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소사 대웅전> 신비스런법당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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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41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1-08-03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인물 / 설화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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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07 11:23 조회 2,917회본문
<내소사 대웅전> 신비스런법당 (하)
사내는 그날 하루를 쉬고 다음날 부터 일을 시작했다. 대웅전 지을 나무를 베어왔다. 기둥과 서까래 대 들보 감을 구해 왔다. 나무 구입이 끝나자 그는 목침만한 크기로 나무 를 잘랐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는 목침만을 잘랐다. 열흘이 가고 스무 날이 가고 한 달이 가도 그는 목침만을 잘랐다. 선우화상은 사내가 미친 게 분명 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도 대 부분 미쳤다고 했다. 하지만 청문대 사는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사내는 표정 하나 없었다. 그는 다섯 달 동 안 목침을 잘라 댔다. 다섯 달이 지 나자 그때에야 비로소 톱을 놓고 대패를 들었다. 목수는 끊임없이 대 패질을 했다. 그는 삼매에 들어있는 수도승보다도 더 엄숙했다. 부처님 이 삼매에 들어있는 모습이 바로 저 목수와 같을 것이라 여겨졌다. 그는 몸을 움직여 대패질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참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법당을 짓겠다는 생각도, 나무를 다듬는다는 생각조차 초월한 것 같 았다. 물이 물레방아를 돌린다는 생 각도 자신이 흐르고 있다는 생각도 없이 물레방아를 돌리는 것처럼 목 수도 그럴 것이라 선우화상은 생각 했다. 목침을 다듬기 3년이었다. 선 우화상은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
내소사 영산회괘불탱화(보물 제1268호). 1700년(숙종 26년) 제작, 크기 9.95m×9.13m
“여보, 목수 양반! 목침 깎다가 세월만 다 가겠소. 법당은 언제 지 으시려오?” 선우의 물음에도 목수는 빙그레 웃을 뿐 말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목침 다듬는 일에 열중했다. 선우화 상은 자기가 한 말에 대답이 없자 공연히 자존심이 상했다. 목수를 골 려 주고 싶었다. 그는 목침 한 개를 슬쩍 감추어 버렸다. 수천 개의 목 침 가운데 한 개 정도 감춘다고 알 리 있겠느냐는 생각이었다. 엄청나 게 깎은 목침을 다 세고 나서 목수 는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일할 때 와 달리 그의 얼굴에는 절망감이 깃들어 있었다. 연장을 다 챙기고 나서 땀을 닦은 목수는 청문대사를 찾아갔다. “큰스님! 아무래도 저는 법당을 지을 인연이 못 되는 것 같습니다.” 그는 내소사에 온 지 3년이 넘어 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선우화상 은 그가 벙어리가 아니었음을 처음 으로 확인했다. 그의 엄청난 인내력 에 선우화상은 혀를 내둘렀다. 선우 화상은 목수가 청문 대사에게 한 말의 의 도를 이미 알고 있었 다. 청문대사가 물었 다. “왜, 무슨 일이 있 소?” “네, 목침 하나가 부족합니다. 아무래 도 아직 저의 정성이 완전치 못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용서하 십시오. 그럼.” 선우화상은 깜짝 놀랐다. 예상한 일이 었지만 하나가 모자 라는 것을 알고 있으 리라고는 생각지 못 했다. 왜냐하면 수천 개의 목침 중에서 한 개가 없어진 것을 안 다는 것은 거의 불가 능했기 때문이다. 그 것도 매일같이 목침 을 점검했다면 또 모르되 목침을 자르기 시작하면서 다 다듬을 때까 지 적어도 선우화상이 알고 있는 한, 한 번도 점검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던 까닭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 서 그 목침을 자신이 몰래 숨겼다 고 토로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청 문대사가 손을 들면서 말했다. “가지 말고 법당을 그냥 짓도록 하시오. 목침이 한 개 모자라는 것 은 그 애의 잘못이 아니오.” 선우화상은 뜨끔했다.
