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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꽃 피면, 자비의 열매 맺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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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97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6-04-04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서 하 보 살 의 불교문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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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강지연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강지연 구성작가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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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13 11:36 조회 2,13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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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꽃 피면, 자비의 열매 맺혀
봄이 오는 소리, 봄의 전령 꽃 지혜의 눈을 뜨면 봄꽃이 더 아름답다

불교는 꽃의 종교 


봄소식을 전하는 전령사는 바로 꽃이다. 얼음이 채 녹기도 전에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얼음새 꽃이나 눈 덮인 가지에서 꽃을 피우는 매화가 가장 먼저 봄을 전한다. 잎이 나오기 전에 색색의 꽃봉오리부터 피우는 봄꽃을 부처님은 다르마에 비유했다. 겨울을 이겨내고 생명의 신비를 보여주는 그 에너지는 치열한 수행을 닮아있다. 부처님은 깨달음의 꽃이 피고 난 다음 자비의 열매가 맺힌다며 봄꽃을 깨달음이라고 말씀하신 거다. 그래서 봄꽃을 보면 깨달음에의 치열함이 생각난다. 일본의 도겐선사는 매화를 석가의 눈이라고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꽃이 소리 소문 없이 한반도를 향기로 덮어가고 있다. 불교와 꽃, 그 인연은 어디서 부터 시작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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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처렴상정, 연꽃이 불자 


불교와 꽃 하면 불교를 잘 모르는 이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꽃은 단연 연꽃이다. 부처님이 룸비니동산 에서 태어났을 때도 부처님의 발걸음마다 피어난 꽃이 바로 연꽃이다. 연꽃은 인도의 고대신화에서부터 등장한다. 불교가 성립되기 전전 고대인도 브라만교에서 연꽃과 관련된 신화의 내용을 찾을 수 있다. 혼돈의 물밑에 잠든 정령 나라야나의 배꼽에서 연꽃이 솟아났다는 내용이다. 이를 기반으로 연꽃은 우주의 창조와 생성의 의미를 지닌 꽃이라는 믿음이 생겨났고 ‘세계연화사상’ 또한 나타났다. 세계연화사상은 불교에서 부처님의 지혜를 믿는 사람이 서방정토에 왕생할 때 연꽃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연화화생(蓮華花生)으로 이어진다. 연꽃이 불교의 상징이 된 건 생장환경에서부터 비롯된다. 더러운 진흙 속에서 크지만 청결한 꽃이 피어난다. 그래서 처렴상정(處染常淨)이다. 오염된 환경에서도 순수하고 깨끗한 연꽃. 부처님은 불자는 연꽃 같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번뇌와 고통의 바다가 펼쳐진 사바세계에서 살아도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 을 받들어 아름다운 신행의 꽃을 피우는 것. 바로 불자가 지향해야 할 삶의 모습이다. 연꽃은 꽃이 피면서 동시에 열매가 맺히는 식물 이다. 이를 일컬어 화과동시(花果同時)라고 한다. 부처님은 꽃이 핌과 동시에 열매가 맺히는 것이 바로 인과의 도리를 설명해준다고 하셨다.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한 수단이자 열매의 원인이 된다. 꽃이 인(因) 이요, 열매가 과(果)다. 연꽃문양 가운데 여덟 장의 꽃잎을 가진 연꽃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대일경’의 세계를 형상화한 태장계만다라의 중심에는 8엽 연꽃이 그려져 있다. 이를 중대팔엽원이라고 부른다. 비로자나불인 대일여래가 연꽃의 중앙에 위치하고, 8개의 연꽃잎에는 부처와 보살이 자리했다. 동방 보당여래, 남방 개부화왕여래, 서방 무량수여래, 북방 천고뇌음여래는 지혜를, 보현·문수·관음· 미륵보살은 중생 제도를 위한 네 가지 방편, 즉 사섭(四攝)을 상징한다. 여덟 장의 연꽃잎이 하나에서 펼쳐진 것처럼 모든 법은 하나의 법으로 귀결된다는 걸 만다라를 통해 드러내는 것이다. 만다라는 모든 불·보살 등을 그 지위에 따라 배열해 그린 그림이다. 




불두화, 부처꽃, 동자꽃 등 불교 인연 깊어 


그런데 불교와 인연 있는 꽃이 연꽃 하나뿐일까? 상상의 꽃 우담바라를 제외하고 말이다. 꽃의 여왕은 장미다. 화려한 자태와 색은 눈을 홀리고, 그 진한 향기를 마음을 홀린다. 장미가 꽃의 여왕이라면 꽃의 왕은 모란이다. 작약은 꽃의 재상이라고 한다. 모란과 작약은 연꽃과 함께 불전에 공양하는 꽃이다. 법당에 사용하는 문양도 연꽃과 모란이 많다. 해마다 봄이 무르익으면 불두화가 피어난다. 육계가 솟아오른 부처님 머리모양을 닮았다 해 불두화라 불린다. 부처님오신날 전후에 만개하기에, 사찰에서 정원수로도 많이 식재되어 있다. 옛날에는 아예 ‘절나무’라고 불렀다고 한다. 백당나무를 개량한 품종이라 불두화는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후손을 남기지 않는 모습에서 청정비구의 모습을 찾는 해석도 나온다. 불두화의 잎사귀는 세 갈래인데 이것이 불법승 삼보를 가리킨다는 말도 전한다. 꽃말마저도 은혜, 베풂인 불교의 꽃이다. 봄이면 하얗게 꽃망울을 피는 층층나무 꽃 역시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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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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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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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꽃
 


