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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 닦으면 복은 깃들게 마련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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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09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08-11-03 신문면수 12면 카테고리 기획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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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윤우채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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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0 11:48 조회 2,20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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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 닦으면 복은 깃들게 마련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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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들은 몸 한 번 움직이 고 말 한 번 할 때마다 모두 업에 떨어지지 않음이 없다 한다. 한 평생을 살면서 구업 만큼 쉽게 짓고 그만큼 많이 짓게 뢰는 업이 또 있을까. 그래서 현자들은 “입은 재앙 ⑵ 문이고, 입 속에 자신의 발등을 찍 는 도끼가 들어 있다”며 입과 말을 엄 중히 단속할 것을 가르친다.

: 해인사 어느 학인 스님의 일화다. 체인사에서는 한 해 두 차례 안거 해 제를 앞두고 7일 7야 용맹정진을 한다. 이레를 꼬박 새우며 낮에는 가행정진 을 하고 밤에는 수마와 싸우는 것은 그야말로 사력을 다하는 용맹심이 있 5어야 극복할 수 있는 일이다. 이 기간 동안은 기본적으로 묵언 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토록 고통스런 지경을 당하여 기력이 쇠진해서도 대중들과 공양을 할 때면 입이 달싹달싹 거리더 란다. 학인 스님은 어느 순간 몸서리 가 쳐질만큼 정신이. .퍼뜩 들었다 한 다. 오랜. 습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내 뱉어지는 공허한 말들, 그리고 그로 인해 짓는 무수한 허물과 과보를 깨닫 게 된 것이다. 그 학인 스님은 부연해 서 말한다. 지금껏 말을 안해 후회한 일 보다 해서 후회되는 일이 더 많았 었다고.

새해불공 벙어리

십수년 전 새해불공때가 되면 총지 사에 벙어리가 하나 왔다. 벙어리는 일주일 내내 절에서 기식을 하며 정진 에만 몰두하는데 사람들은 처음엔 꼭 벙어리인 줄만 알았다 한다.

김성민(61 불명 : 월광인) 보살. 보 살은 십여년간 총지종 본산격인 총지 사 회장을 맡아 대소사 일을 관장했 다. 회장자리 같이 일 많고 머리 무거 운 일에 후임자는 잘 없었다. 본의 아 니게 강산이 변하는 동안까지 회장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때에는 구설 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평소에 바른 소리 딱딱해대는 성품이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김성민 보살은 법회 시간에는 맨 앞 줄에서 정진한다. 스승님 법문 중에도 불쑥불쑥 한 마디씩 내던진다. 대개 사리에 꼭 들어 맞고, 혜안에서 우러 나오는 말들이다. ,

회장으로 있으면서 갖가지 일들을 치르다 보면 구설수도 생기는 것이 상 례지만, 당시에 보살은 왠지 자신이 무심코 던진 말들이 남에게 상처를 주 고 자신에게도 장애로 돌아오는 것 같 은 생각으로 마음이 어두워 지곤했다.

“한 오년만 하려고 했었죠. 구업을 다스려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새해 불공 일주일간 묵언정진을 하기로 작 심했죠.”

그렇게 시작한 새해 묵언정진은 한 해를 더해 여섯해 동안 지속됐다.

보살의 진언수행과의 인연은 초등학 교 때 어머니(92, 최공자)를 따라 자성 학교엘 다니면서 시작됐다. 포항 보정 심인당 교도였던 어머니는 주야육시 항송은 물론 밀교장경, 총전 등을 경 책표지가 다 닳도록 수지독송했다. 뿐 만아니라 다달이 묵언 7정진을 했다고 하니 어쩌면 김성민 보살의 신앙 원류 는 어머니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도 모 른다.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병치레가 유난 히 많았던 맏딸이 스무살만이라도 살 기를 소원했다. 딸은 무탈하게 성장했 고 5남매의 맏이로서 나머지 동생 뒷 바라지를 훌륭하게 해냈다. 도정공장 을 경영한 아버지 덕택으로 형제들 모 두 일찍 서울에서 유학생활을 할 수 있었고 자연 맏딸인 보살이 동생들을 돌보게 되었다.

