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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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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18호 발행인 법등[구창회] 발간일 2009-09-13 신문면수 11면 카테고리 종단 서브카테고리 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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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박묘정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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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2-16 16:51 조회 2,69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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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하면서

올해는 사상 초유의 전세 대란이라고 한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우리 아파트도 재건축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두 집 이사 가기 시작 하더니 어느새 많은 집들이 이사를 갔다. 아파트 우리 줄에는 두 집만 남고 다 떠나가 버렸다 그들은 참 부. 지런 하게도 늦장을 부리다가는 이렇게 된다는 것을 미리 알고 그렇게들 일찍 떠나가 버렸다. 여러 해 뿌리 내리고 살던 곳을 아 무 미련 없이 그렇게 쉽게 떠날 수 있었을까? 아마 여러 해 동안 기다림에 지친 탓이었으리라.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을 하나 둘씩 보낸 나는 마음 한쪽이 점점 비어가고 있다. 드는 자리는 표가 나 지 않지만 나는 자리는 크게 표가 난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마 음만 비어가는 것이 아니고 아파트 전체가 점점 황폐해 지고 있다.

어제부터 갑자기 우리 동에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다. 기술자와 관리 사무실에 있는 직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고쳤지만 물은 오늘 이 시간 까지 잘 나오지 않는다. 이런 저런 일로남아 있는 우리들의 마음은 점점 불안해 지고 있다. 더운 여름을 피해서 선 선한 가을에 이사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된 판단이었다.

우린 문제가 더 커졌다. 딸들은 직장 따라 이 곳 서울에 그냥 있고 나는 남편 회사 근처인 안산 방향으로 옮기기로 했다. 먼저 딸들의 집을 구하기 위해 많은 곳을 헤맸다 말로만 듣던 전세대란이 실감 난다. 집을 구할 수 없고 어쩌다 나온 집은 부동산에 나오자 마 자 계약이 되어 버린다. 여러 날을 헤맨 후 적당한 집이 있었다.

그날은 밤이 늦어 다음날 와서 계약하기로 약속하고 집을 구했 다는 안도감에 편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일찍 부동 산에 찾아 갔다. 벌써 전셋집은 남의 손에 넘어간 후였다. 다른 부동산에서 계약을 했단다. 딸과 난 한꺼번에 기운이 쫙 빠져버린다. 며칠 후 우리는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지하철이 가까운 빌라 를 계약했다. 집을 구하러 다니다 지쳐버려 그냥 계약해버렸다. 돌아오는 길 홀가분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 좀 더 좋은 집이 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다 큰 자식들이지만 집을 구하고 나 니 공연히 마음이 아파 온다.

과연 자기들끼리 잘 살아 나갈까? 괜한 엄마의 노파심이겠지.

다음 날부터 내가 이사 갈 집을 구하러 다녔다. 동생과 함께 먼 저 지하철 4호선 산본 역 근처부터 찾아 보았다.

그 곳이면 서울과 가깝고 절에 가는 것도 그리 멀지 않아 내게 꼭 맞는 장소이다. 동생과 힘께 며칠을 디녔지만 역시 집은 구하기 힘들 었다 아니 집이 아예 없었다 다음날 안산의 끝에서부터 찾아 보았다.

지하철 고잔 역 근처에 그나마 한두 집 나와 있었다. 산본 보다 전세 비용도 많^ 저렴했다. 더 돌아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다른 집을 찾다가 또 놓칠 것 같아 적당한 집을 찾아 바로 계약 했다.

너무 멀리 이사를 가서 절에 갈 때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걱 정이고 서울에서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지장을 받을 것같다. 한편 그 동안 님편이 많은 고생을 했었는데 가까이 오게 되어 다행이다. 계약 을 하고 돌아서니 숙제를 끝낸 것 같아 마음o| 가벼워 졌다

이제부터 이사 갈 준비를 해야겠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다. 이사 해 본지 너무 오래되어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사를 한다는 것은 뿌리를 뽑는 일이다.

우리 가족의 뿌리를 뽑아 이사 가는 곳에 옮겨 심어 잘 적응 할 수 있을지 걱정 된다. 나무도 뿌리를 뽑아 다른 곳에 옮겨 심 으면 몸살도 앓고 바짝 마르기도 하고 잎도 누렇게 뜨기도 한다. 갖은 고생 후에 겨우 정산을 차리고 다시 살아 닌다 사람도 살던 곳에서 이사를 간다는 것은 나무를 옮겨 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 가족들의 나무는 다시 심은 곳에 뿌리를 잘 내리고 더욱 더 싱싱하게 잘 클 수 있으리라 믿는다. 새로운 장소에 대한 호기 심과 긴장감이 생활의 활력소가 될 수도 있다.

우리 가족 모두 새로운 곳에 뿌리를 잘 내리고 더 잘 자라 사 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유 익하고 멋진 나무가 되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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