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계만다라의 이취회(理趣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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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01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6-08-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연재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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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14 06:06 조회 2,352회본문
금강계만다라의 이취회(理趣會)
이취회(理趣會)는 그림1)과 같이 금강 계 구회만다라(九會曼茶羅) 가운데 오른 쪽에서 맨 위쪽에 위치하고 있다. 지난 호에서 살펴 보았던 일인회(一印會)의 오 른쪽에 해당한다. 일인(一印)은 비로자나 부처님이고 사인(四印)은 사만다라(四曼 茶羅) 내지 사존(四尊)을 말하는데, 그 사 존(四尊)은 37존을 대표하는 존(尊)이다. 즉 중앙의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4방 (四方), 4사선(斜線), 4외곽에 각각 배치되 어 있는 사바라밀보살(四波羅蜜菩薩)과 사대보살(四大菩薩), 사공양보살(四供養 菩薩)들을 말한다.
그 사인(四印)은 중층 적으로 이루어져 있고 모두 12존의 보살 들이 사인회(四印會)를 이루고 있다. 중앙의 갈마회(羯磨身會)에서부터 시 작된 금강계의 구회만다라(九會曼茶羅) 는 삼매야회, 미세회, 공양회에 이르는 동 안 37존이 배치되었지만 사인회(四印회) 에 이르러서는 13존으로 축약되고, 또 그 다음 일인회(一印會)에서는 1존으로 단 일화된다. 그 일존(一尊)이 바로 비로자 나불이며, 이를 대신하여 경전에서는 금 강살타가 모셔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배대 속에서 이취회(理 趣會)에 이르게 되면, 전혀 다른 구조를 띠게 된다.
이전까지는 중앙의 비로자나 불을 중심으로 사방(四方)의 사불(四佛), 사보살(四菩薩)과 각각의 친근보살들이 원륜(圓輪)을 이루며 사방 팔방에 중층적 으로 배치된 구조를 띠었지만, 이취회에 와서는 기존의 존상(尊像)의 배치가 아니 라 전혀 다른 것으로, 중앙에 비로자나불 대신에 금강살타를 주존(主尊)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 다. 또 기존의 원륜(圓輪) 대신에 그림2) 와 같이 사각의 방단(方壇)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즉 원 륜(圓輪) 대신에 사각의 방단(方壇)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방단도 안쪽과 바깥쪽 으로 구분된다. 안쪽의 방단은 가로세로 로 모두 9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9개 의 방단 속에 9분의 보살이 모셔져 있다.
기존처럼 원륜(圓輪)이 아니라 방단(方 壇)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이전과는 다른 구조이다. 또 바깥쪽의 방단(方壇)에는 모두 8분 의 보살이 모셔져 있는데, 사방(四方)과 네 모퉁이에 각각 4분의 보살이 배치되 어 있다. 그래서 이취회는 총 17분의 보 살이 모셔진다. 이러한 배치는『금강정 경』에 따른 배치가 아니라 전혀 다른 경전인『이취경』에 따라 배치된 것이 다.『이취경』은 흔히『반야이취경』이 라 부르기도 하는데, 모두 갖추어서 부르 면『최상근본대락금강불공삼매대교왕 경』이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양 상을 띠고 있는 금강계만다라가 이취회 (理趣會)라 할 수 있는데, 이취회는 기존 의 만다라가『금강정경』에 의해 그져 진 것과 달리『이취경』에 근거하여 그 려져 있다.
그래서 이취회(理趣會)라 이 름이 붙여진 것이다. 『이취경』의 주된 내용은 인간의 본질 적인 생(生)의 에너지가 금강살타의 보 리심으로 표현되고, 보리심의 증득을 위 하여 그 에너지가 여러 가지 방편으로 표 현되는데, 그것이 바로 4보살녀(菩薩女) 의 등장이며, 그 보살녀와의 관계에서 대 지혜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대지혜를 얻 는다는 것은 곧 비로자나불이 된다는 것 으로, 금강살타와 사보살녀(四菩薩女)의 합일(合一)이 완성됨으로써 비로자나불 의 경계를 이루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대지혜는 금강살타와 사보살녀(四菩 薩女)의 교합으로써 얻게 된다는 것인데, 이는 보리심의 증득, 깨달음의 경지를 남 녀의 성교(性交)에 의한 즐거움으로 비유 된 것이다.
즉 성불(成佛)의 경지를 성적 인 대락(大樂)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것 이『이취경』의 사상이다. 이를 대락사 상(大樂思想)이라 한다. 쉽게 말하면 성불 의 경지를 남녀의 성관계로 얻어지는 쾌 락으로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서 성(性)의 교합(交合) 조차도 청정한 경 계라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후기밀교의 탄트라로서 좌도밀교로 오 해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이취경』 은 대승불교의 전통에 따라 미혹된 자의 깊은 곳에 부처가 내재(內在)되어 있다 는 사고에 따라 중생의 보리심을 발현해 야 한다고 설하고 있다. 부처 또는 보리 심의 내재는 대승불교의 여래장사상에 기인하고, 중생이 부처가 된다는 것은 유 식사상(唯識思想)에 기반을 두고 있다.
