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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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법의와 도량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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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13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09-03-08 신문면수 2면 카테고리 종단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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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법경 필자소속 - 필자호칭 정사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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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1 07:56 조회 1,95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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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와 도량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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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법의 
 


법의 란 불교의 출가수행자들이 입는 옷을 말한다. 인도 승단에서 시작된 법의는 다른 나라로 전파되면서 나라마다 색상과 형식이 다르게 되었다. 일반적으 로 법의는 재가자들의 헌옷을 재단하여 기워 누빈 것으로'색을 빼고 탁한 색을 물들여 입었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 서는 기후와 풍토 등의 관계로 삼의 를 갖추게 되었고, 가사  속에 내복 인 승기지 나 복견의  , 속복  등을 착용하였다. 이러한 여러 종류의 옷을 통틀어 법의 라 하고 이 가운데 겉에 걸치는 상의  를 가사 라 하여 법의와 구별 하였다.

총지종은 재가종단으로서 편의보발01 호 을 종단의 지표로 삼고 있다. 머 리를 깎고 바랑을 메고 목탁을 쳐야 수행 자인 것은 아니다. 본 종단은 대중 속에 서 일반인과 더불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닦으며 실천하는 재가 수행자의 종단이므로 간편한 법의를 입고, 일반적 인 가사 대신에 약식 형태인 금가사 를 착용하고 있다.

이 금가사의 유래는 중국의 낙자  에서 비롯되었타. 낙자는 삼의  중 하나로 가슴에 걸치는 가사인데 중국 당 나라의 측천무후 가 승려들이 인도에서 전래된 가사를 그대로 착용하면 사찰에서 업무를 행할 때 매우 불편함을 보고 특별히 제작 지시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 금가사는 낙자와 비슷하나 주머니 가 없다는 점이 다르고, 첩가사와 비슷하 나 두 겹으로 중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총지종의 가사와 법의는 밀교의 교리와 종단의 교의 를 바탕으로 만들어졌 다. 종단의 교상과 사상, 수행정신이 망 라되어 있다고 말할 수 헜다!%찌종의 법의 는 전통적인 한복의 도포식에 관복식을 가미하여 만들어졌다. 는 출가종단의 전통적인 가사와 달리 간편한 약식의 가사 를 취하고 있 다. 이를 금가사쏘)라 한다. 총지종 의 법의 와 금가사0^)의 변천 에 대해서 살펴보자.

1972년 11‘월 11일 서울 충정로 선교부 에서 스승과 교도들이 모인 자리에서 대 성사께서는 총지종의 법의 를 다음 과 같이 결정 발표하셨다.

「법의 의 의제 는 신라시대 의 상의양이과 같이 깃을 밑에 까지 내려 서 만들고 소매는 작은 홍탁소매로 하며 색조는 백 . 황 . 홍 . 황의 4색으로 사종 수법에 맞추어 착용한다. 가사는 금가사  로 한다. 흑자색지 에' 육합상을 세 곳에 백색 으로 자수  를 한다. 목에 걸면 뒤 항부  에 육합상이 보이고 전면은 양흉부 에 육합상이 보이며 규격에 있어서 폭 은 두겹으로 만들어서 반을 접는 것이 60:15푼, 길이가.140% 되도록 하는 것이 다. 금가사와 법의에는 전면에 한 개씩의 4지결 의 흑색노끈으로 단추를 달아 서 사용한다.」고 하였다.

종조 원정 대성사께서는 법의 양식에 있어서 큰 원칙을 두고 있었으니 바로 밀 교의 사종법 에 근거한 것이었다.

식재, 증익, 경애,.항복의 사종법에 따라 법의를 사색 으로 맞춘 것이다.

그러나 종조께서는 제정한지 6년만에 법의 의 의제 를 다시 버I꾸셨 다. 번잡하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생활불교를 지향했던 총지종단의 입장에 서 사섁빼) 법'의의 사용은 일상적인 의식에 있어서 상당히 불편하고 번거로움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잡밀적 인 요소가 많아 자 칫 무속신앙으로 오해를 받을만 했다는 점이 법의 개정에 크게 작용되었던 것으 로 보인다. 그래서 총기7년  4월19 일 제11회 중앙종회 및 제9회 유지재단이 사회 합동회의에서 법의에 대한 착용법이 개정되었다.

