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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조 원정 대성사의 교육불사‘강공회(講工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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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42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1-09-05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설법 / 경전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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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법경 필자소속 - 필자호칭 정사 필자정보 밀교연구소장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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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07 10:20 조회 2,01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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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조 원정 대성사의 교육불사‘강공회(講工會)’
제31주기 종조멸도절 특집기획

종조 원정 대성사께서는 밀교의 중흥과 구 국도생(救國度生)의 대비원(大悲願)을 세우 시고 이 땅에 밀교종단‘불교총지종’을 창종 하셨다. 

그로부터 어언 40년이 흘렀다. 창종 초창기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종조님께서 는 특히 교육불사(敎育佛事)에 종단의 장래 가 달려 있다고 하시고 백년대계의 기틀을 마련하셨다. 그 가운데 남다른 열정과 정진력 으로써 종단내의 교육불사를 열어시었으니 그것은 바로‘승단의 강공회’를 개최하셨다. 그 전통은 역대 종령님으로부터 계속 유지되 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종조 원정 대 성사께서 재세할 당시 강공회가 열리면 전국 스승님들은 법을 듣고자 하는 바램과 즐거운 마음, 기대와 설레임이 가득하였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경청을 하며, 각자의 수행은 물론 교화방편의 법문으로 삼았던 강공회였 다. 종조님께서는 강공회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정사, 전수 및 종무원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 기 위하여 춘, 추 2기의 정기 강공회를 개최 한다”고 선언하셨다. 종조님으로부터 시작된 강공회는 오늘날까 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강공회는 일 선 사원에서 경험한 교화 사례들과 불공을 통하여 얻어진 공덕을 서로 이야기 하고 법 담을 나누는 자리였고 경전을 통하여 부처님 의 가르침을 배우는 자리가 되어 왔다. 중생 을 제도하는 교화방편과 경험담을 공유하고 나누는 자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 강공회는 본래의 뜻에서 조금 벗어난 적도 있었다. 경공부(經工夫)를 위주 로 하는 경강공회(經講工會)가 되어야 하는 데, 실상은 각종 회의가 중심이 된 강공회 일 정일때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강공 회 본래의 취지와 방향에서 변질되었다는 지 적도 많이 있어 왔다. 그리고 창종 당시의 열 의와 적극성은 많이 사라지기도 했다. 창종 당시의 강공회(講工會)의 분위기가 못내 아 쉽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히 근간에 와서 다 시 강공회(講工會) 본래의 목적에 맞게금 일 정이 바꾸어 가고 있는데, 이는 참으로 다행 스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활발한 교육 이 이루져서 강공회의 본래의 생명력이 되살 아나고 있는 듯하다. 9월 8일은 종조님의 열반일이다. 총지종은 종조님의 열반일을 달리부르며‘종조멸도절 (宗祖滅度節)’이라 부른다. ‘종조님의 육신 (肉身)은 멸하였지만 그 가르침은 남아 있 음’을 의미하고 있다. 멸도절을 즈음하여 종 조님 재세시에 개최되었던 강공회를 다시금 살펴 보면서 창종 정신과 종조님의 대비원 (大悲願)을 되새겨는 보는 것도 뜻깊은 일일 것이다. 강공회(講工會)는‘경전을 통해서 부처님 의 가르침을 배우는 모임’을 말한다. 종조님 께서는 창종 이후 첫 강공회(講工會)를 총기 2년(1973년) 6월27일에 개최하셨다. 성북선교 부 도량에서 6월 29일까지 3일간 개최했다. 종단의 제1회 춘기강공회로서 강공회의 효시 가 되는 셈이다. 

성북선교부는 오늘날 실지사 (悉地寺)의 전신(前身)이다. 당시는 총지종의 총본산 역할하던 도량이었다. 첫 강공회는 종 단의 기틀을 마련한 자리였다. 바로 법과 제 도, 기구(機構) 등을 결정하였다. 종제(宗制) 의 확립을 선포하는 자리였다. 교사 자료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종암동 123번지의 26 호 소재 총지종 총본산에서 전국 교역자(敎 役者) 및 교무(敎務)를 총망라한 전국 총회 를 개최하고 다음과 같이 종제(宗制)를 확립 했다. 오후 1시30분, 대종사님의 임석(臨席) 으로 총회 개회선언에 이어 3·7의궤를 엄수 했다. 대종사님이 임시의장을 지명하였는데 임시의장에 김균 정사로 정해졌다. 총회에서 결의된 사항은 다음과 같다. 

‘종헌(宗憲) 제 정안 가결’, ‘종조 원정 대성사님의 종령 재 추대 만장일치 가결’, ‘중앙종회법 가결 및 종회의원 선출’, ‘통리원장 및 4 부장 임명 인준 가결’, ‘윈의회(院議會) 구성’등을 확 정하였다.』 여기에서 주목할만한 사항은 종단의 모든 법회나 의식, 회의에 앞서 반드시 총지종의 의궤법으로 불사(佛事)을 올렸다는 점이다. 이 전통은 오늘에도 이어져 각종 회의나 모 임 등에서 3·7의궤법으로 불사를 올리고 있 다. 또한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종정(宗政)을 운영했다는 점이다. 이 총회는 오늘날과 같은 승단총회(僧團總會)로 정착되었다. 처음 열린 강공회에서 종조님께서는 아주 중요한 전법(典法)을 설하셨으니 바로 보은 시법(報恩施法)이었다. 보은시법(報恩施法)이 란 은혜에 보답하는 법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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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공회에서 강설하고 계시는 종조 원정 대성사


