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밀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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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95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7-10-01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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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18 07:09 조회 2,063회본문
티벳밀교(2)
10세기에 불교부흥을 바라는 기운이 일고 있는 가운데에서 링첸 삼포가 인도로부터 다시 밀교를 가져왔다. 그는 서북 인도의 카슈미르에 7년간 유학하고 인도밀교의 학장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 귀국 후 링첸삼포는 구게와 라닥을 중심으로 하는 서티벳 지방에 많은 사원을 건립하였으며 불교미술에도 많은 공헌을 했다.
11세기 중엽 후기밀교가 티벳에 전해져 몇개의 종파가 형성되었다. 그 가운데에 중요인물은 아티샤와 마루빠가 있다. 아티샤(982 ~ 1054)는 인도 벵갈 출신 의 국왕의 아들로서 재가자이면서 밀교 행자로서 깨달음을 얻었으며 29세에 정식으로 출가한 승려 이다. 그는 나란다와 비크라마쉴라 사원에서 불법을 연구한 저명한 학승으로서 단기간에 불교의 모든 것을 배우고 삼장법사의 칭호를 얻었다고 한다. 아티샤는 현교와 밀교를 함께 닦을 것을 강조했으며 저술로는 (보리도등론)을 남겼다. 그는 밀교 가운데에도 무상유가딴 뜨라를 최상의 것으로 쳤다. 티벳 에서는 파드마 삼바바가 전한 밀교를 ‘고 밀교’ 라 하고 아티샤 이후의 밀교를 ‘신밀교’라 한다. 아티샤의 가르침은 티벳인 제자 돔튼이 카담파로서 확립했지만 14세기 후반 경에 활약한 쭁가빠 (1357〜1419)가 연겔룩파에 되었다.
까큐파의 종조인 마루빠(1012〜1097)는 통역관인 도그미로부터 범어를 배웠는데 도그미 또한 헤바즈라 딴뜨라의 숙달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인도에 가서 저명한 성취자 마이트리빠와 나로 빠로부터 밀교의 실천법을 전수받고 귀국 후 처를 맞아 특이한 수행자로서 활약했다. 그는 무상유 가밀교, 특히 성적인 수행법을 설 한 반야 모 딴뜨라에 조예가 깊었다. 그의 제자로는 유명한 밀라 레빠가 있다.
티벳의 종교개 혁자로서 일컬어 지는 쭁가빠는 현교로부터 밀교에 이르는 과정을 체계화하여 현교의 공부를 다 마친 능력이 뛰어난자 만이 밀교의 수습 을 하도록 허락했다.
성적요소가 보여지는 행법의 대부분을 관념화 한 것도 그의 공적이다. 쫑카빠란 이름은 지금의 중국 청해성 쫑카 지방의 사람이라는 뜻이며 8세때 받은 불명 로산닥빠를 본명으로 한다. 쫑카빠는 어릴 때부터 밀교 에 관심이 많았으며 반야학과 구 사론 등 현교의 교학을 배우고 25 세에 정식으로 출가했다. 그는 아티샤를 최고의 스승으로 받들었으며 현교와 밀교의 양립을 주장하며 엄한 계율을 준수했던 부통(1290〜1364)의 사상을 계승했다. 그는 티벳 전역을 돌아다니며 고승과 밀교수행자들을 방문하고 대소승 및 밀교의 여러 가지 경전을 공부했다. 그는 문수보살로부터 직접 법을 들었다고 하며 평생을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돌아다니며 제자를 양성하고 저술에 힘썼다. 그의 대표작은(보리도차제론)과《배밀도차제론》의며 여롤 통하여 밀교와 현교의 체계화를 이루었다. 그의 만년에 그에 의해 시작된 겔룩파는 티벳 최대의 종파가 되었으며 17세기에는 달라이 라마 5세가 나와 티벳의 종교와 정치를 장악했고 오늘날까지도 그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 티벳 망명 정부를 이끌고 있는 지금의 달라이 라마는 14세이다.
티벳밀교의 후전기에는 밀교가 거의 대세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에 현재까지 세력을 떨치고 있는 종파는 달라이 라마를 배출한 겔룩파를 비롯하여 닝마파, 카담파, 샤카파, 꺄뀨파 등이 있다.
〈화령/철학박사 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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