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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한국의 재가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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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56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2-11-07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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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종인 필자법명 보정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보정 김종인 박사 (법장원 연구원)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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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05 05:10 조회 1,61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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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한국의 재가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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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불교는 25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오래된 종교이면서도 다른 많은 종교들과 달리 현대성, 이를테면 과학적 사고방식, 민주주의, 힙리주의 등과 조응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불교 또한 고대 사회의 지적인 혹은 정신적인 한계를 반영하고 있으며, 그 한계들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극복되어야 했다. 특히 재가불자의 위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점은 매우 분명해 보인다. 붓다는 모든 계급의 사람들을 자신의 승단에 받아들였으며, 주저 끝에 내린 결정이기는 하지만 여성 또한 받아들였다. 그것은 분명 그의 위대한 이상주의적 정신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러나 그는 재가자들 일반이 승단의 사람들과 같은 수준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지 않았다. 초기불교에서 출가자들의 이상은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인데 반해, 재가자들의 이상은 공덕을 쌓아 더 나은 세상에 태어나는 것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전자와 후자 사이에는 분명한 위계상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대승불교의 출현은 이러한 승단과 재가 사이의 엄격한 구분에 대한 반발이 그 동기가 되었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모든 중생이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대승불교의 불성사상은 승단과 재가의 구분을 부정할 수 있는 교리적 근거가 되었다. 『법화경』은 승단에서의 엄격한 수행이 아니더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제시하였다. 『법화경』은 이런 면에서 대승불교의 정신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법화경』이 제시하는 이러한 단순한 신앙행위를 통한 깨달음의 증득은 비판적이고 화의적인 시각에서 보면 기만적인 행위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왜냐 하면 여전히 출가자의 길과 재가자의 길 사이의 구분을 현실적으로 없애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승불교에 와서도 출가자와 재가자는 명목상으로는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대승교학의 최고봉인 용수는 '십주비바사론’에서 다음과 같이 양자의 길을 구분하고 있다. “재가보살은 마땅히 재시를 행하여야 한다. 출가인은 마땅히 법시를 행하여야 한다. 재가의 법시는 출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용수 54), 재가자는 출가자에게 재물로 보시를 하여 그들을 부양하고, 출가자들은 재가자들에게 설법을 행한다는 전통적인 역할 구분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것이다.

19세기 말 이후 한국 사회는 급격히 현대사회로 전환하는데 이러한 전환은 불교계에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그리고 불교계 내에서는 재가자의 모습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첫째는 재가 불교 지식인 및 엘리트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둘째는 재가승의 등장이다. 셋째는 일반 재가 신도들의 불교 교리 학습이다. 아래에서는 이 세 가지에 대해서 차례로 기술할 것이다.

20세기 초부터 한국불교계에는 재가 불교 지식인 및 엘리트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이들의 숫자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당시대에 주목받는 활동을 한 사회적 엘리트들 가운데서 불교에 영향을 받거나 선양한 사람들이 눈에 띈다. 유대치, 이능화, 한용운, 장지연, 최남선, 이광수, 권상로, 김태흡, 이완용 등이 있다. 이들 모두가 수백 년 후에도 사람들에게 기억되지는 않겠지만, 이완용, 한용운, 최남선, 이광수 등은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기억될 만한 인물들이다.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재가승의 출현과 해방 후부터 첨예화되기 시작하여 결국은 파국으로 전개된 이들과 출가승과의 분쟁 과정은 현대 한국 불교의 가장 큰 상처이다. 그러나 재가승의 출현은 왜색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한국불교가 현대성과의 대면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문제로 볼 필요가 있다. 20세기 초엽의 재가승의 줄현은 분명 한국사회의 현대 사회로의 편입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그러나 결코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재가승의 출현은 한용운이 기대했던 포교의 활성화에는 기여를 하지 못하고 “사원의 경제적 침탈, 주지쟁탈전, 부정사건, 파쟁의 근원”이 되었다.

한국 불교의 가장 큰 취약점 가운데 하나는 일반 재가 신도들의 활동의 부진이다. 전현대 시대의 경우 대부분의 종교전통에서 일반 신도들의 종교 행위는 매우 피동적이펴 모든 것은 성직자들이 이끌어 가는대로 맡겨졌다. 그러나 현대사회로 오면서 성직자와 일반 신도들 간의 이러한 관계에 변화가 일어나는데, 유럽에서의 프로테스탄트의 출현과 그 속에서의 일반 신도들의 교회 내부에서의 지위의 변화는 현대 민주주의 정치제도에서 국민이 정치적 주체가 되는것에 상응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10년대와 20년대를 전후하여 일부 진취적인 승려들에 의해 현대사회의 문화에 조응하는 재가신도상이 제시되었으며, 극히 희귀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여성 재가자들이 기복신앙이 아니라 수행과 깨달음으로서의 불교를 실천하고 단체를 만들었다. 재가불자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백용성과 선불교 중흥에 노력한 만공 등에 의해 극히 소수이기는 하나 부인선원에서 수행하는 여성불자가 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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