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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자연, 원시와 현대가 어우러지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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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34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1-01-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특집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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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13 09:26 조회 2,10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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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자연, 원시와 현대가 어우러지는 곳
인도 - 불가사의한 나라

이 글은 화령 교육원장이 네팔의 룸비니 에서 거행된 오스트리아 사원 개원법회에 초청받아 종단의 축하사절단과 함께 네팔과 인도의 불교유적지를 둘러보고 쓴 소감문이 다. 지면 관계상 탐방한 곳의 자세한 소개를 생략하고 유적지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 께 네팔과 인도, 그리고 탐방 과정에 일어난 여러 가지 소감을 2회에 걸쳐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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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의 보드나트 대탑


지난 해 12월 6일에서 16일 까지 11일에 걸 쳐 네팔과 인도를 방문했다. 방문의1차 목적 은 네팔의 룸비니에 세워진 오스트리아 사원 의 개원식에 초청을 받고 지성 통리원장님, 만덕장(김은숙) 신정회 경인지회장님을 비롯 한 종단의 축하사절단과 함께 개원을 축하하 러 간 자리였다. 그리고 공식 초청 일정을 마 치고 인도로 넘어가 인도의 불교유적지와 함 께 인도 문화를 체험하는 10박 11일의 일정 이었다. 네팔 정부에서는 1978년부터 부처님 의 탄생지인 룸비니를 복원하여 관광 수입을 늘리고자 각 나라에 땅을 할애하여 절을 짓 게 했다. 

여기에는 대만, 스리랑카, 태국, 티 벳 등에서 세운 절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대성석가사란 이름으로 10년이 넘게 짓고 있 는 중이다. 이번에 개원한 오스트리아 절은 독일의 랍텐 센터가 주축이 되어 지어진 절 로서 많은 유럽불자들이 십시일반 보시하여 상징적으로 룸비니에 세워진 티벳 계통의 절 이다. 여기에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우리 총지 종이 초대받아 축하인사를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지금부터 만 10년 전에도 룸비니와 인 도의 불교성지를 방문할 기회를 가졌었다. 

이번에 같이 가게 된 분들은 모두 우 리 총지종을 대표하는 분들이고 신 심 깊은 불자들이라서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일행들이 하나 같이 교양과 매너가 있고 마음 이 너그러워 짜증내는 일 하 나 없이 한 식구처럼 밥을 나 누어 먹으며 서로를 챙겨주는 바람에 열흘이 넘는 시간이 오히려 짧게 느껴질 정도였다. 특히 김은숙 회장 보살님의 세 심한 배려와 분위기를 살려주는 센스로 인해 모두들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싶다. 12월 6일 출발 당일은 겨울 날씨치고는 그 다지 춥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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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얌부나트 사원에서


총 인원은 22명, 예정대로 인천공항에 모여서 2시 비행기를 타고 중국 꽝쩌우를 경유하여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로 향했다. 일반적인 인도 순례 코스는 델리로 들어갔다가 룸비니까지 올라가서 다시 델리 로 빠져나오는 것이지만 우리 일행은 일정에 맞추기 위해 카투만두 구경까지 하게 된 것 이다. 카투만두에 도착한 시간은 현지 시간으로 11시가 조금 못되었지만 3시간 30분의 시차 를 감안하면 우리 시간으로 새벽 2시 반이 된다. 아침에 일어나니 창 너머로 눈 덮인 높은 산이 보이길래 혹시 히말라야는 아닌가 물었 더니 히말라야를 보려면 6시간 정도 더 차를 타고 북쪽으로 가야한다고 했다. 아침밥은 네 팔 요리사가 한식으로 해줬다. 고빈이라는 이 름의 이 네팔 요리사는 한국 식당에서 7년 동안 일했다는 데 우리 입맛을 아주 잘 맞춰 주었다. 특히 국이 내 입맛에 딱 맞았다. 카투만두에도 지방에서 몰려든 인구로 가 는 데마다 사람들이 북적였다. 티벳불교의 전 설에 따르면 카투만 두는 과거칠불의 첫 번째인 비바시불 시 대부터 이 곳이 성스 러운 장소가 될 것이 라는 수기가 있었으 며 문수사리와 관세 음보살이 이곳을 순 례하고 지켜내었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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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바라다 본 히말라야


