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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일상 속의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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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56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2-11-07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국제 재가1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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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화령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중앙교육원장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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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05 05:07 조회 1,62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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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의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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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오랜 세월을 경과하면서 교리가 세밀해지고 다양화되었다. 그것과 함께 불교의 깨달음이란 것도 관념화되어 버린 경향이 강하다. 특히 간화선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선불교는 그러한 경향이 다분하다. 대중들은 깨달음이라는 것을 추상적으로 너무 확대하여 바라보았기 때문에 자기들은 오르지 못할 나무라고 생각하여 아예 불교 수행에 대한 의지를 꺾어버리고 자신의 복이나 비는 식으로 흘러가 버렸다. 그 결과 많은 대중들이 불교와는 멀어져 버리고 다른 종교에 으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이것은 대승불교가 무르익으면서 깨달음을 관념화해온 결과이다. 관념적인 깨달음은 자신을 위해서나 인간사회를 위해서나그다지 소용이 없다. 인간 사회에 무익한 혼자만의 관념적인 깨달음은 목석보다도 소용이 없다. 인간사회에서 유용한 깨달음이 진정한 깨달음이다. 그렇게 때문에 부처님께서도 깨달음을 열고 저자로 돌아와서 많은 대중들을 교화하신 것이다. 

그러나 붓다의 원래의 가르침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과거도 돌아보지 말고 미래도 걱정하지 말고 오직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살라는 가르침이 붓다의 가르침의 핵심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불교에 대한 바른 이해와 계행의 준수에 의한 자기 절제가 필요하다. 재가불자로서는 오계의 준수를 통하여 자신을 제어하며 오계의 확대를 통하여 사회를 건전하게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 더하여 매 순간 자신을 놓치지 않는 자기 성찰이 필수적이다. 매 순간 자신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은 일상 생활 그 자체가 수행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자고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 먹고 일터에 가서 자기 일을 충실히 하는 그 과정 모두가 수행이 되어야 한다. 운전을 하거나 접시를 닦고 방청소를 하며 사람들과 일에 대하여 의논을 하는 그 모든 과정이 수행이 되어야 한다.

성불이라는 완전한 깨달음을 목표로 두기 전에 일상생활 가운데에서 다만 1%라도 부처에 가까워지겠다는 노력을 하고 거기에 맞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곧 1% 성불하는 것이며 이러한 노력이 쌓이면 점점 완전한 붓다의 모습에 가까워 질 것이다. 이것이 완전한 성불이라는 거창한 목표 앞에 주눅이 들어버리는 것보다는 훨씬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수행의 자세이며 이웃에 훨씬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기 수행을 바탕으로 무한한 자비심과 함께 자기가 가진 사회적 역량을 힘껏 발휘하여 중생계를 이롭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붓다의 의도일 것이다. 일상생활 가운데에서 계 . 정 . 혜를 실천하며 사회 속에서 대중들의 무지를 일깨우고 그들의 행복을 위하여 정진하는 모습이 진정한 대승보살의 모습이다. 여기에 무슨 출가, 재가라는 것이 큰 의미를 가지겠는가?

일상생활 가운데에서 항상 스스로를 주의, 관찰하면서 자신의 무지를 타파하고 탐진치를 다스리며 자신의 능력과 소질을 최대한 발휘하여 모든 중생과 사회에 이바지한다면 그것이 곧 불국정토를 이루는 길이 아니겠는가? 재가불자는 오히려 출가자들보다도 인간사회의 현실을 더 잘 직시할 수 있으며 인간의 근본적인 고뇌에 눈뜰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현실적 시련에 부딪쳐야 하는 재가불자들이 출가승보다도 오히려 더 원만한 인격을 갖출 수 있고 더 많은 깨달음의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으며 인간사회를 위하여 이바지할 길이 많다고 할 수 있다. 궁극의 경지는 깨달았다는 의식이 없이도 모든 것이 법도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불자들의 궁극 목표는 열반에 이르는 것이지만 그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훌륭한 인격을 갖추는 것이 먼저이다. 가정과 사회에 머물면서도 거기에서의 역경과 시련을 수행의 도구로 삼아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 잘 실천하고 이어간다면 그것이 곧 훌륭한 승보가 아니고 무었이겠는가?

이것이 이른바 우리가 주창하는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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