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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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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01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08-04-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세계불교/건강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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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19 08:13 조회 1,25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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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세계속의 불교 (9회)

미얀마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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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사후 불교를 세계에 널리 퍼뜨리눈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 람은 기원전 3세기 인도 마우리아 왕 국의 아쇼카 왕이었다. 그는 잔인한 정복전쟁의 영웅이었으나 살육의 참 혹함을 깨닫고 불교에 귀의한다. 이 어 불교를 국교로 삼아 통치이념화 하면서 여러 나라에 적극적으로 포교활동을 한다. 아쇼카 왕은 아홉 차례나 포교사를 파견했다.

여덟 번째로 파견한 소나 스님은 웃따라 스님과 함께 ‘황금의 땅(수와 르나부미)’으로 일컬어지던 현재의 미얀가에 도착했다. 미얀가에서 불교 가 시작된 것은 이때부터이다.

전설에 따르면 당시 미얀가에서는 궁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나기만 하면 바다에 있는 공포의 여신이 죽여 버 렸다고 한다. 그래서 두 스님이 나타 나자 사람들은 공포의 여신의 친구 라고 여겨 무장을 하고 달려들었다. 두 스님은 “우리는 여신의 친구가 아 니고 불법을 열심히 수행하는 수행 자입니다”라고 했다. 그때 공포의 여 신이 부하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그러자 스님은 이들의 두 배나 되 는 수의 신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여 신은 ‘이 나라는 필시 이 사람들의 ,소유이구나’'하고 생각하고는 하늘로 올라갔다. 두 스님은 그 자리에 성을 만들고〈범망경〉을 설했다. 이로써 6만 명이 불법을 믿기 시작했 고 수천 명이 출가를 했다고 한다. 믿기는 어렵지만 또 다른 전설에 따 르면 붓다 자신이 생전에 미얀마 이곳저곳을 돌며 설법했다고도 한다. 미얀마에서 불교는 하나의 종교라기 보다 생활 그 자체이다. 미얀과의 불 교는 소승불교의 한 종파인 상좌불교이다. ‘소승’이란 ‘혼자 타고 가는 작은 수레’ 란 뜻으로 개인의 은사원, 고려의 팔만대장경에 버금 구원만을 목적으로 함을 비유하여 나타낸 말이다. 이는 대중의 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대승 불교에서 그들 을 비하하여 붙여준 이름이기 때문 에 소승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남방 불교 혹은 상좌부 불교로 불려지는 것을 더 선호한다.

소승불교는 스리랑카, 미얀마, 타 이 등으로 전파되었는데, 한국을 비 롯한 동아시아에 전파된 대승불교에 비해 계율이 엄격하고 보수적 성향이 강하며 경전의 원본에 충실한 불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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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피산 위의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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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불교발전

상좌불교가 융성하게 된 시기는 11 세기 초 바간왕조의 - 아나우라타왕 때이다. 아나우라타 왕은 미얀마 지역의 대부분을 통일시 키고 몬족이 세운 국가인 타톤을 공격했는데, 그 이유는 타톤의 왕이었던 마누하에게 팔리어 경전을 보내달 라고 했다가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아나우라타 왕은 1057년에 타톤을 멸 망시키고 팔리어 경전과 주석서들을 가져왔고 이때부터 대승불교의 범어 경전 대신 팔리어 경전을 통일적으로 사용하게 함으로써 미얀마에 본격적 으로 상좌불교를 전파했다.

경전을 기록한 팔리어는 미얀마의 언어로 정착되었고 팔리어 경전인 담마가 법을 대신하게 되었 다. 전에는 왕의 통치권이 왕실 주변 으로 국한되어 있었으나 불교를 나 라 전역에 보급함으로써 통치권도 확대되었다. 그 이후 불교는 미얀마 인들의 생활 전반에 걸쳐 큰 영향력 을 미치게 되었고 오늘날 전 인구의 89%가 넘는 사람들이 불교 신자인, 명실상부한 불교 국가가 되었다.

