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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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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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02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08-05-05 신문면수 2면 카테고리 종단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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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19 10:02 조회 1,70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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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날의 각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색신으로 몸을 나투시어 우리들에게 지혜와 자비의 광 명을 드리우고 열반에 드신지 어언 2552년이 흘렀다. 이제 불교는 아시아의 종 교를 벗어나 세계인의 종교가 되었다. 이것은 불교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지닌 진리란 것이 수많은 지혜 있는 사람들에게 인정된 결과이다. 특 히 과학적 사고와 합리성을 존중하는 유럽 선진국에서의 불교의 확산은 앞으로 인류가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어떤 종교가 필요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 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부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중생들의 탐진치는 날로 치성하고 이와 더불어 우리의 삶은 더욱 각박해져 가고 있다. 과학과 경제의 눈 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우리 중생들이 아직도 불행을 호소하고 있는 현실은 우 리의 행복은 결코 물질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우 리가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고 아무리 물질적 풍요를 추구해 봐야 행복은 쉽사 리 오지 않는다. 백만대군을 격파하는 것보다 자기 마음 하나 잘 다스리는 것이 더욱 훌륭하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새삼 명심해야 한다.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의 광명이 더욱 확산되어 평화로운 세계가 되도록 우리 불자들이 앞장서야 한다.

사회가 이렇게 혼탁하고 살기 어려운 지금이야말로 우리 불자들의 역할이 더 욱 중요하다. 황폐하고 삭막해져 가는 이 사회를 구하고 지구를 아름답게 가꾸 는 것은 자비와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불자들의 몫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처 님의 가르침에 입각하여 각자의 마음을 다잡으면서 물욕을 다스리는 것은 물론 이고 대승보살의 정신으로 이웃을 돌볼 줄 아는 진정한 불자로 거듭나야 한다. 이제 세계는 한 울타리이다. 무연대자 동체대비의 마음으 로 소외되고 억압받는 많은 이웃을 돌아보며 지금 이 순간, 바로 이곳을 불국정 토로 만들겠다는 새로운 각오를 부처님 오신날을 계기로 되새겨보자



종단의 변화와 


변화의 의미를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사물의 형태와 모양, 바탕; 성질 같은 것이 변하여 달라지는 것’ 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물질 뿐만 아니라 여기에 의식과 사고방식, 절차, 제도, 의식등 비물질적인 것도 포함이 될 것이 다. 그 변화에 있어서 전체가 될 수도 있고, 부분적인 것일 수도 있다. 급격하 게 변화하는 경우도 있고 서서히 변화하는 일도 있다. 또 옛것을 완전히 없애고 새로운 것을 내세우는 것일 수도 있고 모방을 통해 변화하는 경우도 있다. 모방 도 재창조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시도, 새로운 변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모방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방 속에서 또다른 발전이 있기 때문이다. 옛 것에서 출발하여 더욱 새로운 것이 가미가 되어 발전을 거듭하는 변화도 있다. 소수의 특정집단에서 주도한 변화, 대다수가 원하는 변화, 위에서 아래로의 변 화, 반대로 아래에서 위로의 변화 등 그 경우의 수는 참으로 다양하다. 정답은 아니지만 아래에서 위로의 변화, 대다수가 원하는 변화, 옛것에서 하나 하나 고 쳐나가는 변화.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대립과 갈 등의 양극화를 최소화할 수 있는 변화의 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 지가 않다. 그러한 변화는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는다. 설사 온다하더라도 많은 시간과 오랜 세월을 필요로 한다. 아니 영원히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오늘날의 변화는 대부분 과거의 것을 부정하고 뒤엎는 것이 대세다. 즉 개혁 이 정답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나 조직이나 단체가 대다수의 구성원 들이 원하지 않는 변화, 개혁은 성공하기 어렵다. 모두가 원하는 변화라해서 성 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변화는 어려운 것이다. 어렵다고 방치해둘 수는 없다. 어떤 형태로든 변화는 모색해야 한다. 변화를 위한 방안을 제안한다 면 온고지이신을 강조하고 싶다. 과거 속에서 미래를 찾는 노력, 과거의 것과 공존하려는 자세, 즉 온고이지신 . 과거의 것에서 새로 운 것을 만들어 나갈때 모든 구성원으로부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그 토대 위에서 변화는 성공을 확신할 수 있다. 온고이지신 의 자세로 종단 의 변화를 꾀하였으면 한다. 지금까지 행하여온 변화의 대부분은 바로 종조님 께서 일궈놓으신 것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한국불교사에서 최초로 양부만다라 를 봉안한 것도 이미 종조님께서 설파하셨던 부분이다. 1972년 10월과 1973년 1 월에 준제관음상 과 현도만다라를 구상하셨건 것은 좋은 변화의 예 라 할 수 있다. 생전에 수많은 사상 과 제도, 의궤를 창안하시고 폐지와 채택을 거듭하시며 변화를 꾀하였던 것이다. 종조님은 가셔서도 그 변화는 아 직도 진행형에 있다. 종조님과 종단의 역사, 그 속에서 변화를 찾고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종조님과 종단 역사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과거는 현재 의 자산 이요, 미래의 보고 이다. 마땅히 과거를 연구하는 속에서 미 래에 대한 청사진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새의 양날개와 수레의 두바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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