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연이 다해 패망한 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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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96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7-11-01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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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18 09:02 조회 1,775회본문
불연이 다해 패망한 고구려
고구려 보장왕때에 보덕화상이라는 고승이 있었다. 고구려 소수림왕 2년, 불법이 중국으로부터 들어오자 고구려의 상하군신은 감로수를 얻은듯 기뻐 날뛰었다. 그러므로 고구려의 불교는 욱일승천 북방제지에 황금을 깔아 놓은듯 퍼져 나갔다. 원래 고구려 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하고 성질이 날카로와 누구에게도 의존하는 마음이 적고 나라 임금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마음에 맞지 않으면 불복하고 높은 벼슬아치들에게도 굽신거리지 않는 성미의 백성들인지라,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자비 불교는 마치 자갈 밭에 황토흙이 옮겨진듯, 메마른 땅에 감로의 비가 쏟아진듯 하였다. 그래서 이 불법이 들어온 뒤로는 군신이 화목하고 백성이 순종하여 문자 그대로 우순풍조 하고 천하 태평한 세계 무비의 강대국으로 발전해 나갔다. 그래서 중국의 당태종 같은 이도 고구려를 침범했다가 왼쪽 눈을 상하는 곤욕을 당했고 수십만의 대군을 살수 강변에 수장하는 참변을 당하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나라가 이만큼 잘 되어 가게 된 것은 오직 고승석덕들의 교화의 힘이 크고 또 그를 따르는 백성들의 마음이 수정같이 맑 고 깨끗하였던 탓이다. 그런데 제 28대 보장왕에 이르러서 중국에 서 발생한 선교 즉 오두미교를 받아 들이면서 국민정신은 해이해지고 주체성을 상실하여 신하는 임금을 죽이고, 임금은 백성을 못 믿어하는 풍조가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당시 국사로 있던 보덕화상은 임금님께 간하였다.
하늘에는 두 해가 없고 나라에는 두 임금이 없듯이 종교적 신앙도 마찬가지 입니다. 두가지 세가지 교를 믿게 되면 국민정신이 서로 엇갈리어 가정에서도 불합하고 나라에서도 불합하여 결국 나라는 망하게 되고 맙니다.
전래로 우리 민속신앙이 있기는 하였으나 근거가 확실치 않고 무적신앙이 되어 백성들이 중정을 얻지 못하였으나 그동안 불교와 유교가 유입되면서 나라도 부강해지고 백성들도 많이 깨우쳐 졌으니 한가지 신앙을 따라 다른 여러가지를 버리도록 하십시요.
그러나 보장왕은 날이면 날마다 어여쁜 계집, 간사한 신하들만을 옆에 두고 어질고 착한 충신들은 몰아내며 주지육림에 ,화중방만할 뿐, “스님 그런 말씀. 마십시요. 화원의 꽃동산에는 천자만홍의 꽃이 있어야 보기가 좋고 끼니 때 마다 먹는 밥상에는 여러 가지 반찬이 올라야 맛이 있듯 민심을 계몽하는 데도 여러가지 종교가 있으므로 잘 될 줄 아옵니다.”
하니 대신 연개소문이 있다가,
“그렇습니다. 솥은 발이 세개 있어야 그 섬이 바로 되는것 같이 나라에도 종교가 셋이 있어야 더욱 성왕을 이룰 줄로 아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유교와 불교만 있을 뿐 도교가 없으니 곧 사신을 보내 3교를 정립하도록 하십시요.”
하자 이 말을 들은 보장왕은 더욱 신이 나서 사신을 불러 곧 당나라로 보대 도사와 천존기타 도경을 수 없이 들여오게 하고 또 그것이 들어 올 때 마다 막중한 비용을 내어 환영식을 올리고 또 도사를 짓고 도경을 찍어 한 없이 두둔하니 불교와 유교는 저 멀리 병풍속에 감추어진 그림과 같이 되고 도교는 날로 퍼져 나갔다. 한편 사람들도 죽어 극락세계를 가는 것이 낫다 하여 일시에 민심은 도교 일변도로 쏠리고 말았다.
보덕화상은 다시 몇번이고 생명을 걸어 놓고 나라에 고하였으나 가면 갈수록 임금님은 타락되고 국민사상은 삐뚤어져 나가 하는 수 없이 단념하고 몸을 날려 다른 곳으로 갈것을 다짐했다.
“여봐라, 독한 약이,입에는 쓰되 병에는 이롭고, 충성스런 말이 귀에는 거슬려도 행에는 이로운 법인데 나라 임금이 나의 말을 듣지 않고 도리어 나 대하기를 눈에 가시와 같이 하니 이 나라와 불법은 인연이 다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인연 있는 중생을 쫓아 제도 하도록 하여야 한다. 너희들 생각은 어느 곳으로 가는 것이 좋겠느니?”
한 상좌가 말했다.
“남으로 향하는 것이 좋을듯 하옵니다.” “남이라니 남방에 적당한 곳이 있느냐?”
“예, 제가 수년전 백제에 갔다 고달산이란 산을 구경 하였는데 매우 마음에들었읍니다.” ,
“그래 그러면 이 곳 반용사에서 고달산 까지는 몇리나 되는고?” “약 2천5백리 가량 될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들 며칠 이내로 떠날 터이니 단단히 준비나 하여라.”
스님의 명령을 받은 스님들은 빨래를 하고 옷을 챙기고 또 도중에서 먹을 음식을 작만하고해서 불철주야 4,5일을 고단하게 준비 하였다. 그들은 모두 준비를 끝내고 모두 고단하여 그날밤은 유독 깊은 잠에 빠져 있 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목탁을 들고 도량석을 하는데 절은 그 절이나 흐르는 물, 산 모습이 아주 달랐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스님이 어제 밤에 신통력으로 이 절을 들어 이 곳에 옮긴 것이다.”
하고 큰 상좌가 말했다.
그래서 그대로 그 절을 공중으로 날아 왔다고 하여 비래방장이라 하는데 지금 전라북도 완주군 고달사가그 것이다. 그런데 상좌들이 절은 왔으나 물이 없어 걱정 하므로, “너희들은 미리 그런 말을 하였더라면 우물까지 가지고 왔을 것 인데 그만 잊고 왔구나 그러나 걱정말라.”
하고 스님이 짚고 계시던 지팡이로 바위 사이를 한 번 내려치니 청정한 음료수가 수도꼭지처럼 터져 나왔다
한편 고구려에서는 이 사실을 뒤늦게 알았으며 몇몇 신하만이 애답게 여길 뿐 그 누구도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하루는 고구려 마령고개에 알 수 없는 신인이 나타나,“너희 나라는 이제 망할 날이 멀지 않았다.” 하였다.
그런데 이 말이 있은지 석달이 못되어 고구려는 완전히 패망하고 백성들은 뒤늦게 슬픈 통곡에 젖었으니 보덕이 백제에 이른지 15년이 되던 해이다.
어느 시대든 다종교로 인한 혼란스러운 시대상은 있었던 것일까? 자갈 밭에 황토흙이 옮겨진듯, 메마른 땅에 감로의 비가 쏟아진 듯, 이 땅에서의 불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런 깊고 철학적인 불교의 교리는 예나 지금이나 늘 같은 자리에 있지만 무명에 가리워진 우리는 그 법에 다가서기를 주저하니 누에고치가 껍데기를 벗고 나비가 되는 것보다 더 힘든 윤회의 삶을 거듭하고 있는것은 아닐런지…..
- 최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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