청문대사가 이미 자기가 목침 한 개를 숨기고 있음을 알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 이었다. 청문대사도 목수도 보통 인 간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청문대 사의 위로를 받은 목수는 다음날부 터 법당을 짓기 시작했다.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중방과 도리를 얹고 대들보를 얹었다. 서까래를 놓 았다. 그가 3년 남짓 자르고 깎은 목침 도 모두 쓰였다. 법당은 며칠 내에 완성되었다. 기와도 얹었고 문도 달 았다. 닫집을 잇고 탁자를 만들어 내부 공간도 모두 완성하였다. 법당 이 완성되자 청문대사는 단청을 하 고자 화공을 불렀다. 그때 청문대사 는 대중들에게 공지사항 하나를 전 달했다. 아니 그것은 불문율이었다. “화공이 오늘부터 법당 내부 단 청에 들어간다. 따라서 화공이 법당 안의 단청과 벽화를 완성할 때까지 는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 것은 한 달이 걸릴 수도 있고 두 달이 걸릴 수도 있다. 명심하라. 절 대로 들여다봐서도 안 된다. 내 말 을 꼭 기억하라. 이유도 묻지 마 라.” 화공은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 도 전혀 밖에 나오지 않았다. 또 한 달이 갔다. 선우화상은 생각했다. ‘도대체 뭘 어떻게 그리는 거야? 화공은 식사도 안하고 대소변도 안 보나? 설마 새로 짓는 법당 안에 변기 를 들여 놓지는 않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그림이 어 떻게 그려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 라 생리적 욕구를 어떻게 충족하고 배설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졌다. 선 우화상은 그게 궁금해서 도저히 견 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법당 앞에 는 늘 사람이 지키고 있었다. 청문 대사가 아니면 그 목수였다. 선우는 어떻게든 자신이 생각한 것은 꼭 이루고야 마는 고집이 있었다. 법당 앞에 목수가 지키고 있었고 청문대 사는 조실에서 교대할 때까지 쉬고 있었다. 선우화상은 꾀를 냈다. ‘음!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군.’ 선우화상은 목수에게 다가가 말 했다. “조실 청문 큰스님께서 잠깐 오 라십니다.” 목수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법당 앞을 떴다. 선우화상은 재빨리 법당 앞으로 다가가 문틈으로 내부를 살 펴보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리 봐도 벽화를 그리는 화공은 없었다. 그 대신 오색이 영롱한 한 마리의 새가 부리에 붓을 물고 물 감을 묻혀 단청과 벽화를 그리고 있었다. 호기심이란 본디 멈추기를 거부하는 법이다. 선우화상은 법당 문고리를 잡고 살그머니 당겼다. 법당문은 잠겨 있 지 않았다. 그는 법당 안으로 한 발 을 살짝 들여놓았다. 바로 그 때였 다. 온 산천을 뒤 흔들듯 한 호랑이 의 으르릉 거림이 있었다.
선우는 그 자리에 기절해 쓰러졌고 새는 날아가 버렸다. 선우화상이 정신이 들었을 때, 청문대사가 법당 앞에 죽어 있는 희고 큰 호랑이를 향해 법문을 설하고 있었다. “대호선사여, 나고 죽음이 본래 둘이 아닌 법인데 선사는 지금 어디 에 있는가. 태어남이란 맑은 하늘에 한 점 구름이 생기는 것과 같고, 죽 음이란 그 구름이 맑은 하늘로부터 사라짐과 같도다. 그러나 흰 구름 자체도 본래실체가 없는 법, 나고 죽음도 실체가 없다. 하지만 그대가 지니고 있던 그 영묘한 본성만큼은 영원히 나고 죽음을 따르지 않고 홀 로 빛나리라. 대호선사여! 그리고 그대가 세운 이 대웅보전은 길이 법 연을 이으리라,” 법당 중수가 끝나자 청문대사는 온 데 간 데 없이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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