 무명에 탐착하여 여러 가지 번뇌로 가득차게 되는 것이니, 일체 중생은 모두가 이러한 온갖 번뇌로써 악업을 짓게 된다. 그리하여 서로 공경하거나 존중하지 않으며, 서로를 따라주지 않고, 서로 겸손, 하심하지 않고, 좋은 길로 인도하지 않고, 서로 보호해 주지도 않고 아껴주지 않으며, 서로 상처를 주고 수원이 되느니라.“ (화엄경, 불교총전 p.216)


〈삶의 비밀을 푸는 열소I〉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서 생기는 인간의 행복이나 불행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원인과 관계의 변화에 따라서 언제든지 변화될 수 있는 것이지요. 삶을 살아가면서도 삶 속에서 나와 세계를 이해하는 원리이며, 삶의 진실한 지침인 연기법에서 벗어난 삶은 언제나 아픔을 수반하고 있습니다. 삶의 진실과 사실을 말한 연기의 법칙은 원인과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삶의 비밀을 푸는 열쇠입니다. 그래서 연기의 이치를 깨쳐야만 세상의 갈등과 대립 그리고 고통을 치유할 수가 있지요.

우리는 공존공생하며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의상관의 삶을 사는 그런 존재들이지요. 나 흘로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며 잘 살 수는 없는 것이지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기게 된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므로 저것도 소멸 한다” 이것이 연기법의 내용입니다. 모든 것은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고 원인과 관계에 의해서 연기에서 생기거나 소멸한다는 것이지요.

연기법은 삶의 고뇌와 갈등 그리고 고통을 해소하고 치유하는 감로의 법이며, 지금까지 신에게 의탁된 삶의 비밀이 인간의 삶 속으로 되돌아와 고통을 수반한 인간 행복의 조건이 되고 참으로 삶을 보는 시각의 특별성이라 할 수 있지요.

세상에 저홀로 잘나고 대단한 것은 없지요. 모두가 원인과 관계속에서 연기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연기의 이치에 의해 자신이 존재 하는 도리를 깨치지 못했기 때문에 교만하고 배은하게 되는데 “안간교만은 세상에서 제일 높고 허공보다 더 높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지요. (잡아함 1298경)


〈사랑더하기〉

우리의 삶 가운데서 만나게 되는 소중한 사 람들이 있지요. 아끼고 보호하며, 공경존중하 며 살아야 하는데 종종 상처를 주고받는 경우가 있지요. 가장 믿고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듣게 되는 무심하고 거친 말 한마디는 믿었던 마음에 뜻밖의 아픔을 주게 됩니다. 무심코 던진 남편의 무정하고 거친 말 한 마디에 속이 상하고 하도 서러워서 혼자 울었다는 어느 여성의 말처럼, 믿고 살아온 상대에게서 받게 되는 이러한 언어폭력은 아내에게 깊은 정신적 충격을 주고 상처를 남기기에 충분하지요. 사람은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로 쉽게 상처를 줄 수 있고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은 이래 저래 아픔이 참 많은데 말이죠.

남편의 월급이 5만원이던 시절, 십일 희사를 하고, 집세를 내고, 나머지 돈으로 어렵게 살아가던 여성이 있었지요. 어느 해 겨울날 주인집 아주머니가 김장배추를 다듬는 것을 도와주면서 못쓰는 겉잎을 다서는 따로 모았지요. 집에 가져가서 그해 겨울 시래기국이라도 끓여 먹을려고. 그러면서 겉잎 안에 있는 속잎도 한 장식 뜯어서 같이 모았는데, 이것을 눈치챈 주인 아주머니가 “멀쩡한 것을 왜 떼어내느냐! 돼지줄려고 그러나!”하는 말에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이 여성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때의 아픔을 가지고 있었지요.

부부지간이나 자식들이 마음을 아프게 할 때 우리는 이렇게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의 내 아픔은 잠깐이지만 먼 훗날 당신이 오늘을 생각하며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고 가슴 아파할 것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더 아프네요.”

삶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 서로를 보배구 슬처럼 생각하고 아끼고 보살펴야 하는데 사기그릇처럼 귀한 줄 모르고 함부로 다루다보면 서로의 가슴에 금이 생기고 아픔이 생기게 되지요. 그러나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러한 부딪힘을 통해서 더 생각하고 더 배우게 됩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해야 하지요. 사는 것이나 인간관계가 어찌 항상 순풍에 돛단배이듯 할 수만 있겠습니까?

아무리 좋은 관계라고 해도 좋은 때와 싫은때가 있기 마련이며 마지막은 언제나 이별이나 죽음으로 끝이 나게 되지요.

원인과 관계에 의한 존재요 삶이라는 연기 법에 의한 시각의 객관화는 관계 속에서의 우리의 탄생과 존재라는 사실에 눈뜨게 하지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 하므로 저것이 멸한다]는 삶에 대한 시각과 삶의 사실을 말한 연기의 법칙은 내가 먼저 양보하면 상대의 양보를 만들 수 있고 내가 먼저 한발 물러서면 그만큼 여유롭고 넓은 세상을 만들 수 있게 되지요. 미워하면 미움을 받게 되고, 좋은 것 싫은 것에 집착하여 분별하는 마음에서 일체의 고통이 생기게 되지요. 내 인연인줄 모르는 인간의 무명에서 인연의 귀하고 소중함을 모르고, 아끼고 보호 할 줄 모르게 되지요.

귀한 줄 모르는 자에게 인연은 오래 머물지 않으며, 가치를 모르는 자는 오래 지닐 수 없 는 법입니다. 그리하여 아쉬움과 후회 속에서 철은 늦게 드는 것이지요.

신달자 시인은 남편과 사별 후 그의 시에서 “여보, 비가 와요. 여보, 국이 짜요. 여보, 밥 더 줘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비 오는 날 출근하는 가족들의 우산 챙기기, 잘 다녀오라는 인사말 등 일상의 작은 언어들의 소중함과 삶 속의 작은 소중한 것들을 우리는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지요. 일상에서 더 따뜻하게 웃기, 더 아끼고 더 보호하기, 대화 더하기, 더 이해하고 더 용서 하기, 더 겸손하고 하심더하기, 더 존중하기, 나눔더하기 그리고 사랑더하기가 필요합니다. 성숙한 만큼 더 아끼고 사랑할 수 있으며 더 사랑받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더 사랑해 보십시오. 자신이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대의 삶 속에 평화를 가득히... 옴 산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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