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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 불교문화 어떻게 보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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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42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1-09-05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학술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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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07 10:42 조회 2,19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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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 불교문화 어떻게 보전 할 것인가?’
불교문화유산의 보전과 활용에 대한 대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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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승가교육진흥위원회는 8 월31일 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 회의장에서 불교문화유산의 현주 소와 보전 방안에 관한 대토론회 를 개최했다. 성균관대학교 이상해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회는 발제자로 유흥준(전 문화재청장, 명지대 미술사학과)교수가 나섰다. 토론은 범하스님(성보문화재연구 원장), 황평우(한국문화유산정책연 구소장), 김영애(다할미디어대표) 가 참여했다.   



불교문화의 역사적 흐름 


유흥준 교수는 불교문화유산의 보 전과 활용의 문제를 종교적 대상물과 문화재적 유물로서의 관점이 섞여있 다고 먼저 지적했다. 일반적인 문화 재와는 달리 현재에도 계속 종교적 예배의 대상이자 공간인 불교문화재 는 그 만큼 관리의 주체를 가리기가 힘들다. 한국 불교문화의 역사적 흐 름을 살펴보면, 삼국부터 고려시대까 지는 국가의 통치체제 뿐만이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이 불교문화라, 따로 구분 지을 필요가 없다. 조선에 들어 국가적 이념을 불교에서 성리학으로 바꾸면서 무자비한 폐불 정책이 시행 된다. 파괴와 학대 속에서 위대한 문 화유산은 거의 다 멸실되고, 석조 문 화재 만이 살아남았다. 그러다 임진 왜란이라는 국난을 겪으면서 불교는 다시 부활한다. 임진. 병자 양란이후 전국의 사찰들이 중창된다. 그런 면 에서 서산대사, 사명당은 조선불교 중창조였다. 법주사 팔상전, 화엄사 각황전, 금산사 미륵전, 무량사 극락 전 등이 이시기의 불사다. 현세 구복 과 내세의 구원을 위해 사람들은 다 시 사찰을 찾아오고, 엄청난 크기의 괘불이 조성되어 야단법석을 장식한 다. 조선후기는 더 이상 유교국가가 아니었다.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가 람의 배치, 즉‘산지 중정형’은 불교 의 사원과 유교의 향교, 서원 형식이 결합되어 완성된다. 여기에서 자연과 조응하는 우리의 독특한 산사의 미학 이 이루어진다. 또한 산신령, 칠성각 등 민중적 요소도 사찰 안으로 수용 조성된다. 조선후기의 국가 이념은 유교를 바탕으로 하지만, 민간의 마 음속에 자리 잡은 신앙은 불교였다. 당시 불교는 종단이 존재하지 않았 다. 때문에 파벌도 없었다. 파벌이란 힘이 있을 때 생기는 부작용이다. 일 제 강점기로 들어서면서 일제는 우리 문화를 말살시키려는 작업으로 조선 불교를 일본의 임제종에 편입시키려 한다. 이러한 탄압에 맞서 만해 한용 운 스님 등이 조선불교를 이끌어 나 갈 새로운 종단을 탄생시킨다. 결국 1911년 일제는 사찰령으로 30본산제 도를 인정하고, 1924년엔 31본산체제 가 확립된다. 그런 억압된 상황에서 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제가 강제 로 실시한 토지조사 때 불교는 기존 의 사찰과 산문이 소유한 토지를 대 장에 올려놓는다. 대찰의 경우 수십 만, 수백만 평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조계종의 거대한 인프 라가 된다. 해방이후 수차례의 법란 과 내부 진통을 겪었지만 대중의 불 교 인식이 확대되고, 민주화 과정에 서 불교계도 동참함으로써 사회적 발 언과 영향력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 다. 이제 불교는 또다시 전성기를 맞 을 수 있는 절호의 호기를 맞는다. 