광활한 평원에 펼쳐진 2,700여 개 의 탑들, 100미터가 넘는 거대한 황 금 대탑, 물위의 호수에 세워진 수많 가는 석장경, 탑으로 오르는 기나긴 회랑들, 아침마다 탁발에 나서는 스 님들의 장엄한 모습을 보면 미얀마 가 불국토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미얀마는 국토 전체가 거대한 탑 (파)의 밭이다. 번잡한 도시에서 한 적한 시골,험한 산 속, 깊은 동굴까 지 탑은 어느 곳에나 있다. 심지어 물로 가득 찬 호수 위에서도 거대한 탑군들은 예외 없이 나타난다. 미얀 마 시민들의 삶은 소박하지만 살아 있는 경전이다. 생일, 결혼기념일, 명 절등 기념일마다 병원과 양로원, 보 육원을 돌며 보시를 하고 새벽마다 탁발하는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린다.


미얀마 스님의 승원생활 

미얀마 풍습에 따르면 남자 아이들 은 9〜13세에 신퓨 의식을 치르게 된다. 신퓨는 며칠 또는 몇 주간 사원에서 수련을 쌓으며 승려 생활을 체험하는 것이다. 아이는 왕 자처럼 비단옷을 입고 포좌에 실려 사원으로 간다.

머리를 깎고 나면 머리카락은 흰보 자기에 싸서 인근 파고다 아래에 묻 는다. 고승이 건네는 바리를 받는 것 으로 의식은 끝이 나고 아이는 승려 생활에 들어간다. 여자 아이들은 이 시기에 귀를 뚫는 ‘나트윈’ 을 치르고 아이의 단계를 벗어나게 된다.

신퓨 의식을 치른 이후에도 미얀가 인들은 머리를 깎고 승려생활을 반 복함으로써 불자로서의 자세와 예절 을 익힌다. 이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그대로 승려가 되어 살기도 한다.

이 의식을 거치고 승원 생활을 한후에야 비로소 독립된 젊은이로 인 정되어 결혼의 자격이 갖추어진다고 하는 것에서 신퓨 의식이 원래 성년 식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미얀마 불 교도의 대다수가 승려가 되어 승원 에서 일정 기간 생활을 하는데 이는 신퓨라는 일종의 성인식을 치르는 것이다. 이 행사의 정점에 가서 두발 같은 온갖 장식품이 벗겨지고 가사 가 입혀진다.

붓다가 한 것처럼 모든 세속적 욕 망과 쾌락적 삶을 포기하고 열반의 경지를 구득하겠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부모가 기증한 8가지 승원생활의 필수품 하의 가사’ 상의 가사 1 망토 가사 탁발 그릇 - 면 도칼 ’ 바느질 도구- 허리끈 물여과기을 받아 승원에 들어간다. 승원에서 수련승으로서 10계를 준수할 것을 서 약하면 . 모든 식을 마치게 된다. 그리 고 승원에 머무는 동안 부모에게 의 지하지 않고 승려로서 탁발 구걸의 생활을 해야한다.

좌선 경행 일상생활 관찰 하기가 주된 명 상법으로, 그 중에서 일상생활 관찰 하기는 유용한 수행 방편이다..

미얀마 스님의 하루일과 

하루 일과는 아침 3시 30분에 일어 나 세면을 하고, 4시에서 6시에 사이 에 경행 및 좌선, 6시부터 7시 사이 에 아침 공양을 하는데, 간단한 죽 종류가 마련된다. 7시부터 10시 30분 까지 경행 및 좌선 수행을 각자 법당 에서 행한다. 10시 30분부터 12사이 점심 공양을 한다,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상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위 한 상이 구분되어 마련되는데, 아주 풍성한 상차림이다.

이후는 오후불식으로 간 단한 음료 이외에 일체 음식을 먹을 수 없다. 12시부터 5시까지 경행 및 좌선을 하고, 5시부터 6시 30분까지 법문 및 음료수를 마실 수 있는 시간 이 있다. 6시 30분부터 10시까지 경 행 및 좌선을 하고, 10시 이후에는 자율 정진을 하게 된다.


- 지정 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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