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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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04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08-07-07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설법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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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0 04:17 조회 2,375회본문
복짓는 사람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서 많은 대중 을 위해 법을 설하고 계실 때였다. 그 자리에는 아니룻다도 있었는데 그는 설법 도중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부 처님은 설법이 끝난 뒤 아니룻다를 따 로 불러 말씀하셨다.으
“아니룻다여, 너는 어째서 집을 나와 도를 배우느냐?”
“생로병사와 근심 걱정 괴로움이 싫 어 그것을 버리려고 집을 나왔습니다.” , “그런데 너는 설법을 하고 있는 자 리에서 졸고 있으니 어떻게 된 일이 냐?”
아니뭇다는 곧 자기 허물을 뉘우치 고 꿇어 않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제부터는 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는 부처님 앞에서 졸지 않겠습니다.” 이때부터 아니뭇다는 밤 에도 자지 않고 뜬 눈으로 계속 정진 하다가 마침내 눈병이 나고 말았다. 부처님은 그에게 타이르셨다.
“아니룻다여, 너무 애쓰면 조바심과 어울리고 너무 게으르면 번뇌와 어울 리게 된다. 너는 그 중간을 취하도록 하여라.”
그러나 아니룻다는 전에 부처님 앞 에서 다시는 졸지 않겠다고 맹세한 일 을 상기하면서 타이름을 들으려고 하 지 않았다,아니룻다’의 눈병이 날로 심해진 것을 보시고 부처님은 의사 자 바카에게 아니룻다를 치료해 주도록 당부하셨다. 아니룻다의 증세를 살펴 본 자바카는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아니룻다님이 잠을 좀 자면서 눈을 쉰다면 치료할 수 있겠습니다만, 통 눈 을 붙이려고 하지 않으니 큰 일입니다.” 부처님은 다시 아니룻다를 불러 말 씀하셨다.
“아니룻다여, 잠을 좀 자거라 중생 의 육신은 먹지 않으면 죽는 법이다. 눈은 잠으로 먹이를 삼고, 귀는 소리 로 먹이를 삼으며, 코는 냄새로, 혀는 맛으로, '몸은 감촉으로, 생각은 현상으 로 먹이를 삼는다. 그리고 여래는 열 반으로 먹이를 삼는다.”
아니뭇다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러면 열반은 무엇으로 먹이를 삼 습니끼'?”
“열반은 게으르지 않는 것으로 먹이 를 삼는다.”
“부처님께서는 눈은 잠으로 먹이를 삼는다고 말씀하시지만 저는 차마 잘 수 없습니다.” 아니룻다의 눈은 마침 내 앞을 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러 나 애써 정진한 끝에 마음의 눈이 열 리게 되었다. 육안을 잃어버린 아니룻 다의 일상 생활은 말할 수 없이 불편 하였다. 어느 날 해진 옷을 깁기 위해 바늘귀를 꿰려 하였으나 꿸 수가 없었. 다. 그는 혼자말로 ‘세상에서 복을 지 으려는 사람은 나를 위해 바늘귀를 좀 꿰어 주었으면 좋겠네.’라고 하였다.
이때 누군가 그의 손에서 바늘과 실 을 받아 해진 옷을 기워 준 사람이 있 었다. 그 사람이 부처님인 것을 알고 아니룻다는 깜짝 놀랐다.
“아니, 부처님께서는 그 위에 또 무 슨 복을 지을 일이 있으십니까?”
“아니룻다여, 이 세상에서 복을 지으 려는 사람 중에 나보다 더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마하면 나는 여섯 가 지 법에 만족할 줄'모르기 때문이다.
여섯 가지 법이란, 보시와 교훈과 인 욕과 설법과 중생 제도와 더 없는 바 른 도를 구함이다.”
아니릇다는 말했다.
“여래의 몸은 진실한 법의 몸이신데 다시 더 무슨 법을 구하려 하십니까? 여래께서는 이미 생사의 바다를 건너 셨는데 더 지어야 할 복이 어디 있습 니까?”
