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업을 녹이기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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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23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8-05-30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밀행사 탐방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박설라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리라이팅=박설라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20 12:21 조회 3,720회본문
허순자 교도
허순자 교도
저와 총지종의 만남은 35년 전으로 거 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서울에 살며 사 업을 하고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사업 이 자꾸만 기우는 중이었습니다. 제 모 습을 본 언니가 하얀색 염주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저는 그런 것 필요 없다며 단박에 거절했습니다. 불상도 아닌 이상한 액자 앞에서 염 주를 돌리고,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절 에 나가고, 일요일이면 언니의 그림자 도 볼 수 없었으니까요. 언니가 재차 염 주를 권했고, 마지못한 저는 염주를 받 아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얀 염주를 쥐는 순간, 눈물이 하염없이 흘 렀습니다. 눈물이 나는 것은 처음뿐만 이 아니었습니다. 그 후로도 염주를 잡 을 때마다 눈물샘이 터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사업은 회복되지 않아 여기 밀양으로 내려 올 수밖에 없었습 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언니와 함께 절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언니는 날 이 좋든, 궂든 새벽 네 시만 되면 저를 데 리러 왔습니다. 그 후로 저는 크고 작은 부처님의 가피를 받았습니다. 그 중 가 장 큰 것은 바로, 저희 아들의 공부입니 다. 저희 집안 친척 아이들은 모두 괜찮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대학교 3학년만 되 면 하나같이 질풍노도의 길에 빠져들었 습니다. 어쨌든 대학 졸업은 모두 무탈 하게 하긴 했으나 그간의 과정은 애끓 음 그 자체였습니다. 이제는 제 아들 차 례가 왔습니다.
아들 역시 대학 진학까 지는 나쁘지 않게 했습니다. 3학년이 다 가오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이건 업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이 업을 소멸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지 해야겠다는 각오가 섰습 니다. 새벽불공, 아침불공, 저녁불공 모 두 다 해보았지만 이걸로는 충분치 않 을 것 같았습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 했습니다. 아들하고 똑같이 공부를 하기로 결심 했습니다. 아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동 안 나는 서원당에서 아들의 공부 시간 에 맞추어 불공을 했습니다.
어쩐 일인 지 가족이나 주위 사람에게 말을 하면, 이 정성과 불공 공덕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것만 같아 입 한번 벙 긋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처럼 불공에 몰두했습니다.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는 그 순간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 자신과의 약속 을 지키며 불공했습니다. 그렇게 무사 히 졸업의 순간이 다가 올 때쯤 아들이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 다. 아들의 공부 의지가 기쁘면서도 겁 이 났습니다. 아들이 대학원 공부를 하 는 동안 저 역시도 고생을 해야 함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편 으로는, ‘아직 우리 집안의 업 소멸이 멀 었구나. 내가 그것을 끝까지 해내고 말 아야겠다.’ 라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그 렇게 아들과 함께 5년간을 더 투자했고, 아들은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공학박 사학위라는 게 아무리 빨라도, 7년에서 8년은 족히 걸리기 마련인데 아들은 5년 만에 학위를 따냈으니 모두들 놀랍다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하지만 그 5년이 제 게는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습니다. 가 족은 물론이거니와 주변 사람들 모두 제가 종교에 미친 것 같다면서 무슨 일 이냐고 붙들고 물을 때도 많았습니다.
제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거의 매일을 서원당에 앉아 염주만 돌렸으니까요. 제게 총지종을 소개시켜 준 언니마저도 정신 좀 차려야겠다고 말할 정도였습니 다. 그러나 저는 간절했습니다. 한 가지 업을 소멸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까닭 입니다. 총지종의 대중 불공시간은 보통 불공 시간과는 다른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 다. 일체교도, 제재난, 소구여의, 영일체 가 들어가는 만큼 총지종 전 교도가 모 두 공감하고, 마음이 모아지는 시간으 로 가장 큰 불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렇기에 이 시간을 나의 개인적인 시간 보다 더 값지게 여기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는 집안의 업을 소멸시키는 기간 동안 대중 불공시간을 칼같이 지킨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 때만큼은 우리 아들만 잘되라고 하는 불공은 아니었습니다.
여러 사람 과 함께 교감하고 화합하며, 가장 큰 불 공을 동참했다는 데에 개인적인 치유도 많이 받았습니다. 업의 소멸에는 각자 님의 도움도 컸습니다. 영문을 모르던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가타부타 말없이 저를 서원당까지 태워다주고, 또 데리 러 오는 일을 기꺼이 해주었습니다. 아 들의 학업에 마침표가 찍히고, 사람들 이 제 사연과 사정을 알게 될 즈음, 모든 이가 저를 대단하다고 추켜세웠지만 저 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대 단한 게 아니라, 하나의 업을 녹이기 위 해서는 응당 그만한 노력과 정성이 필 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집안에 안 좋은 일이 반복되어 일어나 는 상황에 놓여있으신가요? 저의 경험 이 보살님들께 용기를 드릴 수 있었으 면 좋겠습니다. 업을 소멸시키는 과정 은 쉽지 않지만, 업이 멸하고 나면 한결 더 편안하고 밝은 내일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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