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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차 국제재가불교지도자대회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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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56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2-11-07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국제 재가2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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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화령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불교총지종 교육원장 / ILBF 명예회장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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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05 05:17 조회 1,57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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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차 국제재가불교지도자대회를 다녀와서

스페인의 남부 도시 말라가에서

15개국 40여명 참가 6박7일 일정으로


지난 10월 30일부터 11월 5일에 걸쳐 국제 재가불교지도자대 회가 스페인의 남부도시 말라가에서 6박7일에 걸쳐 개최되었다. 지난 2007년에 우리 총지종이 발기하여 처음으로 개최된 이래 온간 간난신고를 무릅쓰고 5회 대회까지를 해마다 빠짐없이 우리나라에서 개최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작년에 이 대회에 참가했던 스페인 대표 페드로 고메즈 씨와 그의 아들 피터 고메즈 부자가 스페인에서의 개최 의사를 밝혀와서 스페인이 주관하도록 한 것이다. 고메즈 부자는 티벳 불교의 카르마 까뀨파에 속하는 거사로서 스페인의 남부 도시 말라가에 까르마 꾸엔이라는 불교센터를 세우고 불교의 불모지 스페인에 불교를 알리기 위해 애쓰는 분이다. 우리 종단에서는 지성 통리원장님과 인선 총무부장, 그리고 이 대회의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으면서 대회 전반을 총괄하는법장원의 보정 김종인 박사와 이 대회의 명예회장으로 되어 있는 나를 포함하여 네 사람이 초청되었다.

10월 30일부터 대회가 시작되어 11월 5일에 끝나지만 우리는 한국의 일정도 있고 비행기편이 여의치 않아 10월 27일 아침에 출발하여 11월 4일 아침에 서울에 도착했다. 대회를 이틀이나 남겨두고 부득불 빨리 떠나야 했던 것이다.

유럽으로 가는 사람들이 왜 그리 많은지 비행기표 예매를 두달 전부터 서둘렀건만 핀랜드 헬싱키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사야 했다. 장장 9시간 정도를 비행기를 타고 헬싱키로 가서 거기에서 또 서너시간을 기다려서 마드리드로 가는 비행기를 4시간이나 타고 또 마드리드에서 기차로 갈아타고 3시간 반이나 가야하는 머나먼 거리였다. 거의 4일을 오고 가는 데에 시간을 소비한 셈이다. 우리가 그동안은 안방에서 대회를 개최하여 그런 고충을 몰랐었는데 그동안 유럽의 먼먼 곳에서 한국까지 와서 대회에 참석해준 모든 사람들의 고충을 절실히 느꼈다. 더구나 자비로 이 대회에 참석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한편으로는〈재가불교, 생활불교〉를 강조하며 출범한 이 대회가 그만큼 흥미를 끌고 많은 의의를 지닌 것이라는 반증이기도 해서 흐뭇한 마음을금할길이 없다.

어쨌든 오랜 여정 끝에 마드리드에 도착하니 벌써 한 밤중이었다. 시차가 적용되어서 그렇지 한국은 다음날인 셈이다. 아침에 일어 나서 호텔 밖을 내다보니 고색창연한 구식빌딩들이 아름답게 햇살을 받으며 눈앞에 나타났다. 공기가 맑아서 그런지 햇살이 무척 눈부시다.

늦게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휴식을 취한 다음 호텔 근처의 마드리드 시내를 버스로 잠깐 돌아보기로 했다. 마드리드는 유럽 중심부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도시였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누어져 있는데 구시가지에 있는 건물은 대부분이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건물로서 지금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무척 클래식한 분위기가 감도는 도시였다. 생각보다 훨씬 차분하고 향수를 자아내는 그런 느낌이 들어 무척 정감이 갔다. 과거의 오래된 건호과 현대식 빌딩들이 공존하는 마드리드. 정말 아름다운 도시이다. 그래서 수많은 관광객들을 끌고 있나 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너무 개발만 서둘러서 옛 것이나 자연을 너무 소홀히 대했다. 이제부터라도 옛것을 아끼고 자연을 지키려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 선진국의 지표는 그런 것으로 알수 있다. 우리는 대통령부터 자연파괴에 앞장서고 있으니 후진국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경제가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각설하고 여기저기에 보이는 한국 기업의 광고며 한국 차들이 굴러다니고 있는 모습을 보니 한국의 위상이 정말 높아졌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스페인에 대해서는 사전 지식이 너무, 부족해서 우리와 주로 무슨 교역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오기 전에 시간 여유가 좀 있었으면 스페인에 대해 좀 알아보고 간단한 인사말 정도는 배워 오는 건데 일본방문과 학술대회 준비 등이 겹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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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색창연한 남유럽의 중심도시 마드리드 