중창과 복원 불사의 문제 


불교문화유산 보전의 문제에서 요 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사찰건축과 중창불사이다.1980년대 까지도 조계 종 사찰의 재정은 열악했다. 이런 상 황이 1980년대 후반 들어서면서 달라 진다. 사찰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대시주도 등장하면서 대대적인 불사 가 일어난다. 이때 불교는 좋은 기회 였지만, 오히려 사찰건축에 치명적인 변질과 상처를 입는다. 중창불사에 포클레인이 사용됨에 따라 삽시간에 형질이 변경되어 절집 마당은 연병장 을 연상케 한다. 아기자기했던 절 마 당이 허전하기 그지없는 밋밋한 마당 으로 변했다. 이는 산사의 미학을 일 그러뜨리는 일이다. 중창이나 복원이 든 문화재 건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자재와 재료이다. 우리 건축에 쓰는 소나무는 금강송인데 지금은 대부분 캐나다에서 수입한 더글라서퍼라는 소나무를 사용 한다 .이건 질감이 매 끄럽기만 할뿐 우리 전통 건축의 깊 은 질감을 보여 주지 못한다. 기와역 시 마찬가지로 정형화 된 KS 규격의 기와를 사용, 프라스틱 기와를 올려 놓은 인상을 준다. 단청은 더하다. 이 는 단청이아니라 페인트칠을 하는 것 이다. 모두가 비용의 문제와 관리 주 체의 인식 부족이다. 불상의 개금 문 제는 더 심각하다. 금빛의 번들거리 는 개금에 스님들은 별 거부감을 느 끼지 않는 점이 참 이상하다. 9세기 하대 조성된 장흥보림사, 철원도피안 사 철조비로자나불이 그 대표적인 예 이다. 이 불상들은 아스콘을 뒤집어 쓰고, 요란한 금칠로 되어 있었다. 문 화재청의 복원이 완료되자 우리의 눈 을 의심할 정도로 거룩하고 존엄한 불상이 그 모습을 찾았다. 작가 박완 서 선생은 비록 천주교인이었지만 이 불상을 보고 절대자의 이미지를 보았 다 한다. 또한 조경의 문제도 절집의 위치와 식생에 따라 장기적인 플랜에 입각, 시행해야하는 아주 어려운 문 제다. 폐사지 복원 문제는, 사찰을 복 원 하는 것이 옳으냐? 그대로 보존하 는 것이 옳으냐를 판단하는 것은 결 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로서는 페 사지를 보존하고, 인근에 새 절집을 짖는 방향으로 일이 이루어지고 있 다. 하지만 백제 정림사지 복원은 찬 성하는 입장이다. 경주에 불국사가 복원되면서 신라 문화의 우수성을 확 인하는 유적인 된 것처럼, 백제의 불 교문화를 보여 줄 수 있는 사찰로 복 원, 백제불교의 단면이라도 보여 줘 야 한다. 석조문화재의 산성비 피해 문제는 앞으로 심각한 상황을 도래할 수 있다. 무생물의 병리적 현상은 다 망가진 후에야 그 징후가 나타난다. 그렇다고 무조건 보호각 안에 가둘 것이냐? 이태영 박사는 오히려 보호 각이 석조문화재의 수명을 단축하는 지름길이라 말한다. 자외선은 석조문 화재 보존에 필수적인 영양소인바 이 를 차단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 앞으로 많은 연구자 들이 필히 수행 해야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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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유흥준 명지대 교수,  (우)범하스님 성보문화재연구원장
 


