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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떠나간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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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97호 발행인 발간일 2007-12-01 신문면수 11면 카테고리 종단 / 신행 서브카테고리 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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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2-16 11:40 조회 2,62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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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떠나간 자리

가을은 내 바로 앞에까지 다가 왔다.

멀리 단풍여행을 갈 필요도 없 다. 어디를 가든 모두 단풍이 들 었다. 길가의 가로수도 모두 모 두 예쁘게 물들었다. 아파트의 나무들도 화려한 축제의 의상으로 갈아입고 한껏 아름다운 자 태를 뽐내며 춤을 추고 있다. 이 들의 축제에 초대밤은 나는 이 벅찬순간 가슴이 막 뛴다. 나도 예쁜 옷으로 갈아 입고 그들과 함께 춤추고 싶다. 영화에 나오 는 멋진 무용수들처럼.

지난 밤 심술쟁이 바람이 지나 간 자리엔 전쟁터의 잔해인양 떨어진 낙엽만 쌓였다.

아침 일찍부터 아파트 경'비 아 저씨께서 마당의 낙엽을 깨끗이 쓸고 계셨다. 쓰레기와 함께 사 라져 가는 낙엽들을 보니 마치 내 가슴 밑바닥에 숨겨 두었던 조그만 나만의 소중한 것들이 쓸려 나가는 듯 가슴 한구석이 쓰리고 아프다. 가을이 내게서 떠나고 있다.

“아저씨 낙엽 쓸지 않으면 안돼요?” 하고 말씀 드렸다. 아저 씨는 ‘씩’ 웃으시며 다른 입주자 들이 지저분하다고 한단다. 아쉽 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으 니까…...

쌓여있는 낙엽을 한 움큼 집어 하늘에 날려본다. 흩날리는 낙엽 사이로 새하얀 솜사탕 같은 뭉 게구름이 내 눈에 들어온다. 쓰 리고 아팠던 가슴이 조금은 위로가 되는 것 같다. 내 머리 위 로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다. 올 려다 보니 지난 봄 일찍 꽃을 피 워 우아한 모습으로 우리들을 반하게 했던 그 목련이었다. 우 리들이 빨간색 노란색으로 화려 하게 물든 단풍들에게 찬사를 보내는 동안 그들은 얼마나 마 음 아팠을까? 내 머리 위로 떨어 진 낙엽은 내게 그들도 있음을 이렇게라도 알리고 싶었으리라.

‘그래 너희들이 있음으로 빨간 색 노란색이 더 빛을 발하게 하고 있구나. 너희들이야말로 묵묵 히 이 축제를 빛내 주고 있는 일 등 공신들이다.’

떨어진 목련 잎을 하나 주워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자연에서 의 갈색은 인간이 흉내 내지 못 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있다. 새로운 발견이다. 이 순간을 기 억하기 위해 목련 잎을 책갈피 에.구겨질세라 곱게 꽂아 놓았 다. 나 혼자 무슨 큰 발견이라도 한 듯… 내 아팠던 가슴이 다 나 아버렸다.

가을이 떠난 자리에 낙엽만 쌓 여 있다.

낙엽이 쌓인 길을 마냥 걷고 싶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라면 좋겠다,말하지 않아도 심심하지 않고 그저 옆에 있는 것만으로 도 마음 든든한, 그런 친구라면 더욱 좋겠다. 마음속으로 그 친 구들의 얼굴을 떠 올려 본다. 빨 리 친구에게 전화라도 걸어 보 자. 어디가 좋을까? 이왕이면 낙 엽이 포근하게 쌓인 곳이면 좋 겠지. 그곳에 아무도 없는 빈 나무의자가 있으면 좋겠다. 낙엽을 밟으며 천천히 걷다가 빈 의자 에 앉아 잠시 쉬어 가는 것도 좋 으리라.

이런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바 쁜 여정에서 잠시 쉬어가는 ‘여 백의 미’ 가 아니겠는가?

문득 어느 작가의 글이 생각 난다.

‘낙엽을 태우면 갓 볶아낸 커 피의 냄새가 난다’ 는 글이 커피 를 좋아하는 내게 깊이 각인이 된 것 같다. 정말 갓 볶아낸 커 피의 냄새가 나긴 나는 것일까? 작가의 상상력은 무궁무진 한 것 같다.

나도 낙엽을 모아 한번 태워 보고 싶다. 낙엽이 티면서 피어 오르는 연기가 얼마나 정겨울 까? 아마 맛있는 커피의 향도 틀 림없이 진하게 퍼지겠지. 상상만 해도 좋다. 낙엽을 태울 공간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 대신 커피 라도 진하게 타서 마셔야겠다.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생각에 잠겨 본다. 오늘 친구와 함께 낙 엽 쌓인 산길을 꼭 걸어야겠다. 아무도 밟지 않은 길이면 좋겠 다. 아니, 그냥 낙엽길이면 어디 라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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