총지사 대표 보살

김성민 보살은 오래전 어머니가 자 신을 위해 그랬듯 서원당에서 동생들 의 창성을 소원했다. 동생들이 중요한 시험을 보는 날이면 7정진불공을 올렸 다. 부처님의 가피가 있었는지 자신은 소위 일류여대를 다녔고 동생들은 미 국유학도 가고 대학교수도 되었다.

김성민 보살은 서대문 심인당, 관성 사 등지에서 신행생활을 했고, 강남으 로 이주한 뒤부터는 줄곧 총지사에서 수행했다. ’85년 총지사 총무를 거쳐 ’89년부터 십여년간은 총지사 3대 회 장을 맡아 일하며 그야말로 총지사 대 표보살로 지내왔다.

보살에겐 총지사 회장 재임시절 특 별히 보람있었던 일이 있다. ’ 96년 불 교'TV 자원봉사팀의 총지종 팀장으로 많은 봉사활동을 원만하게 수행해냈던 일이다. 김성민 보살은 지금도 여러모 로 후원해 주신 각 사원 정사 전수님 들과 교도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잊 지 않고 있다.

“당시에도 우리 종단이 불교'!'V 이 사종단으로 있으면서 주식공모는 물론 자원봉사 활동을 적극 전개해 영상포 교 발전에 한 몫을 했었습니다. 법공, 원송 정사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조 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았고 교도들 간 에도 화목한 가운데서 참 신명나게 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김성민 보살이 요즘 스승님들께 부 탁할 것이 하나 있다고 한다. 교도들 에게 좀 더 세세한 관심을 가져 달라 는 것이다.

예전 복지화 스승의 일화다. 보살이 당시 영험있다는 어느 현교절에 가겠 다고 하자 밤낮으로 좇아 다니며 만류 했다고 한다. 어느 날인가는 집으로 들어 가려는데 스승님이 아파트 옥상 에서 내려 오더란다. 거기서 해가 저 물도록 기다린 것이다.

“초창기 스승님들께선 그런 열정과 끊임없는 관심으로 교화를 하셨습니 다. 아무쪼록 스승님들께서는 교도들 을 어머니가 자식 품듯 대해 주셨으면 합니다. 여든, 아흔이 돼도 스승님의 따뜻한 말씀, 전화 한 통에 기뻐한답 니다:”

보살은 요즘 컴퓨터 온라인게임을 배워 취미를 붙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매일 서원당엘 나와 정진하는 것이 제 일 재미있다고 말한다.

불법  만나 감사

“서원당은 심성을 닦는 곳이예요. 복을 비는 곳이 아니지요. 놋그릇을 닦으면 광채가 나듯 우리네 심성도 자 꾸 닦다 보면 광채가 나고 그때부터는 좋은 복이 하나 하나 깃들게 되는 법 입니다. 제일로 재미난 취미가 되는 거죠”

김성민 보살은 묵언정진을 여러 해 하고니서 말도 전보다는 유하게 변하 고 마음도 주변도 편안해 졌다고 한 다. ,

"그저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 뿐입니 다. 내 심성을 요정도 쓸 수 있었으니 말이예요, 부처님 못 만나고 불공 안 했으면 아주 몹쓸 사람이 됐을 지도 모릅니다.”

서원당에 앉아 있는 보살을 보면 그 지없이 평화롭기만 하다. 아마도 보살 은 입으로 짓는 네가지 업, 망어  기어  양설  악구 는 물론 쓸데없는 말, 부질없는 말, 안해 도 될 .말 같은 구업마저도 잘 조어 해서 ‘내외에 다툼이 없는 경지’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한 소 식 한 것처럼도 보이는, 툭툭 던지는 말은 그래도 여전하지만.

-윤우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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