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소식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페이지 정보

호수 118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09-09-13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문화2 서브카테고리 -

페이지 정보

필자명 자인행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페이지 정보

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2 03:53 조회 2,766회

본문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선 사원에서 교화를 하고자 하면 운전은 필수라는 여러 선배 전수님 들의 조언도 있었지만 내가 생각해 봐도 운전은 필히 해야 할 것 같아서 운전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허는 이미 20여 년 전 처녀시절 에 따놓았지만 소위 장롱면허라 면 허만 있을 뿐 운전에는 전혀 문외한 이었다. 결혼 초에 몇 번 남편(지금 나와 살며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도 반?)에게 배우려고 몇 번 시도 했다 가 자칫 잘못했다가는 이혼할 것 같 아서 그만둔 적이 있었다.

정각사에 근무하면서 운전을 다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같이 사 는 도반에게 운전을 배울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는데 별로 반갑지 않은 표정으로 할 수 있겠느냐고 몇 번을 나에게 되물어 보았다. 며칠 후 초등 학교 6학년 우리 집 막내보다 더 나 이가 많은 소형 승용차를 그가 어디 선가에서 구해 가져왔다.

차량 외부 곳곳에 보이는 세월의 흔적과 상처들, 자동차에 반창고 같 은 은색 테이프를 붙인 것은 생전 처 음 봤다. 아무리 연습용이라고 하지 만… 차가 굴러나 갈지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 보았더니 도반은 어색 한 웃음을 띠며 겉은 이래도 20만소11 이상 뛴 차 치고는 엔진은 너무 좋다 나 어쨌다나, 20만쇼11면 서울 부산을 왕복으로 250번은 해야 하는 거리인 데 그러고도 차가 폐차 되지 않고 남 아 있는 것이 신기했다. 하여간 그 차를 가지고 시내도로 그리고 멀리 시외 고속도로까지도 나갔다. 물론 그때마다 부처님께 차량운행 원만 불공은 꼭하고… 몇 번을 그렇게 하 면서 조금씩 자신감이 생겨 마침내 이제는 혼자서도 곧잘 차를 몰고 나 간다.

얼마 전 운전석 문짝을 정각사 주 차장 입구 벽에 아주 살짝, 정말 아 주 살짝 부딪쳐 흠집이 조금 나고 도 색이 아주 조금(?) 벗겨졌다. 그 후 오른쪽 앞문 짝에서 뒷문 짝 끝까지 아주 조금 도색이 벗겨지고 흠집을 대 여섯 줄로 쫙 그어 놓았다. 막내 아들이 좌우 조화가 썩 잘 어울린다 며 나를 놀린다. 불효막심한 놈!

며칠 전 오후 대형할인점에서 차를 주차하려고 주차장으로 들어가는데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싸다고 하는 승용차가 떡하니 내 앞을 막고 서는 

것이었다. 나는 의아해 하며 비켜달 라는 손짓을 했더니 그쪽에서 아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알고 보니 내가 나오는 일방통행 길 로 들어간 것이었다. 비싼 차 뒤로 여러 대의 차가 줄을 서서 내가 비켜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 벌어 진 것이었다.

나는 순간 창피스럽고 당황했다. 차 좌우로 길게 쭉 그어진 흠집투성 이에 덕지덕지 붙은 테이프에 폐차 일보 직전의 운전석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고, 순간 당황하 여 후진도 못하고 쩔쩔매는 내 모습 이 부끄러웠다.

어떻게 겨우겨우 후진을 해서 차를 한쪽으로 뺐는데 내 앞을 스치고 지 나가는 차들의 운전자들 모두가 나 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 같아 더욱 부끄러웠다.

집으로 돌아와 차를 주차장에 세 워놓고 현관문을 들어오자마자 차 키를 내팽개치듯 거실바닥에 던져버 렸다. 다시는 운전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는 운전하지 않으리라 생각했 다.

저녁불공을 마치고 친구랑 통화하면서 오늘 낮에 할인점 주차장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 하며 다시는 운 전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 친구 낄낄 웃으며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러 냐면서 자기는 차를 폐차해야 할 정 도로 큰 사고를 내고도 지금 운전을 하고 다닌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일의 성사에는 항상 시련이 있다며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는 제법 철 학적인 말과 자신이 좋아하는 경전 의 한 구절이라며 들려주면서 나를 위로해 주었다.

전화를 끊고 한참동안 친구의 말을 생각했다. 그렇구나! 내가 너무 쉽게 포기하려 했다고 생각하니 다시 부 끄러워졌다. 낮에 주차장에서보다 더 많이, 정말 많이 부끄러웠다.

「일을 도모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 지 말라. 일이 쉽게 되면 뜻을 경솔 한 데 두게 되나니, 그러므로 성인이 말씀하시되 많은 세월을 두고 일을 성취하라 하셨느니라.」,

친구가 일러준 그 구절을 나는 인 터넷에서 찾아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보면서 마음을 다스리는〈보왕삼매 경〉의 한 구절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