“그렇다, 아니뭇다. 네 말과 같다. 중 생들이 악의 근본인 몸과 말과 생각의 행을 참으로 안다면 결코 삼악도에 떨 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생들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나쁜 길에 떨어 진다. 나는 그들을 위해 복을 지어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힘 중에서도 복 의 힘은 가장 으뜸이니, 그 복의 힘으 로 불도'를 성취한다. 그러므로 아니룻 다, 너도 이 여섯 가지 법을 얻도록 하 여라. 비구들은 너와 같이 공부해야 한다.”
너무 조이거나 늦추지 마라
부처님께서 죽림정사에 계실 때였다. 소오나 비구는 영축산에 서 쉬지 않고 선정을 닦다가 이렇게 생각했다.
부처님의 제자로서 정진하는 성문 부처님의 음성 (가르침)을 듣고 정진 하는 출가 수행자 중에 나도 들어간 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번뇌를 다하 지 못했다. 애를 써도 이루지 못할 바 에야 차라리 집에 돌아가 보시를 행하 면서 복을 짓는 것이 낫지 않을까?’
부처님은 소오나의 마음을 살펴 아 시고 한 비구를 시켜 그를 불러 오도 톡 하셨다. 부처님은 소오나에게 말씀 하셨다.
“소오나여, 너는 세속에 있을 때에 거문고를 잘 탔었다지?”
“네 그랬습니다.”
“네가 거문고를 탈 때 만약 그 줄을 너무 조이면 어떻더니?”
“소리가잘나지 않습니다.”
“줄을 너무 늦추었을 때는 어떻더 냐?”
“그때도 잘 나지 않습니다. 줄을 너 무 늦추거나 조이지 않고 알맞게 잘 고루어야만 맑고 미묘한 소리가 납니 다.”
부처님은 소오나를 기특하게 여기면 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너의 공부도 그와 같다. 정 진을 할 때 너무 조급히 하면 들뜨게 되고 너무 느리면 게으르게 된다. 그 러므로 알맞게 하여 집착하지도 말고 방일하지도 말아라.”
소오나는 이때부터 항상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거문고를 타는 비유를 생각 하면서 정진하였다. 그는 오래지 않아 번뇌가 다하고 마음의 해탈을 얻어 아 라한이 되었다. 소오나는 아라한이 되 어 마음으로 해탈한 기쁨을 지니고 부 처님을 찾아가 뵈었다.
“부처님, 저는 부처님의 법 안에서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모든 번뇌를 다 하고.할 일을 이미 마쳤으며 무거운 짐을 버렸습니다. 또 바른 지혜로써 욕심을 떠난 해탈, 성냄을 떠난 해탈, 멀리 벗어난 해탈, 애욕이 다한 해탈, 성냄을 떠난 해탈, 멀리 벗어난 해탈, 애욕이 다한 해탈, 모든 취로부터의 해탈, 늘 생각하여 잊지 않는 해탈 등 여섯 가지 해탈을 얻었습니다. 부처님, 만약 조그마한 신심으로 욕심을 떠나 해탈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옳지 못합 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다한 것을 참으로 욕심을 떠난 해탈이라고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사소한 계 율을 지키는 것으로써 자기는 성냄에 서 해탈했다고 한다면 그것도 옳지 못 합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다 한 것을 참으로 성냄을 떠난 해탈이라 고 합니다. 그리고 이양을 멀리 벗어나려고 닦아 익힌 것으로써 멀리 벗어난 해탈이라고 한다면 그것도 옳 지 못합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이 다한 것을 참으로 멀리 벗어난 해 탈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다한 것을 가리켜 애욕이 다한 해탈, 모든 취로부터 의 해탈, 생각하여 잊지 않는 해탈이 라고 합니다.”
존자 소오나가 이 법을 말하였을 때 부처님은 기뻐하셨고 수행자들도 한결 같이 환희에 젖었다. 소오나가 그 곳 을 떠나자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말씀 하셨다.
“마음이 잘 해탈한 사람은 마땅히 그와 같이 말해야 한다. 소오나는 지 혜로써 말하였다. 그는 스스로를 추켜 세우지도 않고 남을 낮추지도 않고 그 이치를 바로 말하였다.”
〈잡아함 이십억이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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