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오디를 통해 삶의 기쁨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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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41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1-08-03 신문면수 11면 카테고리 문화Ⅱ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은주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자유기고가 김은주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07 11:34 조회 3,161회본문
달콤한 오디를 통해 삶의 기쁨을 찾다
압바스키아로스타미감독의<체리향기>
이란 최대 관광도시인 이스파한에는 자얀데 강이 도시를 관통하며 흐릅니 다. 수량이 많지 않은 강이지만 이 강 위에는 무려 11개의 다리가 놓여 있습 니다. 다리들도 그냥 다리가 아니라 예술 작품이라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다리입니다. 차가 지나다니는 그런 다리가 아닌 것이지요. 이 다리들은 만남과 사색의 공간이었습니다. 이스파한 시민들은 노을이 내리는 시간이면 다리께로 몰려나와 자얀데 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했습니다. 연인이나 가족끼리 나와서 차를 마시 거나 수다를 떠는 사람들도 보였지만 많은 여자와 남자들은 홀로 서서 오렌 지 빛 하늘에 넋을 빼앗기고 있었습니 다. 오렌지 빛 강 위로 겨울새가 줄을 지으며 날아올랐습니다. 역동적인 장 면임에도 한순간 정적을 느끼게 할 만 큼 고요한 풍경이기도 했습니다.
왜 고요하다고 하냐면, 아름다운 풍경에 몰입한 이 순간만큼은 일체의 생각이 잠시 쉬고, 분주한 일체의 감정이 멈 추기 때문입니다. 몰입의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스 파한 시민들은 이런 순간을 즐기고 있 었던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이런 순간을 삼매라고 합니다. 삼매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행복한 경지일 것입니다. 삼매는 염불이나 참선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 지만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좋아하는 일에서 도 삼매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란 인들은 이런 식으로 일상 속에서 삼매 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영화 <체리향기>는 이란 영화입니다. 그래서 영화에는 노을 지는 풍경 앞에 서 삼매에 드는 이란인의 정서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영화는 꾸준하게 일 상 속의 삼매를 추구합니다. 일상의 삼매를 통해서 삶의 행복을 찾으라고 조언해줍니다. 물론 영화에서는‘삼매’라는 표현이 아니라 삶의 기쁨을 찾으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이라는 게, 달밤의 고요를 경험한다거나 새벽 에 장엄하게 솟아오르는 태양 앞에서 넋을 잃는다거나 달콤한 체리향기에 몰입한다거나하는 것들입니다. 몰입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삼매라는 표현을 써도 무방하리라 봅니다.
그래서 이 영화 <체리향기>를 일상 속의 삼매를 추구하는 영화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체리향기>의 압바스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우리나라에서도 꽤 유명한 감 독입니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 <그리 고 삶은 계속 된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등 소위 지그재그 3부작이 라는 영화를 통해 세계적으로 마니아 층이 두터운 감독입니다. 그의 영화는 소위 영혼을 위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 이 아닐 정도로 영화를 보고 나면 조 금 더 행복해지고, 조금 더 마음이 고 요해집니다. <체리향기>는 압바스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최고의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작품으로 1997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뛰어난 영화입니다. <체리향기>는 죽음을 통해서 삶의 의 미를 찾아가는 영화입니다. 삶의 목적 을 찾고, 삶을 보다 풍요롭게 살기 위 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일러주 는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답 은 일상 속에서 삼매를 추구하는 것입 니다. 주인공 버디는 차를 타고 누군가를 찾고 있습니다. 그를 도와줄 누군가를 찾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순진한 표정 의 남자들이 창문으로 다가오지만 그 는 어린 군인을 차에 태웁니다. 지방에서 테헤란으로 올라와 친척 집에 얹혀사는 군인은 매우 수줍음이 많고 지쳐 보입니다.
버디는 군인에게 돈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물어보고 군 인은 월급이 너무 작아서 많이 궁핍하 다고 대답합니다. 버디는 군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자기는 오늘 저녁 수면제를 먹고 이 전에 파놓은 무덤에 가서 누워있을 건 데 내일 새벽에 그리로 와서 자신의 시체 위에 흙을 덮어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주면 많은 돈을 주겠다고 제 안합니다. 자살한 사람의 시체를 묻어 달라는 것이니까 자살을 도와 달라는 뜻이었습니다. 버디의 제안을 받은 가난한 군인은 버디를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란인들은 독실한 무슬림 인데, 무슬림의 율법에서 자살은 죄이 므로, 버디는 어린 군인에게 죄를 짓 도록 유인하는 악마인 것입니다. 이때 부터 어린 군인은 버디에게서 마음의 문을 닫고 입도 닫아버립니다.
