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의〈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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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79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3-02-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지혜의 눈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태원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칼럼리스트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3-02-07 14:17 조회 1,577회본문
동양 고전과 현대 사상과의 기록
관계·생성론적 관점 불교와 닮아
신영복 선생님은 20여년의 장기 복역을 치르고 출소한 후 성공회대에서 주로 동양고전을 강의하면서 여러 권의 책을 펴낸 분입니다. 서예에도 일가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는데 특히 한글 서예에서 독창적인 경지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 서체를 신영복체라고 하는데 한국인이면 누구나 보았을 ‘처음처럼’이 바로 그 ‘신영복체’입니다. 그 신영복 선생님의 동양고전에 대한 강의 내용을 담은 책이 『강의』와 『담론』입니다.
『강의』는 초판이 2004년 12월에 나왔고 2006년까지 13쇄를 찍었고, 『담론』은 2015년 4월에 초판이 나왔고 2022년까지 무려 38쇄를 찍었습니다. 마지막 저서라고 할 『담론』은 1, 2부로 나뉘어 있고 1부는 『강의』의 내용을 좀 요약하고 2부는 자신의 경험담을 중심으로 엮었습니다. 그래서 1부는 에세이(essay)에 해당하고 2부는 미셀러니(miscellany)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강의』와 『담론』은 내용에 있어서 차이가 있습니다. 강의에서는 없지만 『담론』에서는 동양 고전과 현대 사상과의 연관성을 추가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서양 사상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중세 기독교 신학에 수용되고 이데아의 자리에 신(神)을 놓았다면 근대에는 신 대신 인간을 설정하였다고 합니다. 현실을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으로 본 플라톤의 이원론(二元論)적 세계관은 중세 기독교 신학에 수용되어 지상과 천국의 이분법적인 세계관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근대사회에서는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신의 자리에 놓고, 그 인간에 의한 무한한 발전의 낙관적 관점을 주장하였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인간관은 계몽주의의 토대를 이루었고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를 활짝 열었던 것이죠.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저질렀다고 생각할 수 없는 참혹한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낙관적이고 진보적인 인간관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전쟁의 당사자들이 정치적 권력을 장악한 채로 남아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1968년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에 이르는 전후세대에 의해 “68혁명”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세계사적 대변동을 사상적으로 뒷받침하는 일련의 철학자들이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사람들이 들뢰즈, 데리다, 푸코 등등입니다. 서양 철학은 궁극적 물질로서의 원자를 상정하듯 “존재”로서의 인간을 상정하고 존재론을 전개해 나갔다고 합니다. 이러한 관점과 달리 동아시아의 인간관은 “관계”론적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입장이지요. 그런데 앞서 언급한 서양의 현대 철학자들이 존재를 넘어서서 관계로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담론에는 비교적 최근의 내용인 움베르토 마투라나의 생성(生成)주의적 세계관으로 번역되는 오토 포이에시스auto poiesis까지 담겨있습니다. 생물학자인 마투라나는 자신의 제자이자 인지학자 프란시스코 바렐리와 함께 새로운 관점으로 생명의 진화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담론에는 이렇게 춘추전국시대의 주요 사상의 내용과 그와 관련된다고 여기는 현대사상이 함께 언급되고 있지만 불교는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불교는 한나라때 와서야 비로소 중국에 전파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끊임없는 변화를 전제로 세계를 관계론적이고 생성론적 관점으로 파악하는 것은 불교와 닮아있습니다. 무상(無常)이란 이 세계가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으로 보는 것이고 연기(緣起)는 생성론적 관점으로 재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현대 물리학의 양자역학의 내용과 불교의 내용의 유사성을 보면 창조론과 현대 과학을 엮으려는 억지스러움이 없습니다. 천체물리학에서 다루는 내용도 불교와 매우 유사한 논리를 바탕으로 전개합니다.
현대사회는 과학적 논리위에 세워진 구조물입니다. 과학의 발전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계관을 가져올 것입니다. 기존의 종교는 벌써 종파에 상관없이 낡은 과학적 인식체계위에 서있기 때문에 그 토대가 무너지면 존립할 수 없습니다. 기왕의 종교가 과학이 열어주는 새로운 세계관을 적극 수용할 것인지 아니면 소멸할 것인지가 금세계 안에 판명날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기성 종교에서 불교는 가장 오래된 종교입니다. 그만큼 낡았다고 볼 수 있으나 역으로 여러 시대에 걸쳐 검증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세기 이후 과학이 발달하면서 그 존립기반이 약화되는 다른 종교들과는 달리 불교는 오히려 존립기반이 덜 약화되거나 역으로 강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문제는 일부 불교 승려의 골프외유같은 일탈행위에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매우 다양한 종교와 사상이 뒤엉켜 전개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오랜 방황을 거쳐 비교적 늦게 불교적 세계관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 불교는 그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자문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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