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불자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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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96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7-11-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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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18 08:35 조회 1,768회본문
현대사회에서 불자되기
총지종이 주최한 제1회 세계재 가불자대회에 참석한 외국인들이 세미나에서 발표한 자료들을 요약 정리 하였다. - 편집자 주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은 후 살아간 매 걸음마다 행하고 전파했던 말씀들, 행하지 않고 말하지 않았던 것 또는 삶의 순간순간의 사건들을 보면 그것들이 모두 비대립적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알 수 있습니다. 출가승과 재가불자들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우선적으로 삶의 방식이 다름이 이야기됩니다. 자기스스로를 불자라고 부름은 서약입니다. 스스로를 삼보즉, 불보 법보, 승보로 만들어 갑니다. 다른 말로 삼보에 의지하여 법을 공부 하는 것, 성찰하고 명상하며 이 길을 따라감에 나오는 모든 것이 불자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마음을 이룹니 다.그 마음이 건강하기만 하다면 누 구나 불교라는 몸 전체도 살아남을 것이며 세상을 치유하는 효과를 낼 것입니다.
이 글 제목 중 “현대 시대”란 단어는 우리 모두가 속해있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변화하는 세상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물론 자기 내부의 변화는 불자라면 가장 잘 알고 있는 변화입니다. 마음의 변화없이는 발전이란 불가능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이라고 불러지는 것은 연기 설입니다. 다른 말로 조건지워져 함께 일어나는 결과‘ 조건지워져 일어 남’입니다.
제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기본적인 원인과 결과의 자연법칙, 세상에서의 원인과 결과의 상호 영향력입니다. 윤리적인 측면에서 연기설은 모든 행동의 결과를 가집니다.
대중매체와 다른 오락
2500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은 사람 들에게 스스로의 감각을 살펴보라고 권하였습니다. 지금도 이 조언은 매우 유용하며 가치가 있습니다. 광고와 대중 매체가 우리 주변에서 영향을 끼치는 21세기에도 우리는 스스로의 감각을 살펴야 함은 명백합니다.
수많은 형태의 모든 오락거리는 우리를 어지럽힙니다. 수많은 매체와 오락거리는 항상 실재에 쉽게 가닿지 못하게 해왔습니다. 자각의 수양 없이는 매체와 오락거리에 빨려 들어가기 너무 쉽습니다. 불자로 행동한다는 것은 자각의 수양을 실천하는 것이 본성이며, 그런관점을 가지고 스스로 밖의 흐름 속으로 들어감을 말합니다. 사회에서는 이렇게 행동하거나 삶을 이끌어 가지 않는 사람이 대다수입니다. 이런 삶은 다른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보이겠죠. 하지만 불법을 따르는 이는 이러한 도전을 마주해야만 합니다. 이 도전의 긍정적인 부분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바람이 빠르든 늦든 어쨌든 열매, 가지각색이며 비할 데 없는 그 열매를 수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이 열매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과 석가모니 이후의 불법을 따랐던 다른 많은 수행자들로부터 전해져 온 것입니다. 훌륭한 선생의 계승자인 여러분과 저는 이 열매들을 체험했습니다.