그러다 가 버디가 한 눈을 판 사이 달아나버 립니다. 악마에게서 도망치듯 줄행랑 을 칩니다. 버디가 다음으로 선택한 사람은 아 프가니스탄에서 온 가난한 신학생입니 다. 앞에서는 버디가 군인을 설득하려 했다면 이번에는 신학생이 버디를 설 득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버디는 다른 사람을 찾기로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노인을 만납니다. 노 인은 자연사박물관에서 새를 박제로 만드는 작업을 하는 남자입니다. 노인 은 앞의 둘과 달리 버디의 제안을 받 아들입니다. 일단은 버디의 제안을 수 락했지만 그러나 노인은 버디의 잘못 된 마음을 바꾸고 싶어 했습니다. 앞 에서 신학생이 이슬람교 교리를 통해 설득을 했다면, 노인은 자신의 체험을 통해 삶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 했는데, 경험에서 우러나온 삶에 대한 예찬은 버디의 마음을 조금 움직였습 니다. 노인도 신혼 초기에 자살을 결심했 다고 했습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삶의 문제들로부터 쉽게 도망갈 수 있는 방 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노인은 밧줄을 갖고 뽕나무 밭으로 갔 습니다. 목을 맬 적당한 나무를 발견 하고 밧줄을 가지 위로 던졌습니다. 그런데 줄이 나무에 걸리지 않자 노인 이 직접 나무로 올라갔습니다. 밧줄을 나무에 묶다가 손에 오디가 잡혔 습니다. 무심결에 노인은 오디 하나를 먹었습니다. 하나를 먹다가 두 개 를 먹고, 계속 먹었습 니다. 마침 해가 멋진 모습으로 떠오르고 등 교하는 아이들의 재잘 거림이 들렸습니다. 아이들은 노인에게 오 디나무를 흔들어달라 고 졸랐습니다. 노인은 아이들을 위 해 오디나무를 흔들어 주고, 마침내 오디를 한 바구니를 따가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늦게 일어난 아내 는 노인이 따온 오디를 보자 행복해 하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자살하러 갔던 노인은 오디를 먹으 면서 삶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했습니 다.
오디를 먹으면서 기분이 좋아졌고, 모든 걸 새롭게 보게 됐다는 것이지 요. 오디를 따먹으면서 노인의 기분이 좋아지자 아내에게도 오디를 따와서 먹이고픈 마음이 생기고, 결국 아내의 기분까지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결 국 해결의 실마리는 자신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노인이 버디에게 강 조한 말은 자신의 마음을 바꾸라는 것 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노인의 가치관은 지금 현 재를 즐기라는 것입니다. 생각에 사로 잡히지 말고 현재를 온전하게 느 끼는 것 이 행복이라는 것이지요. 온전하게 현 재를 느낀다는 의미를 한 마디로 표현 하면 삼매에 드는 것이지요. 즉 일상 속 삼매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생각이나 편견에 사 로잡혀 아까운 삶을 낭비하지 말고 매 순간 깨어서 살아가라고 조언하는 것 입니다.
부처님의 이름 중에는‘여래(如來)’ 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것은 여여함 (如如), 이와 같음(如是)을 의미합니 다. 여기가 전부이며, 지금이 전부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과거도 없 고 미래도 없습니다. 이와 비슷한 말 을 다큐멘터리 영화 <위대한 침묵>에 서도 들었습니다. 봉쇄 수도원에서 오 랜 시간 수행을 해온 신부님이 하신 말인데, 인간에게는 과거와 미래가 있 지만 하나님에게는 오직 현재만 있다 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보다 훌륭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현재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나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사실 은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영화 <체리향기>에서 죽고 싶어 하는 버디를 설득하기 위해 노인이 한 말은 우리가 일상에서 현재 에 머물 수 있는 방법입니다. 즉 일상 속의 삼매를 위한 주문인 것이지요. “이른 아침 붉은 태양이 물드는 하 늘을 본 적 있소? 보름달 뜬 밤의 고 요함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소? 솟아 오르는 샘물을 더 이상 마시고 싶지 않나요? 차가운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싶지 않나요? 체리 맛을 포기하고 싶 은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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