이 보은시 법(報恩施法)은 종단의 주요한 불공법인 동 시에 생활 속의 실천법이 되었다. 특히 상하반기 49일 불공은 물론이오 새해 불공과 월초불공, 다급하거나 중요한 서원불 공이 있을때 병행하는 보시법(布施法)이자 희사법(喜捨法)이다. 은혜 갚는 길은 바로 4 대 은혜를 갚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그 사은 (四恩)이란 삼보의 은혜·부모의 은혜·나라 의 은혜·중생의 은혜이다. 보시는 흔히 법시 (法施), 재시(財施)를 말하는데, 총지종에서 는 별개로 보은시법이라는 새로운 법을 내놓 으셨던 것이다. 이 보은시법을 줄여서‘은시 (恩施)’라고 한다. 이 보은시법은 지금도 불 공과 기도를 올릴때 실천법으로써 많이 활용 되고 있다. 첫 강공회를 원만히 마치고 나서, 4개월이 지난 10월17일 제2회 강공회가 다시 열렸다. 이로써 강공회가 매년 정기적으로 춘·추기 에 열리게 되는 단초가 되었다. 제2회의 추기 강공회에서 특이할만한 것은 본격적으로 경 공부에 들어갔다는 것 이다. 1회의 강공회가 종제 (宗制)를 확립하고 종 단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자리였다면, 2회는 교상(敎相)과 사상(事 相)을 확립하는 자리였 다. 

그래서 1회의 강공회 는 회의 중심의 강공회 였고, 2회부터 경전공부 를 중심으로 하는 강공 회가 되었다. 종조님께 서는 화도방편(化導方 便)으로 종단의 교전 (敎典)을 편찬하셨는데, 바로 『불교총전(佛敎總 典)』이었다. 종조님께서 창종을 준비하시면서 가장 먼 저 착수하신 것이 종단 의 교전(敎典)이었다. 

현밀(顯密)의 한문 경 전에서 요목별로 발췌 하여 한글로 번역하여 종조님께서 손수 집필 하셨다. 1972년 10월17일, 번역하기 시작하였고, 그 로부터 정확하게 1년이 지난 1973년 10월 17 일에 제2회 강공회가 개최되었고 이 자리에 서 첫 강설이 있었다. 집필하신 원고는 완전 한 상태가 아니고 가제본 형태로 배부되었고, 이 자료는 승단의 스승님들에게는 좋은 법석 (法席)이 되었다. 3일간 진행된 강공회는 서울의 본산이 아 닌 지방 사원에서 개최되었는데, 오늘날의 개 천사(開天寺) 도량이었다. 

당시에는 대구선교 부라고 불렀다. 지방 개최는 종조님의 유연한 사고를 엿 볼 수 있다. 본산이 아닌 지방 사찰에서 강공회를 개최 한 사실에서 고정된 틀에 매이지 않으시는 종조님의 진면목을 짐작케 한다. 1973년 6월 과 10월의 춘추기 강공회는 지금까지 변함없 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당시에 6월에 개최 되었던 강공회는 춘기(春期)인 4월로 앞당겨 졌다. 

다음해인 1974년의 제3회 춘기 강공회에서 강공회는 새로운 틀을 갖추게 된다. 강공회가 열리는 하루 전날 각종 회의를 개최하고 그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강공회를 개최했던 것이다. 4월 23일에는 원의회(院議會)와 중앙 종회(中央宗會)가 열렸고 4월24일부터 3일간 제3회 강공회가 개최되었다. 이날 경강공에 서 종조님은 불교총전 가운데‘성직자(聖職 者)’에 관한 부분을 강설하셨다. 회의에서는 ‘사종수법 중 항복법의 불실시’‘불전공양 (佛前供養)시 헌화(獻花)와 소향(燒香) 통 일’‘금강막(金剛幕)과 법등(法燈) 제작’등 의 안건이 가결되었다. 종단의 주요한 사법 (事法)이 결정된 회의였다. 그해 가을, 10월22일부터 4일간 제4회 추기 강공회가 개최되었다. 

일정이 하루 더 늘었 다. 이때부터『불교총전』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전들이 강설되었다. 종조님께서는 총지종 이 재가종단인만큼 재가수행자의 일화를 담 고 있는『유마경』을 번역함과 동시에 이를 직접 강설하셨다. 그리고 이날 강공회에서는 종조님은 교도들의 신심을 고취시키고 교도 들의 조직을 구성하기 위한 법을 선포하셨는 데, 전교(傳敎)와 시교(試敎)·법로장(法老 長) 제도의 실시였다. 교사 자료에서 관련 사 실을 살펴본다. 

『교도로써 2세대를 제도하면 시교(試敎)가 되고, 5세대를 제도하면 전교(傳敎)가 되는 것이니, 이것을 6인 연합이라고 한다. 그 연 합에서 또 3개 이상의 연합이 생기면 당초 연합의 전교는 자동적으로 법로장(法老長)이 되며 잔교와 법노장은 불명(佛名)을 수여하 고 관정수계(灌頂受戒)하며 전교와 법로장 중에서 스승을 선택하여 상당히 우대하는 것 을 그 주요 목표로 한다. 그리하여 교도연락과 동원 및 출석상황 등 을 항시 파악하게 하여 전교회의(傳敎會議) 를 자주 열게 한다. 

그리하여 교세의 저변 확 대를 기한다.』 종조님께서는 교육불사 뿐만 아니라 신도 관리에도 각별하셨다. 

신도관리와 중생제도, 더 나아가 교세발전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전교(傳敎)와 시교(試 敎) 법로장(法老長) 제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료 및 원고 정리 : 법경 정사/ 밀교연구 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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