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 수행으로 생활 불교를 실천하는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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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40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1-07-04 신문면수 12면 카테고리 기획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박종한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취재 박종한 기자>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07 12:49 조회 2,394회본문
진언행자 가족을 찾아서 국광사 김상필 교도
경주지방에 비가 3일째 내리고 있 다. 이맘때면 장마가 시작되는 시기이 기도 하다. 태풍‘메아리’가 북상 중에 있어 그 여파로 비는 쉼 없이 대지를 적셨다. 경주 국광사 서원당(誓願堂) 에 들어선 후 보살님들이 스승님과 함 께 자성일 불공을 올리고 있다. 밖에 는 비가 내려 쌀쌀 했지만, 서원당(법 당)은 따스한 기운과 불공을 드리는 모습에‘꽉찬 열기’를 느꼈다.
계속되는 비로 거리는 사람도 별로 없어 정지된 시간처럼 보이지만 이곳 은 활기와 생기로 들리는 빗소리마저 운치가 있었다. 서원당은 불공드리는 교도 외에 두 가족이 염송을 하고 있 다.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어린이들이 ‘옴마니반메훔’을 따라하고 있고, 아 기가 가끔 움직이고 있어 아기아빠도 염주를 들고 같이 움직였다.
국광사에는 사위를 포함하여 가족을 모두 제도시켜 3대가 서원당에 열심히 나온다고 한다. 그 중심 역할을 하고 가족과 국광사를 위하는 교도가 있다. 국광사 신정회 총무로 활동 중인 김상 필(해탈심) 보살님이다.
총지종과 만남. 각자님의 사고로 어려운 시기를 불공으로 극복 해
▲ 총지종과 만남. 그리고 시련
-보살님 안녕하세요. 총지종과 인연 은 언제부터입니까.
“먼 길 오셨습니다. 86,7년도 쯤 되 었을 거예요. 우리 절에 다니는 이석 연 보살님이 저에게 제도해서 그 때부 터 국광사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종교가 있었나요.
“특정 종교는 없었 어요. 부처님에 대해 서는 잘 모르지만 꾸 준하게 다닌 것 같아 요. 그런데 큰 사고 가 일어났어요.”
국광사 교도들과 같이 전남 보성 대원사 차 박물관을 다녀왔다.
-큰 사고라면.
“절에 다닌 지 한 2년쯤 되었을 거예 요. 각자님이 인도에 서 있었는데 갑자기 오토바이가 각자님 을 치어서 머리를 다 쳤어요. 급히 병원에 옮겨 의사에게 피가 약간 고여 있지만 수 술은 하지 않아도 된 다는 말을 들었어 요.”
-굉장히 놀래고 걱정이 많으셨겠습니 다.
“밤새도록 걱정되어서 불안했지요. 절에 다니고 부처님께 공양을 했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고 부처님을 원망했어요. 염주도 잡히지 않았어요. 다음날 의사가 각자님 상태 가 더 나빠져서 수술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원망심을 가져서 상태가 안 좋게 되었다는 것은 나중에 느꼈지 요.”
-수술은 잘 마쳤어요.
“수술은 했지만 살 수 있을지 장담 을 못하겠으니 일주일을 기다려 보자 고 해요. 전수님께서 일주일 불공을 해 주셨고 저도 매달렸습니다. 마음이 혼란하고 극도의 불안으로 염주는 들 지 못했어요.”
-건강은 어떻게 되었나요.
“일주일 뒤에 한 쪽 눈을 뜨고 의식 은 찾았지만, 병원에서는 얼마큼 살지 모르겠다고 본인의 의지에 달렸다고 해요. 저는 전수님께 여쭙고 의논했어 요. 그 때부터 일심으로 불공을 하고 부처님께 의지했어요.”
-각자님을 위해서 불공밖에 다른 방 법이 없었겠습니다.
“정말 불공을 열심히 했습니다. 부 처님께 빌었습니다. 그런데 각자님의 건강에 대하여 시댁에서는 큰 병원 으로 옮겨야 된다는 의견이 나왔어 요.”
-낫기 위해서는 큰 병원에 옮길 수도 있었겠습니다.
“가족이므로 생각하는 마음은 똑같 죠. 저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 아 닙니다. 옮기려고 생각했는데, 그날 밤 꿈속에서 각자님이 다리에 걸려 넘어 졌는데 바닥에는 사방공사 흙무덤 속 에 새순이 있는 것을 보았어요. 처음 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옮기지 말라는 암시처럼 느껴지더군요. 새순은 곧 ‘희망’이라고 여겼어요.” 그 뒤로 보살님은 병원을 옮기려는 생각을 하면 옮기지 말라는 재차 꿈을 꾸었다. 시동생은 형수의 말을 존중해 주었으며, 시숙도 큰 병원에 가면 수 술한 상태를 재점검해야 된다는 이야 기를 했다. 보살님은 각자님의 건강에 대하여 끝까지 보필하면서 책임지겠다 고 굳은 의지를 보여 시댁에 믿음을 주었다.
