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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만나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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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12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7-07-01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관음사 신행체험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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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최복순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최복순 보살 관음사 교도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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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14 16:46 조회 2,80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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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만나 다행입니다”
관음사 최복순 보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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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복순 보살

관음사 교도


군산에서 태어난 저는 다복한 가정에서 유년시 절을 보냈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교회생활을 하여 성가대와 학생부, 청년부까지 적극적으로 활동했습니다. 당시의 저는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고, 전능 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다 뜻밖 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마음이 맞는 남자와 결혼 을 하였는데, 시어머니가 무당이었던 것입니다. 기독교를 믿는 며느리와 무당인 시어머니 사이의 갈등은 점차 악화되었습니다. 결국 남편과 저는 지역을 전전하며 이사를 다녔습니다. 시어머니와 물리적으로 멀어지자, 감정 상하 는 일은 줄어들었으나 남편의 술버릇이 하루가 다르게 고약해졌습니다. 남편은 매일 술을 마시 고, 저와 아이들에게 폭언과 폭력을 서슴지 않았 습니다. 이곳저곳으로 이사를 다니다가 부산까지 다다랐습니다. 

마음이 힘들수록 저는 하나님에 게 의지했습니다. 열심히 교회에 나가 기도를 하 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럼에도 현실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절망감에 목 숨을 끊기로 결심했습니다. 물에도 뛰어들어보 고, 절벽으로 몸을 던지기도 하고, 약도 먹어보았 으나 질긴 목숨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발버둥 을 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가지고 있던 신앙 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기독교라는 것이 나와 맞 지 않는 종교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절에 한번 나 가볼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막연한 걸음으로 가까운 현교 사찰을 찾았습니 다. 

대웅전의 부처님을 보자 두려움이 밀려들었 습니다. 머리를 조아리는 절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무서움이었습니다. 기독교에서 듣고 배운 우상숭 배 금기의 가르침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게는 절도 무용한가보다 하던 찰나 가까운 이웃 하나가 자석사를 추천해 주었습니다. 자석 사에는 부처님 대신 옴마니반메훔 진언이 있었 습니다. 스승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옴마니반메훔 진언을 외우니 혀가 뿌리부터 굳는 것만 같아 그 만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만히 누워 왜 옴마니 반메훔을 외는 게 불가능한지에 대해 곰곰히 생 각해보았습니다. 

오기가 발동하여 절에서 받은 불사법요를 펼치고 천천히 진언을 따라 읽었습니 다. 처음에는 힘이 들었지만 조금씩 자연스러워 졌습니다. 그때부터 마음을 고쳐먹고 자석사에 다니기 시 작했습니다. 생계는 나 몰라라 한 채 술독에 빠져 있는 남편과 어떻게든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좌 판 장사를 하고 있는 저의 상황을 들은 스승님은 조상불공을 제안하셨습니다. 49일의 날짜를 정하 여 불공에 들어갔습니다. 신기하게도 남편이 마 시는 술의 양이 현격하게 줄었습니다. 불공이 끝날 즈음, 남편은 새 사람이 되어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변화를 본 저는 신명이 났습니다. 그간 하나님은 제가 아무리 간 절하게 기도를 드려도 즉답을 주신 적이 없었습 니다. 반면 부처님은 저의 상황을 헤아려 숨통을 틔어 주었습니다. 

이에 보답하고자 저는 가정 다라니를 모시고 우리 가족의 무탈과 행복을 위해 마음을 다해 정 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막내아들도 가지게 되 었습니다. 편안한 생활을 하던 중 시어머니가 집 에 찾아오셨습니다. 시어머니는 집안의 다라니를 가리키며 무서워서 들어갈 수가 없다고 울먹였습 니다. 온 가족의 화합을 원했던 저는 곧장 자석사 의 스승님과 상담을 가졌습니다. 스승님은 시어 머니가 품고 있는 영가들을 천도해야 한다고 하 셨습니다. 시어머니 역시 스승님의 말씀을 받들어 고향의 사찰을 찾아 영가들을 천도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시부모님과 자주 왕래하면서 화 목한 사이를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삶이 란 역시 녹록치 않은 것인가 봅니다. 첫째딸이 유 방암 말기라는 소식이 저희 가족을 덮쳤습니다. 믿을 수 없는 마음에 유명한 병원들을 일일이 찾 아다니며 재검사를 받아보았지만 3개월 시한부 판정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딸의 입원과 동시에 저는 오직 부처님만을 보면서 불공에 매달렸습니 다. 매일 새벽 불공을 거르지 않았고, 밥을 먹을 때에도 잠을 잘 때에도 염주를 돌렸습니다. 진언 의 힘은 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3개월의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딸아이는 깊은 신심으로 무려 10년을 더 살고, 비로자나 부처님 의 곁으로 돌아갔습니다. 의사의 예견보다 40배 를 더 산 것은 진언의 힘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불 가능할 것입니다. 

교회 신앙 안에서 자랐던 저는 절망과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졌고 영영 극복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나날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삶의 여정에서 부처님을 만 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진언 덕 으로 가정의 화합과 평화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 다. 여태껏 그래왔듯이, 부처님에 대한 무한한 감 사를 불공으로 갚아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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