층층나무 잎으로 전을 붙여 부처님전에 올렸다는 옛스님들의 얘기가 전하기도 한다. 층층나무는 무르지도 너무 단단하지도 않은 재질이라 팔만대장경 경판에도 많이 사용돼 불교와 친숙하다. 화려한 붉은 꽃이 인상적인 칸나는 붓다의 피에서 싹이 돋아났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먼 옛날 악마들은 불타의 영력과 명성에 질투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악마들은 붓다가 외출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거대한 바위를 준비해두고 붓다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마침 붓다가 계곡을 지나가자 악마들은 바위를 밀어 떨어뜨렸다. 바위는 바로 붓다의 발밑에 떨어진 다음 산산이 부셔졌다. 그 때 파편 하나가 붓다의 발가락에 상처를 입혀 피가 났다. 그 피가 대지로 스며든 자리에서 꽃이 피었는데, 그 꽃이 칸나다. 슬픈 전설이 서린 꽃도 있다. 바로 동자꽃이다. 오세암 동자가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입어 한겨울을 거뜬히 이겨냈다면 동자꽃이 된 동자는 스님을 기다리다 얼어 죽는다. 동자꽃은 동자를 묻은 곳에서 피어났다는 아픈 전설을 품고 있다. 이름만으로도 불교와의 인연을 확실히 드러내는 꽃은 부처꽃이다. 백중날 연꽃을 공양하려했던 불자가 큰비로 물이 불어 연꽃을 딸 수가 없게 되자 큰 실망에 빠져있었다고 한다. 이때 지나가던 백발노인이 강변에 핀 붉은 꽃을 공양하면 부처님이 좋아할 것이라는 조언을 했다. 이 말은 들은 불자가 이 꽃을 부처님께 공양했다고 해서 부처꽃이라고 한다는 전설이 있다. 




부처님, 꽃을 수행자에 비유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의 국화로도 유명한 재스민은 6~9월 꽃이 피는데, <법구경>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부처님은 “백단나무, 말리화, 연꽃의 향기가 바람을 거스를 수 없듯 삼보를 의지처로 삼고, 오계를 지키고, 탐욕스럽지 않은 거룩한 이의 명성 또한 온 세상에 퍼진다”고 말씀하셨다. 때문에 태국이나 스리랑카에서는 화환을 만들거나 꽃잎을 물그릇에 띄워 부처님께 공양한다. <대승본생심지관경>에서도 꽃과 관련된 설법을 찾을 수 있다. ‘울금화는 시들어도 다른 싱싱한 꽃보다 가치가 있다’며 ‘정견(正見)을 가진 비구도 이와 같아서 중생보다 백 천만 배나 훌륭하다’고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울금화는 식물학에서 지칭하는 울금이 아닌 사프란이다. 사프란은 값비싼 향신료로 유명한데, 부처님은 부피가 작지만 가치 있다는 의미로 자주 비유해 쓰곤 했다. <근본설일체유부나야>에 네 가지 물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중 부피가 작고 가볍지만 아주 값진 것으로 비단과 울금향을 들고 있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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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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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나꽃


여름이면 모감주나무에서 노란 꽃이 송골송골 피어난다. 한동안 꽃을 보고 있노라면 금비가 내리는 것 같다하여 ‘Goldenrain tree’라는 영어 이름을 갖고 있는 아름다운 꽃이다. 모감주나무가 불교와 인연이 깊은 건 꽃이 아니라 열매 때문이다. 모감주나무의 열매는 완전히 익으면 돌처럼 단단해진다. 만지면 만질수록 윤기를 더해, 염주의 재료로 많이 쓰인다. 그래서인지 ‘금강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고려시대 숙종 임금이 절에 머물면서 금강자와 수정 염주 각 한 꾸러미를 시주하였다는 것과 조선시대에는 명나라 사신이 태종에게 금강자 3관을 예물로 바쳤다고 기록을 통해 모감주나무의 또 다른 이름이 금강자였다고 전해진다. 모감주나무는 옛날에는 ‘묘감주나무’와 ‘묘각주 나무’로 불리기도 했다. ‘묘감’은 중국 선종의 중심사찰이었던 영은사 주지스님의 법명이었으며 ‘묘각’은 불교에서 보살 수행의 가장 최후 자리로 번뇌를 끊고 지혜가 원만하게 갖춰진 자리를 말한다. 이처럼 이름 또한 불교와 깊은 인연을 드러낸다. 모두 다 정리하진 못했지만 연꽃만이 불교와 깊은 인연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사프란이나 칸나에서도 불교의 향기가 솔솔 풍겨난다. 불교는, 부처님의 말씀은 그야말로 꽃처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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