사캬무 니 붓다께서도 이곳 을 순례하고 교화했 다는 전설이 있지만 역사적 사실로 믿기 는 어렵다. 우리가 첫 번째로 방문했던 보드나트 대탑도 티 벳 풍의 사리탑인데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입구에서부터 각 지역에 서 몰려든 참배객과 여러 가지 공물을 파는 장사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강한 향냄새 며 시끄러운 호객 행위에 정신이 얼떨떨하다. 과연 카투만두의 최고의 불교유적지라 할 만 하다. 이 탑은 높이가 약 40미터로 세계 최대의 사리탑이라고 자랑한다. 어떤 이들은 이 탑이 카 샤 라 는 티벳 고승의 사리탑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들은 붓다의 뼈사리가 모셔져 있다고도 한 다. 모든 유적지가 불분명한 게 네팔과 인도 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의 것인지 언 제 만들어 졌는지 정확한 장소는 맞는 것인 지 의심나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이런 현상 은 불교 유적지를 둘러보는 내내 느낀 점이 다. 이 보드나트 대탑은 밀교의 소의경전인 《대일경》에 의거한 태장계만다라의 구성에 의하여 만들어진 밀교적 사리탑이다. 즉 팔면 체의 기단 위에 돔형으로 둥글게 탑을 쌓고 그 위에 다시 사각의 첨탑을 세운 다음 둥근 정상부를 만들어 올렸다. 기단과 정상 사이의 첨탑은 모두 13단계로 되어 있는데 이는《대 일경》의 13대원을 상징하는 것이다. 기단과 첨탑 사이의 여러 가지 모양은 지?수?화?풍? 공을 상징하는 오륜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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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비니 아소카 나무아래서


기단 아래에는 옴 마니반메훔을 적어 놓은 마니차가 만들어져 있어 사람들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며 마 니차를 돌리면서 진언을 외우거나 소원을 빈 다. 스와얌부나트의 나트는 사원이라는 의미이 고 스와얌부는 스스로 존재한다는 의미로써 이 탑은 본초불을 모신 곳이다. 이 탑은 높은 곳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카투만두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이 사원은 5세기 경 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네팔의 가장 오래된 사원이다. 이 사원도 보드나트 사원과 마찬가 지로 불교도는 물론이고 힌두교도들도 신성 시하는 사원이라고 한다. 중심이 되는 탑은 역시 밀교의 만다라에 의해 구성된 것으로서 각 면에는 동방의 아촉불부터 북방의 불공성 취불까지의 사불과 그 권속들이 새겨져 있다. 전체적인 배치는 중앙의 대탑을 중심으로 여 덟 방향에 사불 사보살의 형태로 작은 탑을 배치했으며 아촉불 곁에 비로자나불을 새긴 작은 탑을 특별히 하나 더 만들어 놓았다. 이 곳의 탑, 즉 스투파는 대부분 티벳풍으로서 한결 같이 모양이 비슷하다. 그러나 사불 사 보살의 형태로 탑을 배치하고 각 탑신에는 불신을 새겨 놓은 이러한 형태는 꽤 독특하 다. 

더구나 사원 경내의 네 귀퉁이에 지?수? 화?풍을 상징하는 작은 탑이 세워져 있고 사 원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365개를 만들어 놓 았는데 밀교적 상징성이 풍부한 사원이라고 할 수 있다. 힌두교도나 일반 참배객들은 이 런 것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향을 피우 고 소원을 빌기에 열심이다. 시간이 있었으면 더 자세히 둘러보았겠지만 바싼드뿌르 광장 을 보기 위해 서둘러 떠났다. 광장으로 가는 길은 자동차와 릭샤(자 전거를 이용해 만든 인력거), 오토릭 샤(오토바이를 이용한 릭샤), 자 전거 등이 서로 얽혀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지 길을 놓칠까 봐 서로 손을 잡다시피 하 고 이동했다. 달발광장에는 옛 왕궁터와 탑 등이 보이 고 소떼와 비들기떼가 온통 뒤덮고 있었다. 이리저리 둘 러보고 사진도 찍고 쇼핑도 하다가 근처에 있는 쿠마리 바 할이란 곳으로 갔다. 이곳에는 네 팔 사람들이 살아있는 여신이라고 부르는 쿠마리 여신이 있다. 여신을 보기 위해서는 카메라도 감추고 절 대 사진을 찍 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래야 여신이 나타난 다는 것이다. 한참을 기다리니 화장을 특이하 게 한 어린 소녀가 창밖으로 잠깐 얼굴을 비 추는데 그게 쿠마리라고 한다. 

