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선방풍경 따뜻하게 묘사 한국불교 최고의 베스트셀러 <선방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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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52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2-07-04 신문면수 11면 카테고리 학술 / 불교서적에세이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은주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자유기고가 김은주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06 08:38 조회 2,533회본문
조계종에서 내세울 만한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수좌와 선방일 것입니다. 사실 전체 승려 수에 비해 수좌 수는 그리 많은 편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수좌가 빠진 조계종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상징 같은 존재입니다. 불자를 비롯한 일반인의 수좌와 선방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은 큰 편입니다. 그렇지만 선방 문은 너무 높습니다. 일반인이 선방을 구경하는 것도 힘들지만 선방의 풍속을 아는 일은 더욱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책 <선방일기>는 선방에 대한 일반인의 갈증을 해결해준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1973년 <신동아>에 연재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선방일기>는 이후 세 번씩이나 단행본으로 재출간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선방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 점도 있겠지만 글의 완성도도 높은 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수좌들의 천진한 모습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정스님의 수필과 함께 한국 불교계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해왔습니다.
선승으로서의 투철한 의식과 따뜻한 관찰자의 시선을 가진 지허스님의 <선방일기>는 상원사 선방에서의 동안거를 배경으로 합니다. 일기형식을 빌어 3개월간의 선방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는 세상도 가난했지만 선방도 참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아침은 멀건 흰죽을 먹고, 반찬이라고는 소금 반 배추 반이라 할 정도의 짠 김치가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스님들은 늘 배가 고팠고, 음식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대자유인이 되는 길을 추구하지만 아직은 육체에 묶여 있는 중생이다 보니 육체적 결여가 스님들의 정서에 많은 작용을 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선방을 배경으로 한 이 책도 음식 얘기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짠 김치만 먹던 스님들이 보름이 되면 별식을 먹는데 이때는 선방에 조용한 술렁임이 감돕니다. 보름처럼 별식을 하는 날이면 근엄하기만 할 것 같은 스님들은 아이들처럼 들떴습니다. 가부좌를 틀고 선방에 앉았지만 마음은 부엌으로 달려갔습니다. 참선으로 코가 예민해진 스님들은 부엌에서 올라온 팥 삶는 구수한 냄새에 침을 꼴깍 삼키기도 하고, 입맛을 다시기도 하면서 온통 찰밥 생각에 들떴습니다. 단조롭고 엄격한 생활이지만 보름과 같은 특별한 날 보여주는 스님들의 천진한 모습은 마음을 따뜻하게 했습니다. 또 만두 별식을 먹는 날은, 다들 둘러 앉아 만두를 빚는데 이때 어떤 스님들은 장난을 쳤습니다. 만두 속에 짠 소금을 넣기도 하고, 매운 고춧가루를 넣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만두국을 먹다가 이쪽저쪽에서 “아이고 매워” “아이고 짜” 하는 탄성이 터져 나오고 장난을 쳤던 스님들은 키득거리면서 우스워죽겠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이와 조금도 다르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선방스님들에게 이런 아이 같은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 시간씩 네 번, 하루에 12시간 참선을 하는 것도 모자라 스님들은 안거가 중간 쯤 이르렀을 때는 1주일간 한 시간도 자지 않는 용맹정진을 하면서 수마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선객의 치열함을 엿보게 했습니다.
“저녁이 되니 뼈마디가 저려오고 신경이 없는 머리카락과 발톱까지도 고통스럽단다. 수마는 전신의 땀구멍으로 쳐들어온다. 화두는 여우처럼 놀리면서 달아나려 한다. 입맛은 소태고 속은 쓰리다 못해 아프기까지 한다. 정신이 몽롱해진다. 큰 대(大)자로 누우면 이 고통에서 해방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만사휴의(萬事休矣)다.”(81p)
이렇게 치열한 싸움에서 승리를 한 스님도 있고 백기를 든 스님도 있습니다. 하루를 못 넘기고 바랑을 지고 떠나는 스님도 있지만 끝까지 버틴 스님들은 한결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견뎌낸 스님들은 앞으로도 이렇게 선방스님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선방일기>를 보면서 선방스님으로 살아가는 일이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잠자리에는 이불이 없어 깔고 앉았던 방석을 덮고 자야 했으며, 또 어떤 스님들은 이런 고행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한 고행을 선택했습니다. 묵언을 하는가 하면, 생식을 하고, 또 어떤 스님은 장좌불와, 결코 눕지 않는 수행을 하면서 깨달음을 구했습니다. 치열한 선방스님들의 수행기를 읽으면서 이들이 꿈꾸는 미래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친절하게도 <선방일기>에는 이 스님들이 만들어가는 미래의 모습까지 보여주었습니다. 조실 스님이 선방스님들이 만들어낼 미래의 모습입니다. 조실스님은 시주 물을 아껴야 한다거나 공양시간에 소란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는 말과 함께 잠깐씩 등장하는데 이 짧은 출연으로도 강한 존재감을 보였습니다. 젊은 스님들이 유물론과 유심론에 대해서 사변적인 대화를 나누는 데 반해 조실스님의 법문은 단순했습니다. 아주 쉬운 가르침을 주는 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말과 행동이 일치된 조실스님의 한 마디는 어떤 철학보다도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조실스님을 보면서 진리는 단순하고 진리에 가까운 사람 또한 단순하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어떤 스님은, 도인은 어린애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도 했던 것 같습니다. <선방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선 수행을 한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지고 순수해지고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혜인 수녀님은 “수행일기를 읽고 나니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내면을 흔들어 깨우는 느낌”이라고 하셨는데 참으로 적절하고 고상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이것 이상의 말은 군더더기에 지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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