한 때는 세계를 호령하던문화의 중심지 


마드리드는 1561년에 스페인의 중심이라는 이유로 수도가 되었다니 500년의 역사를 가진 유구한 도시이다. 마드리드는 수도로서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635m)에 위치해 있으며 날씨는 온화하지만 강수량이 일 년에 420mm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스페인어도 우리 에게는 생소하지 만 영 어 권에서 는 제2외국어로 쓰이는 경우가 밚고 중국어, 영어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언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모든 간판이며 안내서 등이 모두 스페인어로 되어 있어서 불편한 것이 많았다.

시간이 넉넉하면 여러 곳을 둘러 볼 수 있었을 텐데 구시가지를 대강 버스로 돌아보고 관광객들의 필수코스라는 마드리드에서 가장 유명한 궁전을 관람했다. 궁전이 규모도 클 뿐만 아니라 내부 시설의 호화로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스페인도 한 때는 무적함대를 거느리고 온 세계를 헤집고 다니면서 부를 축적하고 큰 소리를 치던 국가였는데 그에 걸맞게 궁전도 어마어마했다. 온갖 아름다운 무늬의 대리석으로 지어진 궁전의 건축 자체도 경이롭지만 내부의 장식은 유럽의 어느 나라에 비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화려하고 정교했다. 시간이 넉넉하면 꼼꼼히 살펴 보겠지만 일정상 대충 둘러보고 나오다가 미련이 남아 나중에라도 보려고 궁전에 대한 책을 하나 비싸게 주고 샀다. 사실 그리 비싼 책은 아닌데 유럽은 물가가 비싼 편이라 모든 것이 비싸게 느껴졌다.

궁전을 구경하고 나와서 조금 걷자 바로 옆에 ‘플라쟈 메이요’라고 해서 구시가지의 중심광장이 나타났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붐비었는데 우리도 그들 무리에 섞여 걸었다. 좌우로 늘어선 옛 건물들이 정말 장관이었다. 이렇게 오래된 건물들이 이처럼 잘 보존되어 있고 또 지금도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살고 여전히 사용중이라는 것이 너무 부러웠다. 보도에 깐 돌들도 아마 수백 년은 된 것이 여전히 쓰이고 있었다. 걸핏하면 갈아치우는 우리나라의 보도 블럭하고 는 비교가 안된다. 그 위로 신식 자동차가 다니고 있는 것을 보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느낌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무척 부럽기도 했다.

골목에 서서 사진 몇 장 찍고 광장에 근처의 식당에 들어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메뉴가 모두 스페인어로 쓰여져 있어서 뭐가 뭔지 물어봐도 말도 안통하고 꽤 답답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겨우 한 집에 찾아가서 비슷하다 싶은 걸로 골라 허기를 메웠다. 주인 아저씨가 무척 미남이라서 칭찬해 줬더니 기분이 좋아서 그랬는지 시키지도 않은 음식 몇 가지를 더 갖다 줬다. 여유 있고 친절한 스페인 사람들의 정을 느낄 만했다. 물가가 약간 비싼 느낌이 들어서 그랬지 우리가 마주침 스페인 사람들은 다 친절하고 여유 있어 보였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공항을 떠나오기 전에 면세점 서점에서 얼핏 본 관광안내서에는 스페인 가면 소매치기며 도둑도 많으니 주의하라고 써놨길래 잔뜩 긴장했는데 운이 좋아 그랬는지 아니면 안내서가 잘못된 건지 우리가 만난 스페인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친절한 증거는 화장실 사용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식당에 가서 화장실 가려면 열쇠를 얻어가지고 나가서야 볼일 보는 경우가 많고 또 물건도 사지 않고 일반 상점에 들어가서 화장실 찾으면 퉁명스럽게 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아무데나 들어가면 친절하게 화장실을 안내해준다. 택시를 탈 때도 기본 요금이 달라서 바가지 씌우는 것 아닌가 잔뜩 긴장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주말 가격과 공휴일 가격이 모두 다르고 공항에 갈 때도 할증료가 붙고 팁이 붙기 때문에 그렇단다. 어쨌든 스페인 사람들에 대해 받은 인상은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그렇게 건조하지 않고 인간미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유로운 영혼의 스페인 사람들 

