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심으로 정성 쏟으면 못 이룰게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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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01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08-04-01 신문면수 12면 카테고리 기획 II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윤우채페이지 정보
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19 09:31 조회 1,774회본문
"직심으로 정성 쏟으면 못 이룰게 없지요”
남은 바램은 열반 하는 것
훈가피라는 말이 있다. 부처님의 덕과 가피가 알 듯 모를 듯 은은하고 그윽하게 내 리쬐어 보호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말하려고 하는 사람이 그 명훈가 피의 덕을 고스란히 받으며 삶을 누리 고 있다고 해도 될는지.
부처님 가피 충만한 삶
권오남(법명: 길수인, 74, 신정회 대 구경북 지회장) 보살. 슬하에 3남 3녀 를 두고 부부가 해로해 오년 전에 금 혼식을 올렸다. 재물복도 있어 포항서 세금 제일 많이 내는 사람 중 하나라 고 한다. 평생 크게 고난 겪은 바도 없 고. 이만하면 부처님 가피가 충만했다 :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권오남 보살은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서원당에 앉아 있다. 누구보다도 먼저 '초를 켜고 향을 올리고 부처님께 공양 한다. 이렇게 푸른 새벽부터 시방에 상주하는 부처님 가피력을 받을 준비 를 잘 하고 하루를 기다리고 있으니 어찌보면 권 보살이 가피를 일구어 냈. 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권오남 보살은 경북 안강의 안동 권 씨 집성촌에서 나고 자라 열 아홉 되 던 해 각자님(최홍수. 78)과 혼인했다. 예법을 중시하던 가풍 탓에 집안에서 정해준 대로 시집을 갔지만 빈한한 살 림에 초년 고생을 했다. 다행히 각자 님의 성품이 온후하고 자상해 화목하 게 살 수 있었고 덕분에 가세는 금방 일어날 수 있었다.
지금은 재래식 시장으로 사양길로 접어든 분위기지만 한 오륙십년 전 포 항 죽도시장은 전국의 웬만한 거간꾼 들이라면 모두 집합하는 시장이었다. 거기서 큰 돈을 벌었다. 각자님은 해 산물 가공공장을 차려 일본 등지로 수 출도 했다. 몸도 건강하고 사랑스런 아이들도 자라고 더 바랄 것 없는 날 들이 지나갔다.
호사다마였는지 넷째 아 이를 출산한 이후 별 이유없이 몸에 이상이 왔다. 급기야는 숨이 차서 대 여섯 걸음도 못 걸을 지경이 됐고, 우 울증마저 생겼다. 치병을 위해 사방팔 방을 다녀 보았지만 속수무책이었다.
60년대는 포항에도 도심포교당이 생기면서 대중불교 운동이 막 일어날 무 렵이었다. 권 오남 보살도 여성불교회 관서 법문도 많이 듣고 절에도 여러 곳 찾아 다녔다. 그러나 병에 차도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외사촌 시누이의 권고로 당시 진각종 심인당을 찾아 진언수행 을 해나갔다. 몸이 차츰 나아졌다. 삼 년 정도가 지나니 병증은 씻은 듯 없 어 졌고, 그 뒤 두 아이를 더 가질 수 있었다.
"살아 갈수록 이 법이 참 좋구나 하는 걸 절감합니다. 육자진언이 기도 공덕과 성취가 참 빠르답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의 본심인 미묘하고 밝고 큰 말씀이라고 안합니까.”
그 이후 40여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 갔다. 포항에도 총지종 서원당이 문을 열었다.
총기 원년에 포항선교부가 개설되 고, 학교 부지를 매입해 수인사 사원 이 창건됐다. 수인사는 전 종령 록정 대종사, 복지화, 원봉, 지선행 스승 등 이 교화했던 유서 깊은 곳으로 학생회 법회가 대외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등 교도들의 신행활동이 활발한 사원이었 다.
“직심으로 하면 다 성취됩니다 본체가 바르면 그 그림자도 바르 듯이 무슨 일이든 바르고 밝은 마음으 로 열심히 정성을 기울이면 못 이룰 게 없지요”
권 오남 보살이 수인사 사력 얘기를 하던 중 복지화 스승님 말을 하며 눈 물바람이다. 그만큼 감사함이 사무친 것이리라.
수인사는 지난 해 연건평 380평 지 상 4층의 종단에서 가장 미려한 전통 한옥양식 사찰을 건립했다. 물론 중창 과정에서 오랫동안 사찰 회장직을 수 행한 권 보살의 역할이 컸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저는 스승님 복도 참 많습니다. 종 단의 큰 스승님들이 두루 거쳐 가셨기 에 좋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습니 다. 게다가 부처님께서 지공 정사님과 지회심 전수님같은 열정적인 스승님을 보내 주셔서 이 좋은 전당을 만들 수 있었으니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안인바라밀 닦는 절 부처님은 우리가 사논 사바세계를 감인토라 했다. ‘견디고 참아 야 하는’ 세계라는 뜻이다. 감 - 인 , ‘견디고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세상을 건널 수 있다고 했다. 그건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닌 자기가 자신을 잘 타이르고 위로하며 세상살 이를 하라는 말일 게다. 그리고 그것 이 성숙되면 참으면서도 평안을 잃지 않는 안인 바라밀이 되 는 것이고. 수인사의 사명도 안인바라밀을 잘 수행하라는 말 과 일맥상통한다. 그래서인지 수인사 주교 지공 스승님도 평소 육바라밀 중 ‘인욕과 보시’를 강조한 다고한다.
권 오남 보살은 우리 스승님이 부임 삼년 만에 대 전당을 건립할 만큼 열 정적이고 설법도 제일간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훌륭한 스승님 말씀이 입시에 치이 고 감정이 메말라 가는 젊은 이들에게 도 전해지고 많은 교도들도 제도 해탈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좋은 수행처가 다시 창건 초기 때처럼 아이 들과 보살님, 각자님들로 북적이길 기 원해 봅니다.”
정진의 고삐 늦추지 않고
권 오남 보살은 젊을 적엔 밤늦도록 시장에서 일을 하고 녹초가 돼서도 꼭 서원당에 갈 정도로 정진력이 대단했 다. 그때처럼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아직 정진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한 가지 바램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 은혜로 20여명의 식구들이 건강하고 편안하게 지내 왔습니다. 더 많은 것 바라지 않아요. 다만 열반 잘 하고 싶습니다.”
모든 바램을 이루고 자기 집에서 일 생을 편안히 마치는 고종명(효이과 불교의 열반은 다르다. 열반은 그저 편안히 돌아가는 것만이 아닌 ‘모든 번뇌의 불이 다 소멸된 무여적정 한 자리로 돌아감’을 말한다. 부 처님도 생노병사 사고에서 벗어나고자 출가를 감행하지 않았던가. 그 런 면에서 어쩌면 권 보살의 남은 바 램은 제일 큰 바램일 수도 있다.
생이 다할 때까지 부처님과 스승님 의 말씀을 지표 삼아 오로지 인욕 정 진하겠다는 권 오남 보살같으면 그 제 일 큰 바램도 이루어 질 것이라는 생 각이 든다. 부처님1명훈가피력’으로.
- 윤우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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