~주의와 종파
불교의 앎은 모든 형태의 이원론을 초월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종파는 보통의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 마음은 단련되지 않은 마음의 상태이구요. 이 상태에 뿌리를 둔 모든 행동은 당연히 단련되지 않은 행동입니다. 참 앎은 어떤 한 ‘〜주의’, 이론, 이데올로기 저 너머서로 향합니다. 모든 형태의 대립을 넘어서는 것, 이원론의 초월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경중의 하나인 반야심경을 아름답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반야심경을 암송 할 때면 ‘아제, 아제, 바라아제’ 라는 끝부분이 있습니다. 그 의미는 ‘너머, 너머, 모두 함께 너머’ 입니다. 이렇게 강력하고 초월하려는 앞으로 감만이 궁극적으로 참 평화, 평정, 만족에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상품주의와 소비주의
세상에서는 돈만 있으면 그 돈에 해당하는 모든 것을 사서 소유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상품주의와 소비주의는 부유한 나라들에서 점점 더 삶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거의 끝이 없는 물품들이 ‘충분함’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듯한 회사들에 의해 광고되고 우리를 사고 싶어 하도록 만듭니다. 소비자인 우리는 오늘 당장 최신 휴대폰과 디지털 카메라, 컴퓨터를 살 수 있습니다. 새롭고, 더 낳고, 더 빠르며, 더 재미난 물품들을 말입니다. 지금은 새 제품을 사지만 몇 달, 어떤 제품은 몇 주만 지나면 새로운 모델의 제품을 볼 수 있습니다. 더 매혹적이고 최첨단이며, 최신의 제품들이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 이 많은 것을 소유하면, 많은 것이 자신 ‘안’에 있다면, 자신의 가치가 커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치 거의 개개인의 인간 까지도 그런식으로 살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런 식의 사람이 각자의 존재를 혼란스러워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는 상관 없이 쇼핑하고 물건을 가졌어, 그래 서 자신이 매력적이고,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상품과 소비로 이루어진 세상의 모습 뒤에는 실제가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보지 못하지만, 심지어 보기를 원하지도 않지만, 실재가 우리를 위해 가지고 있는 것을 피할 방법은 없습니다. 항상, 자신의 안이든 자신의 바깥이든 모든 곳에서 말입니다.
기후 변화
이번 포럼에 초청 받았을 때 제 관심을 끄는 문구가 바로〈실천하는 불교〉였습니다. 그래서 이제 환경 분야에서 저의 실천과 경험을 조금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불자로서 저는 1년 넘게 기후 변화 와 연관된 문제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지난 가을 저는 앨 고어의 “불편 한 진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미리 보았고 그 즉시 제가 행동해야만 함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이상적인 장소였습니다.
결론
21세기의 삶은 석가모니 부처님 시대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예로써 시민으로서의 복잡함이 있습니다. 현대 의 우리 삶은 법과 규율에 의해 아주 제약받습니다. 많은 나라의 행정 시스템과 나라의 사건들은 점점 계속해서 늘어납니다. 전 세계적인 범위에서 경제, 재정 시스템, 교통, 기후 등 등은 서로서로 의존적이 되며 영향을 줍니다. 예를 들어, 지역 농민은 자신의 농작물 가격을 점점 큰 시장에 의존하면서 결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이야기 하려는 것을 현대적 용어로는 ‘세계화’라고합니다.
각각의 사회의, 중심부를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본다면 기존 가족 구조의 붕괴를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이고 소비적인 사회에서는 점점 많은 사람들이 자신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 살아갑니다. 이러한 핵가족화 때문에 부부 사이에서의 감성적이고 심리적인 요구는 더 커져갑니다. 이전 세대보다 핵가족적 관계에서의 삶의 주기는 훨씬 짧아졌습니다. 이 사실에 비추어 보아 왜 우정이, 불자인 우리들에게는 불심으로 연결된 그렇게 중요한지 명백해 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속한 불교 운동에서는 많은 구성원이 공동체를 이루어 가까이 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10년 동안 영국에서 여러 다른 지역과 공 동체에 속해 살아 왔었습니다만 오로지 지금이 공동체야 말로 대안적인 예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공동체적인 삶과 승가를 풍요롭게 만드는 의미에서의 마음수행은 승가 그 자체 로 끊임없이 긍정적인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불자로서 불법을 진지하게 따르는 이로서 우리는 커다란 변화를 이루어 낼 수 있습니다. 그 달라짐을 많은 이들이 주목하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불법에 대해 전혀 들어본적 없는 이라도 우리가 하는 것과 왜 하려는 지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가장 존귀한 인류의 보물, 삼도외에 무엇을 더 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비록 가장 빨리 변하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불법, 실재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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