여유롭고 쾌활한 스페인 사람들


중앙광장 근처에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는데 온갖 기념품을 파는 쇼핑센터며 커리캐쳐 그려 주는 곳 등이 즐비해서

눈요깃거리가 되었다. 내가 축구를 좋아해서 바르셀로나 메시 유니폼을 하나 사고 싶었지만 십 만원 가가이 해서 포기했다. 유럽 구단들이 유니폼 장사한다는 게 무슨 말인가 했더니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광장에는 아직도 옛날 목통식 사진기로 관광객들에게 흑백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나도 기념으로 한 장 찍었다.

한참을 기웃거리다가 호텔로 돌아와서 좀 쉬고 저녁 먹으로 나섰더니 이곳 식당들은 모두 9시나 돼서야 문을 연다고 한다. 배는 고픈데 9시까지 기다리다가 모두들 너무 피곤하고 시차 적응도 안되어서 잠이 드는 바람에 저녁을 굶었다. 잠이 깨니 이곳 시간으로 새벽 세시. 배는 고픈데 먹을 것은없고난감했다. 

스페인의 상점은 보통 열시나 돼서야 연단다. 열두시 쯤 되면 점심을 두 시간에 걸쳐 먹고 낮잠 좀 자다가 오후에 일 좀 하다가 아흡시 되어서 밥 먹고 와인 한잔 하고 열두시에 잔다는데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충 그렇단다. 스페인이 국가부도 위기니 어쩌니 그런다는데 겉으로 봐서는 그저 평화로울 따름이다. 그나저나 발등에 불이 떨어져도 스페인 사람들 계속 그러고 살텐가?

29일 아침 마드리드 역에 가서 급행열차를 타고 말라가로 향했다. 우리나라 서울역 보다가 말라가 역을 보니 그다지 크지도 않았고 사람도 훨씬 한산했다. 우리나라는 좁은대서 북적대면서 바쁘게 살다보니 어디든 사람에 치여 못살 지경인데 여기는 여유가 있어 보인다. 

스페인이 크기는 큰 모양이다. 스페인의 중심부라는 마드리드에서 시속 300km 급행을 타고 세 시간 반이나 가니 겨우 말라가가 나온다. 열차는 우리나라 KTX보다 빠르고 훨씬 편안했다. 가는 도중에 창밖을 내다보니 대부분이 평원지대이고 올리브 나무만 가득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풍경이 몇 시간이나 펼쳐지다가 남부지역인 말라가 근처까지 가니 얕은 산들이 조금씩 나타났다.

말라가 역에 내리니 니콜라스라는 인상 좋게 생긴 네덜란드 젊은이가 마중 나와 있었다, 네덜란드에 있는 대기업에 다니다가 지금은 까르마 구엔에서 불교를 위해 봉사활동을하면서 기업상담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있는 동안 내내 시중을 들어준 고마운 청년이었다.

저녁 환영만찬은 말라가의 중심부에 있는 AC호텔에서 열렸는데 주관 당사자인 페드로 고메즈씨 부부와 아들 피터 고메즈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작년에 한국에서 보고 다시 여기에서 보니 무척 기쁘다. 고메즈씨도 무척 기쁜지 큰 소리로 인사하며 우리를 껴안고 뺨을 비비고 하는데 좀 어색했다. 이쪽 사람들은 반가우면 이렇게 남녀를 불문하고 껴안아 버리는가 보다. 둘러보니 그동안 우리 대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한국이 아닌 스페인에서 이렇게 다시 모이게 되니 정말 반갑다. 독일의 거쉰트 부부를 비롯하여 진 리브스와 그의 일본인 아내도 처음으로 왔고 우리 ILBF의 주요멤버들은 빠짐없이 다 참석했다. 그 밖에도 이스라엘, 아르헨티나, 부탄, 네팔

등지에서 온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저녁 늦게 까지 환담이 이어진 가운데에 리셉션이 성황리에 끝나고 다음날을 맞았다.



총지종, 생활불교의 선두주자 

국제적 명성 속에 미래를 열다


포럼은 유서 깊은 말라가 대학에서 거행되었는데 말라가 대학 부총장과 말라가 유네스코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기조 연설이 있었고 까르마 까뀨파의 라마 올레 니달이 특별 인사말을 했다. 니달은 유럽의 까뀨파를 실제로 이끌고 있는 재가 수행지도자로서 카르스마도 있고 법력이 있어 독일에서 십만 명을 모아 법회를 본 적도 있다고 한다. 복싱도 좋아하고 고공 점프에 스피드광이기도 했다는 특이한 경력의 사람이다. 공부도 많이 한데다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다가서고 허례허식식과 가식이 없다는 것이 큰 장점인것 같았다.