즉 대승불교의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는 사고를『이취경』은 철저히 따르고 있 는 것이다. 또 여기에는 중생이 곧 부처 라는『화엄경』의 사상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이취경』은 중생의 번뇌가 다하는 곳에서 부처를 발견하고자 한다. 그 방편이 사보살녀(四菩薩女)의 배치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금강살타와 사보살 녀의 관계가 핵심이 되는데, 이취회는 중 생의 번뇌와 애욕의 에너지를 성불과 보 리심의 기반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취 회에서 사보살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보살녀에 대해서는 이취회의 구조를 먼저 살펴보고 난 뒤에 얘기하고자 한다.
이취회의 구조를 살펴보면, 그림3)과 같이 중앙의 금강살타를 중심으로 안쪽 의 사각 방단(方壇)에 8보살이 둘러져 있 고, 바깥쪽 방단(方壇)에는 사방(四方)과 사선(斜線)에 8보살이 배치되어 있다. 안 쪽의 8보살은 동서남북 사방(四方)의 욕 금강보살(慾金剛菩薩), 애금강보살(愛金 剛菩薩), 촉금강보살(觸金剛菩薩), 만금강 보살(慢金剛菩薩)의 사보살녀(四菩薩女) 와 대각선 방향의 4사선(斜線)에 있는 금 강소향보살(金剛燒香菩薩), 금강화보살 (金剛華菩薩), 금강등보살(金剛燈菩薩), 금 강도향보살(金剛塗香菩薩)의 내사공양보 살(內四供養菩薩)이다.
성신회나 기타 구 회만다라에서는 이들이 외사공양보살 (外四供養菩薩)로 등장하지만, 이취회에 서는 반대로 내사공양보살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이취회가 보리심을 얻 기 위한 방편을 역설적으로 설명하고 있 음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금강계만다라 에서 이취회는 기존과 다른 독특한 교교 설을 펼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바깥 쪽의 사각 방단(方壇)에는 사방 (四方)으로 금강구보살(金剛鉤菩薩), 금 강삭보살(金剛索菩薩), 금강쇄보살(金剛 鎖菩薩), 금강령보살(金剛鈴菩薩)의 사섭 보살(四攝菩薩)이 배치되고, 대각선 방향 에는 금강희보살(金剛嬉菩薩), 금강만보 살(金剛鬘菩薩), 금강가보살(金剛歌菩薩), 금강무보살(金剛舞菩薩)의 외사공양보살 (外四供養菩薩)이 배치되어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들도 원래는 내사공 양보살인데 이취회에서는 외사공양보살 로 등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앞에서 설 명한 바와 같다. 중앙의 금강살타는 지난호에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비로자나불을 대신하여 주존(主尊)으로 모셔지고 있다. 현도만다 라(現圖曼茶羅)에서는 비로자나불이 모 셔지고 있지만『금강정경』에서는 금 강살타가 등장하고 있다. 이는 금강살타 와 비로자나불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 을 의미한다. 사실 비로자나가 되었든 금 강살타가 되었든 중생의 입장에서는 중 요하지 않다. 비로자나불의 별문별덕(別 門別德)으로 나툰 것이 금강살타보살이 며, 이 보살이 결국 비로자나불의 또다른 모습이므로, 이들은 동체(同體)이자 별덕 (別德)인 동시에 또한 이체(異體)이면서 동덕(同德)이다.
즉 서로 다른 존재가 아 니므로 금강살타가 곧 비로자나불이며, 비로자나불이 금강살타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금강살타와 비로자나불이 동일 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금강살타의 공 능(功能)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금 강살타는 보리심을 일으켜 지혜를 증득 케 하는 보살이며, 그 지혜는 대지혜(大 智慧)로서 비로자나불을 가리키며, 비로 자나불의 지혜를 일러 일체지(一切智), 금강지(金剛智)라 표현하는데, 보리심을 일으켜 대지혜를 얻는다는 점에서 모두 같은 공능을 지녔고 그 역할 또한 다르 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로자나불을 대신하여 금강살타가 주존(主尊)으로 등 장하고 있는 것이다. 중생의 입장에서는 대지혜를 증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역 할을 금강살타가 맡는 것이 이치에 맞다.
그 결과가 비로자나불이 되기 때문이다. 금강살타를 중심으로 사방에는 욕금 강보살(慾金剛菩薩), 애금강보살(愛金剛 菩薩), 촉금강보살(觸金剛菩薩), 만금강보 살(慢金剛菩薩)이 배치된다. 이들은 보리 심을 일으켜 지혜를 증득케 하는 금강살 타의 보좌역을 하는 여존(女尊)들이다. 이 가운데 동방의 욕금강보살(慾金剛 菩薩)은 활과 화살을 갖추고 있는 애욕 (愛慾)의 신(神)으로, 그리스 신화의 에로 스나 로마 신화의 큐피트에 비유되는 신 이다. 애욕(愛慾)은 상대를 사랑하는 욕 망으로, 이 애욕은 청정한 것이며 보살의 경지로 표현된다. 그 애욕은 생명활동의 본원(本源)으로서 불타(佛陀)를 추구하는 욕망과 같은 것이다. 대락(大樂)을 추구 하는 애욕(愛慾)을 말하는 것이다.