쿠마리 신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 옛날에 네팔의 말라 왕조 의 마지막 왕이 사춘기 이전의 어린 소녀와 성관계를 맺었는데 그 소녀는 그것을 원인으 로 죽었다고 한다. 죽은 소녀가 밤마다 꿈에 나타나 왕을 괴롭히자 왕은 속죄하는 마음으 로 그녀를 쿠마리신으로 모셔 경배하고 일 년에 한 번씩 그녀의 상을 모시고 카투만두 에서 행렬을 벌이겠다고 약속했으나 그녀의 원한이 풀리지 않아서인지 그 여신의 축제일 에 말라 왕조는 샤 왕조에 의해 마침내 망해 버렸다. 샤 왕조는 그녀 덕분에 왕조가 탄생 했다고 여기고 그때부터 그 여신을 섬겨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쿠마리 여신을 선정할 때 는 나름대로의 까다로운 규정이 있는데 한 마디로 혈통 좋고 인물 좋고 총명한 4,5세의 소녀를 골라 초경이 올 때까지 신으로 모시 는 것이다. 쿠마리는 네와르 족과 샤카족 가 운데에서 고르는데 여러 가지 테스트 중의 하나는 어두운 방에 가둬 놓고 하룻밤을 지 내는데 무서운 형상, 예를 들면 피가 흥건한 동물의 시체나 귀신 형상을 보여줘도 놀라거 나 울지 말아야 한다 는 것이다. 혈통 좋고 인물 좋고 총명한데다 담력까지 있어야 한다 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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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탄생지임을 알려주는 표지석과 탄생상이 모셔진 마야데비 사원


사람이 이렇게 너무 완벽하면 팔자가 센 법. 쿠마리 도 생리가 시작되고 나면 그 지위를 잃게 되는데 나라에서 매달 일정액의 연금도 주며 결혼 시에는 많은 결 혼지참금도 주지만 이 여자와 결혼하려는 사 람이 없다고 한다. 결 혼하면 6개월 이내에 죽게 된다는 미신이 있어 결혼을 꺼리기 때문에 간혹 창녀가 되 기도 했으나 지금은 쿠마리도 더러 결혼한다 고 한다. 점심을 먹은 후 룸비니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갔다. 기내에서 히말라야 산맥이 보였는 데 정말 장관이었다. 서녘의 햇살을 받아 밝 게 빛나는 히말라야 산맥을 룸비니에 거의 내릴 때까지 감상했는데 이런 기회는 좀체 어렵다고 한다. 안개가 끼거나 시간대가 맞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광경인데 정말 일생에 한 번 볼까 말까한 행운이었다. 모두들 한 쪽으 로 몰려 히말라야산을 바라보면서 탄성을 질 렀는데 비행기가 한쪽으로 기울지 않을까 걱 정도 되었다. 나도 말로만 듣던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산을 이렇게 눈앞에 보고 있으려니 탄성이 절로 났다. 

이것 하나만 본 것으로도 이번 여행은 제 값을 다 한 것 같았다. 룸비니에 내리니 날씨가 무척 좋다. 햇살이 눈부셔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도 껴야 했다. 부처님이 이런 곳에서 태어나셨다고 생각하 니 이곳에 발을 디디고 있는 자체가 경이롭 다. 옛날 문헌에는 이곳이 숲이 우거지고 온 갖 꽃들이 피는 아름다운 곳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그저 넓은 들판에 철망 울타리를 쳐 놓았을 뿐이다. 차라리 울타리가 없는 것이 보기는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 다. 주위의 길은 포장이 되지 않아 온통 먼지 투성이다. 과거에 교통이 불편하 던 시 대 에 부처님 성 지를 돌아 보기 위 하여 오 고 가 다 목 숨 을 잃은 많 은 구법자 들을 생각 하면 숙연해 진다. 과학기술 의 덕으로 이렇게 단숨에 여기가지 날아 올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지덕 지다. 마야데비 사원도 개축을 했으나 미적 감각 이 많이 떨어진다. 마야데비 사원 안에는 부 처님께서 태어나신 자리를 표시했다는 돌이 놓여 있고 탄생 장면을 새긴 부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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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마리 여신


나 는 옛날에 왔을 때 대리석에 새겨진 탄생 부 조가 진짜인줄 알았는데 그것은 50년 전에 네팔 정부에서 만든 것으로 지금은 근처의 조그만 사원에 모셔져 있었다. 현재 마야데비 사원에 모셔진 오리지널 탄생상은 4세기 경 에 만든 것으로 많이 마모되어 형태가 불분 명하다. 사원의 옆에는 마야 부인이 목욕하고 부처님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몸을 씻었다 는 연못인 푸스카리니 성지가 있다. 마야데비 사원 옆에는 아소카왕 석주가 있는데 1896년 에 발견된 이 석주로 말미암아 이곳이 부처 님의 탄생지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고 한다. 

석주에는 이곳이 부처님의 탄생지이며 이곳 의 주민에게는 세금을 8분의 1로 감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경내의 큰 나무 아래에서는 외국에서 온 참배객들이 모여 경을 읽고 있다. 고요히 명 상에 잠겨있는 불자들도 보인다. 모두들 한 번쯤은 부처님의 탄생에 대해 생각해 볼 것 이다. 부처님의 탄생이 있었기에 불교의 가르 침도 있을 수 있었고 우리들도 이렇게 부처 님의 은덕을 입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탄 생성지가 신심있는 불자들에 의하여 좀 더 장엄하게 가꾸어졌으면 하는 아쉬 움을 뒤로 하고 황혼 의 룸비니 동 산을 떠났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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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룸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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