세미나는 이틀에 걸쳐 7개 파트로 나누어져 진행되었다. 현대사회에서의 불교를 여러 각도에서 나누어 분석한 파트가 3개, 그리고 한국에서의 재가불교, 동남아시아불교의 혁신, 네팔의 재가불교, 동아시아에서의 재가불교 등에 대한 발표가 저녁 8시 가까이 이어졌다. 그 어느 때보다도 수준 높은 의견들이 제시되었으며 발표는 모두 영어로 진행되었다.

잠시 틈을 내어 페드로씨가 우리를 자기들이 세운 스투파에 데리고 갔다. 지중해가 내려다 보이는 경치가 무척 좋은 곳을 말라가 시로부터 기증 받아 33미터의 탑을 세웠는데 무척 웅장하고 보기 좋았다. 불교의 불모지 스페인에 그것도 남부 지방에 이렇게 불교탑을 세우고 불교를 홍보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같은 불교도로서 자부심을 느꼈다. 페드로씨 부자는 사업을 하면서 모은 돈을 모두 이렇게 불사에 쏟아 부어 놓고 있는 진정한 보살이라고 할 수 있다. 페드로씨의 불교에 대한 열정을 옆에서 지켜보면 대보살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가 없다. 돈을 움켜쥐고도 벌벌 떠는 우리나라 부자들과 너무 대비가 된다. 불교도라고 하면서도 그저 자식들에게 재산 물려줄 줄 줄이나 알았지 이렇게 불사를 위해 거금을 아끼지 않는 대보살은 처음 본 터라 그저 머리가 숙여질 수밖에 없었다.



불교의 불모지 스페인에 불교를 알리다 

이 시대의 대보살 페드로 고메즈


우리가 떠나오기 전날은 모두 페드로씨가 세운 까르마 구엔으로 향했다. 말라가 시를 차로 40여분 정도 벗어나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서니 경관이 매우 훌륭한 곳에 희색 건물이 두 동 서있었다. 한 쪽은 숙고 겸 식당과 기타 부대시설들이 서 있고 또 하나는 새로 지은 법당이었다. 페드로씨가 이 높은 산꼭대기에 30만평 정도의 부지를 마련하고 1987년부터 여기를 스페인의 불교중심지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지니고 20년 째 불사를 해 오고 있는 곳이다. 이곳 말라가 사람들은 부자일수록 높은 곳에 집을 짓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건너편 산마루를 보니 모두 흰색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특이한 경관이다.

페드로씨는 이곳에도 불탑을 건립했는데 인근 사람들이 여기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 우리가 기차를 타고 오면서 만난 사람 하나도 말라가에서 80km나 떨어진 곳에 산다는데 까르마 구엔을 알고 있다고 했다. 법당은 200여 평이 넘어 보였는데 장엄한 불상과 웅장한 기둥, 높은 천정 등이 인상적이었다. 벽은 모두 티벳의 불화인 탕카로 그려져 있는데 순금과 천연 염료를 써서 한껏 정성을 기울여 그려 놓았다. 아마 이 법당을 건립하는 데에 엄청난 돈이 들었을 것이다. 지금도 계속하여 불사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이 산꼭대기에 법회를 할 때면 최대 3천명이 모이기도 한다고 했다.

불교의 불모지 스페인에 이러한 열정을 가진 대보살과 함께 자리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들로서는 큰 영광이었다. 기회가 있으면 한국의 불자들도 여기에 와서 이곳 이방의 불교도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불교를 위해 헌신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울 충실하게 받들고 있는 지 함께 보았으면 하는 기원을 하면서 까르마 구엔을 떠나왔다. 일정이 끝나기도 전에 떠나오게 되어 많은 참석자들에게 무척 미안했지만 이들은 우리를 포옹하면서 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불교도로서의 우의를 흠뻑 나누었다.

세상에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으랴. 나라와 인종을 초월하여 다 같은 불자로서 한 점 사심 없이 오직 불교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실천할 것을 다짐하여 도반으로서의 우의를 나누는 이런 모임은 세상에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런 중심에 우리 총지종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대견한 일인가. ILBF여! 영원히 발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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