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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자진언이 마음을 바로 잡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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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99호 발행인 발간일 2008-02-01 신문면수 12면 카테고리 기획2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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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윤우채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윤우채 기자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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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2-16 15:11 조회 3,20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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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자진언이 마음을 바로 잡아 주었습니다”
진언행자의 가족을 찾아서 (대전 만보사 민순분 교도)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고 곧바로 도리천에 올라가 부처님을 낳고 이레만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설법했다.〈부모은중경〉,〈목 련경〉,〈우란분경〉,〈심지관경〉같은 불교경전 중에는 효행을 강 조한 가르침을 많이 볼 수 있다. 유교경전인〈효경〉에서도 ‘효는 백행 의 근본’ 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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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회갑연에서


불자로서 신심이 돈독하고 아름 다운 효행으로 귀감이 되고 있는 이가 있다는 제보가 있어 대전 만보사로 향했다.

만보사가 위치한 곳은 대사동. 큰 절이 있었던 동리였을까. 절이 들어 앉아 있는 곳은 보문산 이다. ‘보문’은 ‘보문시현 ’한다는 관세음보살과 관련있는 말이 아니던가. 절의 현판은 또 만보사다.

‘부처님 진리의 말씀인 무진보배가 가 득 차 있다’는 뜻일 게고.

아무튼 불연 이 깊은 곳이라는 생각을 하며 서원당을 들어 섰다. 이 내 씩씩한 음성으로 인사를 건네는 이 가 있다. 만보사 신정회장 민 순분 보 살이다.

민순분(65, 법명: 불국화) 보살은 30 년 가까이 흘몸으로 병든 시어머니를 모시며 어린 4남매를 훌륭히 키워낸 것이 알려져 지난 ’ 95년 효행상을 받 았다. 지금은 효도회 ’ 대전 동구지부장 을 맡아 대소사에서 활발한 봉사활동 을’ 펼치며 효행을 실천하고 있다.

민순분 보살은 1966년 7남매의 장남 이었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한 후, 시 부모와 어린 시동생, 시누이 자녀들까 지 열 명이나 되는 식구들의 뒷바라지 를 하며 살았다. 고된 일 때문이었는 지 고부간 갈등도 심했다고 한다. 설 상가 상으로 철도 공무원이었던 남편이  82년에 교통사고로 돌아갔다. 큰 딸이 중 2였고, 막내가 막 초등학교에 입학 했을 때였다.

청천벽력같은 일이 있고 나서 근 일 년여간을 말할 수 없는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고 민 보살은 말했다. 여린 새 순 같은 아이들이 제대로 커갈지, 잘못되지나 않을지, 어떻게 부양할 지가 막막하기만 했다. 밤에 잠을 못 이룰 때면 불보살님을 부르며 애원했다.




진언수행으로 일상사 달라져


어린 자식들을 보호해야한다는 모성 애에서 였을까. 민 보살은 눈물을 보 일 수도 연약해 보여서도 안 되었다. 그때부터는 이미 가슴 따듯한 어머니 가 아닌 한 집안의 엄한 가장의 모습 이었다. 다만 부처님 앞에서는 다시 연약한 여자가 됐다. 그 어련움을 부 처님께는 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민 보살은 그렇게 남모르게 울며 절 엘 다니고 살게 해 달라고 매달렸다. 여러 해를 현교사찰을 다니며 기도정 진을 한 터이지만 너무나 큰 시련이었 던지 가슴 속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 았다. 그때 진언수행을 만났다. 앞 집 보살이 만보사엘 가보라고 권하더란다.

“남편이 그렇게 되고 나서 밤에 불 을 끄고 잠을 못 잤습니다. 다른 일 이 또 생기지나 않을까 공포감마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옴 마니 반메 훔’을 하면서 무서운게 사라졌습니 다. 매사에 활기차고 대담해 지더라 구요”

진언 수행을 하면서부터 일상사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다시 기운을 차리 게 되고, 병든 시어머니와 어린 자식 들을 위해 억척스럽게 일을 하며 생계 를 꾸려 나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틈 을 내 새벽이나 한 밤 중에라도 서원 당을 찾아 가 정진하는 것도 잊지 않 았다.

“살기 위해서 많은 일을 했어요. 예 비군 훈련장에서 국수도 팔고 보건전 문대 앞에서 살던 방을 쪼개 하숙집도 했습니다. 자식들에다가 여러 명의 학 생들 밥해 주고 빨래해 주고 연탄나르 고... 하루 3시간도 안 자고 살았어요. 그렇게 밥 먹고 살았습니다.”




스승님 가르침에 위로와 희망


민순분 보살이 1983년 입교한 이후 지금까지 25년간 만보사와의 인연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스승들 과의 만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초창 기 삼성동의 단칸 서원당에서 시작해 지금의 만보사를 일궈 냈던 총지화 스 승님을 비롯해 법공, 지성 스승님들의 가르침에서 큰 위로와 희망을 전해 받 았다.

“그저 살려는 생각에 처음 만보사를 찾아 왔을 당시엔 총지화 스승님이 계 셨어요. 다른 말씀없이 ‘시어머니께 참회하라’고만 하셨습니다. 설법하실 때면 모든 말씀이 저를 꾸짖는 소리로 들리더라구요. 그때부터 지성으로 시 어머니께 참회하고 남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49일 참회불공을 올렸습니 다. 회향하는 날 꿈에 돌아간 남편이 다니던 회사직원들과 나타나 환하게 웃으며 ‘곧 발령난다’하고는 사라지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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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사 서원당에서 활짝 웃는 민순분 보살.


그 날 이후 모든 과보가 내 지은 업 이라는 사쇠을 깨닫게 되었고, 시어머 니도 극진하게 모실 수 있었다 한다.

민순분 보살은 그동안 겪었을 신산 고초와 애환 그리고 기쁨을 이렇게 말 하곤 환하게 웃었다.

“살아 온 것을 돌아보면 눈에선 눈 물이 나는데 입에선 웃음이 납니다. 불공공덕인지 조상님들께서 도우신 건 지 어려운 일들을 잘 지날 수 있었고 4남매도 모두 예쁘게 자라줬잖아요. 부처님의 가르침과 진언 수행이 제 마 음을 바로 잡아 주었습니다. 부처님 법대로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종당엔 웃을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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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보편집팀, 만보사 통신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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