-각자님의 건강이 호전 되었겠네요.
“스승님의 의견을 전적으로 듣고 불 공을 지극정성을 하니까 변화가 생기 기 시작했어요. 각자님의 몸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 작했으며, 같은 병실에 있는 환자들까 지 나서 각자님을 일으켜 세우는 등 운동하는데 도움을 주었어요. 눈물이 났어요. 정말 고마움과 희망이었습니 다. 부처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을 느꼈 습니다.” (전수님은 그것이 곧 불공의 공덕이 며, 업이 하나씩 소멸되는 것이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보살님이 마음을 부드럽게 가졌고 실천수행의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라 했다.)
내가 나서서 제도하기 보다는 나의 행동을 보고 다른 사람이 절에 와
▲ 가족과 이웃의 제도.
-자녀들도 어머니께서 불공하는 것 을 보았겠네요.
“ 아버지가 아팠지만 아이들이 무탈 하게 잘 커주어서 고맙지요. 큰애는 초등학교 때 교회에 나가기도 했지만 1년 뒤에 우리 절에 다니고 둘째와 셋 째도 절에 다니고 있어요. 제가 아이 들에게 절에 다녀야 된다고 말하지는 않았어요.” (전수님은 뜻하지 않게 아이가 교회 에 다니는 것은 불공마장이라고 했다. 하지만 자녀들이 절에 다니게 된 것은 보살님 스스로 지극한 모습으로 행동 하고 정성을 보이니까 스스로 따라오 게 된 것이라 설명했다. 법회시간에 어린이와 같이 있던 두 가족이 보살님 네 첫째, 둘째라고 했다.) 보살님은 딸만 셋 두었으며, 첫째와 둘째가 시집을 가고 막내는 직장생활 을 하고 있다.
-사위들도 절에 나왔습니다.
“고맙지요. 일 관계로 쉽지 않지만 그래도 사위 두 사람이 가족과 같이 행동하기를 원하고 자주 나오려고 합 니다.”
-다른 사람을 제도 시킨 것은 없나 요.
“생각나는 이웃 한 사람이 있습니 다. 각자님이 병원생활을 하니까 생활 도 어려워 졌어요. 이웃에 있는 사람이 우리가족을 볼 때 궁금한 것이 있었나 봐요. 우리 가 족이 항상 웃음이 있고 밝았데요. 생 활도 어려울 터인데 뭐가 그리 즐거울 까 하고요. 그 사람은 제가 불상도 없 는 이상한 절에 다닌다고 생각했대 요. 절에 나가자고 끌지도 않았어요. 저와 우리 가 족의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이 마음을 움 직였어요. 지금은 우리 절에 다니 고 있어요.”
-불공의 실 천수행이 이웃 에게 감명을 주 었어요.
“부처님과 스승 님께 배운 것을 행 동으로 옮기고 지키려 고 할 뿐입니다.” (전수님은 보살님이‘저 절에 다녀 요’라고 말 하지도 않는다. 주위에 보 는 사람들로 하여금 절에 가고 싶게끔 마음을 낼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행 을 한다고 했다. 자기 행이 올바르면 저절로 교화와 제도는 된다.)
월초불공 후 항상 칠정진 불공수행은 나를 가르치고 법을 주어
▲ 불공은 나의 전부.
-평소의 불공은 어떻게 하십니까.
“자성일 불공과 월초불공, 새해불공, 상·하반기 불공은 기본적으로 수행하 고 있어요.” (전수님은 보살님이 매일 새벽 5시 50분이면 어김없이 법당에 오시고, 각 자님도 10시 10분전에는 항상 법당에 오셔서 불공을 드린다고 했다. 항상 시간은 정확하다고 한다. 더군다나 보 살님은 월초불공이 끝나면 항상 칠정 진을 하신다고 했다.)
-월마다 칠정진 수행하는 분들이 드 물다고 알고 있습니다. 평소에 수행하면서 느낀 점을 말씀 해 주세요.
“말없이, 즐겁게 행하고 있어요. 부 처님께서 저에게 영양가를 주셨어요. 좋은 것을 받았으니 남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습니다.”
스승님(안성 정사, 유가해 전수)과 함께
-바라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 입니까
“비슷합니다. 손자들이 잘 크고, 가 족이 건강하고 잘 살기를 바랍니다. 각자님이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 다.” 각자님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있다. 보살님은 국광사 간부로 활동하 면서, 절에 궂은일을 다 한다. 아무말 없이 주어진 그대로 행 한다. 말씀하 면서 물이 아래로 자연스럽게 흐르듯 찬찬한 성품을 느낄 수 있었다. 순리 대로 행하고 불공을 하면서 증득한 것 을 그대로 실천하는 보살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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