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의 풍파를 막아준 불공의 힘
페이지 정보
호수 207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7-02-01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정각사 신행체험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14 13:26 조회 2,608회본문
정각사 박두상 보살 신행 체험
한번은 동네에서 근교로 관광을 가자고 해서 월초불공을 당겨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동참 명패가 보이지 않았습 니다. 아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21세에 혼인을 하여 26세가 되던 해에 남편을 잃었습니 다. 그 후 홀몸으로 애면글면 딸 하나와 아들 하나를 키웠습니 다. 아들은 대학교에 이어 대학원까지 보내며 자기가 원하는 공 부를 하게끔 했는데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9년 전 먼저 세상을 떴습니다. 그래도 부처님의 공덕으로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하긴 했습 니다만, 지금도 아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런 아들 의 동참 명패가 없어지자, 아들을 또 한 번 잃어버린 것만 같아 심 장이 쿵쾅거렸습니다. 노상 있던 것이 없는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누군가가 착각을 해서 가져간 것 같았습니다.
공식시간 내내 걸어놓은 명패들을 읽고 또 읽어봐도 없었습니다. 소쿠리에 담겨 있는 명패들도 전 부 헤집고 찾아봤지만 없었습니다. 아크릴 재질의 명패들을 만지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전 수님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아들 명패가 없어졌다고 하니 까 제 손을 잡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명패는 새로 하나 만들어 주 겠다고 했습니다. 다만, 이것이 하나의 법문처럼 여겨지니 단축불공을 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당시 저는 단축불공이라는 것을 처음 들었기 때문 에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이냐고 되물었습니다. 전수님은 일주일동안 하루 한 번씩 재를 올리면 된다고 했습니 다. 가만 계산을 해보니 관광 일정 때문에 마지막 날에는 단축불 공이 불가능했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말씀드리자 전수님은 마지막 날의 불공은 자기 가 대신 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마침 제 지갑에는 팔만원이 있 었습니다. 하루에 만 원씩의 희사를 하는 셈 치고, 남은 만원은 불 공을 대신 해주는 고마움의 의미로 국수공양이나 하시라며 전수 님께 드렸습니다. 하지만 전수님은 손을 저으며 괜찮으니 그냥 넣어두라고 하 셨습니다. 그렇게 여섯 번의 재를 올린 다음에 관광까지 마쳤습 니다. 집에 돌아왔는데 난리가 나 있었습니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 고 이웃에 요란한 부자(父子)가 살고 있었는데, 그 아들이 아버지 가 밉다고 집에 불을 질러버린 것입니다. 담이 하도 허술하고 약 한 탓에, 번진 불길은 우리 집까지 태우고 있었습니다.
마침 집에 온 외손자와 딸과 합심하여 물을 들이붓고 소방차도 와서 겨우 불을 끌 수 있었습니다. 어떤 연유로 불이 난 거냐고 이 웃집에 물으러 갔더니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러 왔냐면서 오히려 역정을 냈습니다. 평소 아들과 아비 사이에 남우세스러운 면이 있었던 것을 알 았기에 그러려니 해야지, 하면서도 그 후로는 사이가 소원해졌 습니다. 불이 난 지 얼마 안 있어 갑자기 구청에서 길을 낸다며 그 집을 뜯었습니다. 길이 참 묘하게도 그 집만 뜯겨나가는 형상으로 나 가지고 우리 집은 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 때의 집이 21평 정도 되 었는데, 그 때 계산으로 따져보면 600만 원 정도 밖에 보상을 못 받았을 것입니다. 600만 원이면 어디 다른데 집을 구하기도 마땅치 않고 당장 다 음 날이 막막했을 텐데 딱 우리 집만 살려주는 모양으로 길을 낸 다는 게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지금도 가만 생각해보면, 일이 그렇게 된 데에는 총지종을 만 난 후로 제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행한 가택 도량 청정과 또 마 침 그 때에 맞춰서 한 단축불공 덕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래도 아들 녀석도 제 어미가 더 고생을 하는 걸 바라지 않 았던 모양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