애욕 을 성불로 승화시키는 대락사상(大樂思 想)을 의미하고 있다. 남방의 촉금강보살은 법열(法悅)의 대 상과 접촉케 하는 보살이다. 그 법열(法 悅)은 깨달음의 경지로서 사랑의 희롱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느끼는 환희를 여기 에 비유한 것이다. 즉 깨달음의 경지를 이해하기 쉽게 성적으로 최고조에 달한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를 한역(漢譯) 에서는 ‘촉(觸)’으로 해석하였다. 산스크 리트는 Kelikila이다. 그래서 앞의 욕금강보살이 애욕(愛慾) 을 일으키는 보살이라면, 촉금강보살은 애욕의 대상과 접촉케 하는 보살로 묘사 된다. 즉 촉금강보살로 인하여 금강살타 의 보리심에 접촉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 한다. 이를 남녀의 접촉으로 쉽게 설명하 고 있다.
금강살타의 삼매야형인 삼고저 (三鈷杵)를 가슴에 품고 있는 모양은 중 생의 근기에서는 성적인 접촉을 의미하 는 것이고, 불(佛)의 입장에서는 보리심 으로 일으키는 것을 의미한다. 본질을 이 해하지 못하면 밀교를 성적인 것으로 몰 아가고 불교의 이단(異端)으로 단정하는 무지(無知)를 이를 드러내게 되므로, 상 징적 의미와 그 비밀성을 이해해야 할 것 이다. 서방의 애금강보살은 일체중생을 끌 어안고 보리(菩提)를 향하여 나아가게 하 는 보살이다. 그래서 사랑의 적극적인 행 동으로 표현되며, 앞의 애욕(愛慾)을 행 동으로 옮기는 보살이다. 그 행동은 남녀 의 포옹으로 묘사된다. 이는 성적인 행위 나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을 말하는 것으 로, 중생이 보리심을 일으켜 다른 사람을 구제하는 것에 비유된다.
사랑의 행동은 자비의 실천으로 이해해야 한다. 자비심 의 발현을 말하는 것이다. 북방의 만금강보살은 중생의 오만불 손(傲慢不遜)한 마음의 작용에 비유된다. 이는 보리심을 역설적으로 표현한으로, 애욕을 일으켜 접촉하고 결국 한 몸이 되 어 느끼는 충족감을 오만불손으로 비유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오만불손은 실제로 는 보리심의 증득과 자비심을 역설적으 로 말하고 있다. 깨달음의 경지에서 지혜 의 눈으로 보면, 오만불손마저도 부처의 자비로운 작용력과 동일한 것으로 승화 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달리 설명하면, 현실적으로 남녀가 성관계를 가진 후에 느끼는 충족감을 만(慢)으로 표현한 것이 고, 이상적으로는 성적인 충족감은 깨달 음의 경지, 자비심으로 승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보살이 바로 만금강보살 이다.
이러한 사보살녀(四菩薩女)의 배대는 남녀의 애욕→신체적인 접촉→구체적인 행위→충족감으로 표현되지만, 비밀성과 상징성의 의미에서는 중생이 보리심을 일으켜 깨달음, 지혜를 얻는다는 것을 상 징하고 있다. 이외에 이취회에 등장하는 보살로는 안쪽 방단의 내사공양보살과 바깥쪽 방 단의 사섭보살과 외사공양보살이 있다. 내외사공양보살은 금강살타와 사보살녀 (四菩薩女)간의 상호공양을 의미하고, 사 섭보살은 보리심으로 이끌기 위해 중생 을 인도하는 보살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 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취회(理 趣會)는 다른 구회만다라와 달리 그조적 인면에서도 파격적이고 역할과 공능에 서도 의미가 다르다. 금강살타가 주존인 것도 다르지만, 17존의 상호관계가 너무 나 현실적이고 그 비밀성과 상징성에서 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성욕(性慾)을 성 불의 에너지로 보고 있다는 점과 세간적 인 측면에서 중생이 살아가는 인간관계 의 상호작용을 의미하고, 출세간적인 측 면에서 대승보살도와 보리심과 자비심 의 발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기 때 문이다. 바로 옆에 있는 중생을 어떻게 바라 보 고, 어떤 마음으로 감싸안고 이해하고 대 해야 하는지를 이취회는 말하고 있음을 헤아려야 할 것이다. 또한 초기불교의 무 상(無常)과 연기(緣起)의 진리, 대승불교 에서의 공(空)과 무자성(無自性)을 밀교 에서는 보리심(菩提心)으로 설명하고 있 음을 이해할 수 있다면, 불교와 밀교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를 달리 표현하면, 원수를 자비로 받아들 일 수 있는 마음이라야 진정한 진언수행 자라 할 수 있다.
<다음호에서는 ‘항삼세회’에 대해 살펴 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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