불교문화재의 활용 


불교문화재의 활용 문제에 있어서 가장 먼저 성보 박물관의 문제를 들 수 있다. 1987년 통도사가 처음으로 성보 박물관을 열고, 전문적인 큐레 이터와 전시시스템을 갖추고 모범적 인 운영을 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의 성보박물관은 재 기능을 하지 못 한다. 박물관은 1. 유물, 2. 건물, 3. 사람, 4. 재정의 내가지 필수 구성요건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 중 하나라도 부족 하면 박물관의 정상적 운영이 힘들 다. 불교계는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 를 인식하고 개선해야한다. 최근 템 플스테이가 자리를 잡으면서 불교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가 높아졌다. 이 또한 같은 프로그램의 반복보다는 불 교적 인문을 바탕으로 발전시켜 나가 야 한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올 레길, 둘레길도 불교적 이야기와 결 합하면 무궁무진한 발전을 할 수 있 는 요소로 본다. 어찌 보면 불교문화 유산의 활용은 불교의 사회적 참여와 연관하여 생각할 수 있다. 한 예로 독도문제가 심각할 때 암자하나 지어 스님을 상주하자는 아이디어가 있었 다. 이는 국제적 분쟁을 피하면서 실 효적 지배를 강화 할 수 있는 방편이 다. 불교문화의 활용이 불교자체의 위상 정립뿐만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 에 공헌하는 방안을 찾아야한다. 불 교는 유형문화재 복원도 중요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중의 아날로 그인 불교의 문화는 현대인의 잃어버 린 정신적 빈칸을 채울 수 있는 적절 한 대안이다. 또한 우리 불교의 뿌리 를 끊임없이 탐구, 발굴 정리하는 사 업이 범불교적으로 지속적으로 이루 어져야한다. 또한 중창불사에 마음을 쓰는 만큼 불교의 인문정신을 발굴하 고 연구하며, 대중을 교화하는데 마 음을 더 써야 한다. 문화적인 유산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이어갈 사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무엇보다 도 인재를 길러 소중 한 불교문화유 산을 잘 보전하고 활용하기를 바란 다. 



반성 그리고 대안은 


이어 토론에 나선 범하스님(성보문 화재연구원장)은 성보박물관 문제에 대해“1990년대 초부터 확산된 박물 관은 현재 34개에 이른다. 화재와 도 난으로부터 불교유물을 보호하기위해 정부의 지원과 사찰의 자체 부담으로 건립되었다. 몇 군데를 제외 하고는 절반이상의 박물관이 완공을 하고도 개관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개 관된 박물관도 제대로 관리를 못하는 실정이다. 유흥준교수가 지적했듯이 박물관 운영에는 사람과 재정이 필수 다. 그런데 전문학예직 한명도 두지 못하면서 박물관은 왜 건립했는지 되 묻고 싶다. 또한 막대한 국가 예산과 삼보 정재를 낭비한데 대하여 어떤 답변을 내 놓아야한다. 또한 관련자 는 어떤 책임을 질지 국민들에게 대 답해야 할 때라 생각한다. 더 이상의 박물관 건립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러한 심각한 상황을 정부와 종단이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중대한 사안이다.”고 말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은 사찰 문화유산 보수와 현 실태에 대한 대안으로 “첫째, 문화재 보수 및 수리가 영리목적을 가진 사설 건 축업체의 참여로 부실을 야기한다. 문화재 보수는 국가가 직영해야한다. 그래야 이익을 떠난 실질적인 보수가 이루어 질수 있다. 둘째로 연구, 교육 기관의 부재가 부실을 야기했다. 문 화재연구소에 조차 한국건축과나 불 교건축과가 별도로 없다. 이는 반드 시 별도의 부서로 독립되어 연구와 조사 기능을 수행해야한다. 또한 중 앙승가대학에 건축, 공예, 회화 등의 학과 신설이 필요하다. 셋째로, 문화 재 보수공사 기간이 너무 짧다. 문화 재 보수에 공사기간을 두는 것은 문 화재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 이다. 예상치 못하는 변수들이 있는 문화재 공사를 공사기간은 두지 않아 야 한다. 넷째로 예산의 회계연도 집 행을 탄력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회계 연도내 예산 집행으로 재료의 구매 및 공사의 시기등이 문화재의 특성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진다.”며 문화재 보수의 현실에 대해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 했다. 김영애 다할미디어 대표는 불교문 화유산의 활용방안에 대해 “디지털 시대의 불교문화 콘텐츠 개발이 중요 하다. 특히 전시 분야는 디지털 방식 과 스토리텔링 기법의 도입을 고려 해야한다. 살아있는 전시가 아니면 관람자의 시선을 끌 수 없다. 또한 문화유산의 복원도 디지털 시대에 맞 는 복원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일찍이 영국은 증강현실 기법을 사용 하여 과거의 영국의 모습을 볼 수 있 고, 웅장한 로마 문화 까지도 재현하 려한다. 지금은 스마트폰, 테블릿 PC 등 다양한 전자기기의 활용이 대세이 다. 문화의 복원도 시대에 따라가야 한다.”며 디지털 콘텐츠 개발과 활용 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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