「첫째, 공식행사와 서원당에서는 검은 법의를 입고 기타 백 . 황 . 홍색은 사택에 서 수법 을 행할 때만 입는다. 둘째, 전수의 정복은 공식시간 우 공식행사 우 가 정방문 ‘ 기타 공무 집행시만 착용하고 그 외는 사복을 착용해도 무방하다. 셋째, 성하 에는 상의만 흰색 브라우스로 대용해도 무방하다.」는 것이었다. 사색 법의의 의제와 사용에 있어서 조금의 변 화가 생기게 되었으니, 주요 골자는 공식 법회에서 흑색 법의를 주로 착용한다는 것이었다.

사색 법의 가운데 흑색 법의만을 착용 하기로 한 것은 1982년에 와서의 일이다. 당시 종령이셨던 록정 대종사께서 총기11 년  4월13일 가사개착불사 를 올리면서 법의 의 의제 를 개정하였다.

「종령 및 대종사는 황색 금가사에 법의  는 자색 으로 하고, 모든 스

승은 흑색 법의에 자색 가사를 개착  」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법의 는 다시 개정을 하게 되었다. 현재와 같은 법의와 금가사가 총기30년 에 와서 만들어진 것이다. 개정 법의는 종령의 법의와 금가사를 황색법의 에서 적색 금차사로, 일반 스승의 경우는 자색 법의에서 황색 금가사로 개정하였던 것이다.

현재 챡용하고 있는. 법의와 금가사의 상징과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호에서 자세 히 살펴보기로 하고, 잠시 내용을 바꾸어 서 총지종의 도량 에 대해서 살펴보 기로 한다.

도량은 범어 ‘보디-만다 를한자로음사한말로서 ‘보리도량 ?보리량 ’ 이라고 한다. 보리 도량 은 ‘보리를 이룬 도량’을 뜻하는 것으로 바로 ‘깨달음을 이룬 곳’, ‘불타성도 의 장소’를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의미는 불도수행 을 위한 구역으로 까지 확대되어 당우  의 유무를 불문하고 밀행 의 불사를 닦는 것도 넓은 의미의 도량으 로 쓰이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보리 를 이루는 데 계기가 되는 발심수행 의 장 소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수행을 위한 별당 의 의미로 쓰이기 도 하고, ‘사원 ’의 다른 이름으로 도 쓰인다. 이는 중국 수나라의 양제 가 천하의 사찰을 도량이라고 개칭한 데에서 유래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절 전체를 도량^라 일 컫고 있다. 여기에 한 걸음 더나아가 경- 전에서는 수행자의 마음까지도 도량이라 고 일컫고 있다.

『유마경』「보살품」에서는 ‘정직한 마 음, 믿음, 보리심 등을 도량이라 한다’고 하였다. 총지종에서 도량의 의미는 마찬 가지로 사찰 경내의 의미에서 출발하고 있다. 종조 원정 대종사께서 총지종의 도 량 명칭을 제정하시면서 도량을 다음과 같이 사용하셨다.

「첫째, 대지와 건물이 재단소유로서 위치변경이 되지 않은 도량은 사찰로 지 정하고 ‘사 ’자를 붙여서 사원명을 사용한다. 둘째, 타인 소유의 건물을 전 세로 임차하여 사용하는 도량은 이사의 가능성이 많으므로 ‘서원당 ’이 라는 명칭을 붙여서 이름을 짓는다. 예 를 들어 ‘총지종 00사’ ‘총지종 00 서원당’ 이다. 셋째, 사원 내의 본존을 봉 안하는 곳도 서원당이라고 붙인다. 넷째, 서원당 건물이 종단의 재단소유가 되었 거나 다른 곳에 건물을 매수 또는 건축 했을 때는 사원명으로 변경한다. 다섯째, 교도의 방을 빌려서 수행교화하는 곳 또 는 전세를 얻었더라도 스승이 파견되지 않은 곳은 ‘포교소 ’ 라고 한다.」 고 하여다. 현재는 ‘00서원당’이라는 명칭을#’카진 사찰은 없어졌호기호투 ‘0 0 사’로 바뀌었다느 종단의 재정사정이 창종 초기에 비4 많은 발전을 했음을 보여준다. 이 명칭이 있기 전에는 다른 명칭이 사용되었던 적이 있었다. ‘선교 부(브라는 명칭이다. 창종 전후의 때다/ 지금의 사원들은 대부분 재단소유 의 대지 건물이어서 도량명칭이 ‘00 사’로 되어 있지만, 예천에는 대부분 ‘00서원당’이라는 명칭이었다. 도량의 변천이 곧 총지종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경 정사/ 밀교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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