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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상 없는 곳에 부처가있다” 조용히 알려 주시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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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21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09-12-20 신문면수 10면 카테고리 특집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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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심일화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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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2 07:24 조회 2,34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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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상 없는 곳에 부처가있다” 조용히 알려 주시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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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24안거를 보내신 기원정사



멀고도 먼 땅, 인도를 다녀왔 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 2500년의 유수한 세월이 흘 렀지만 현지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여러 풍습이나 종교관 등이 크게 변한 것이 없다고 한 다,

실제 시골의 들판모습을 보면 목가적이고 풍요로워 보이긴 하 지만 맨발로 다니는 모습이라든 가 어린 여자들이(13세,15세 정 도)아기둘, 셋을 안고 걸리고 다 니는 모습은 어티든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인도는 여자 13세 정 도가 되면 결혼을 시킨다고 한 다.

12월4일 오전 10시50분에 출발 한 비행기는 홍콩과 방콕을 경 유해서 자정쯤 인도의 수도 델 리에 도착했다. 늦은 시간에 잠 시숙소에서 여장을 풀고 새벽3 시에 기상을 했으니 모두 잠은 포기한 채였다. 5일 새벽기차를 타고 7시간, 다시 버스로 5시간 을 달리고 달려 “쉬라바스티”에 도착했다. 저녁공양을 끝내고 전 날 일정이 빡빡한 관계로 수면 을 이루지 못한 터라 모두 일찍 자리에 들었다.

기원청사

다음날 6일 아침 8시에 기원정 사를 찾았다. 부처님께서는 이곳 에서 24회 하인’거를 보내신 곳이 다다. 인도에는 동안거가 없으므 로 1년에 한 번만 우기철에 석 달간 안거를 난다고 한다. 여기 서 24년의 안거를 보내셨으니 가 장 많은 법을 설하신 곳이기도 하다. 기원정사는 깔끔하게 정돈 된 넓은 정원이었다. 유난히 새 들이 지저귀고. 원숭이들이 보리 수 나무 사이로 껑충껑충 뛰어 놀았다. 부처님께서 거처하시던 방은 붉은 벽돌 칸(여래향실)으 로 흔적만 남아 있는데, 우린 이 곳에서 육법공양과 음성공양의 예를 올렸다.

1250명의 승려가 금강경을 듣 던 자리, 깨달음을 향한 징검다 리가 "금강경"안에 놓여 있다고 하는데, 바로 그 자리에 섰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잠시 눈을 감고 “나”라는 존재, 어떤 인연으로 이 곳에 오게 '되었을 까를 생각해 본다.

1시간 정도 자유시간이 주어져 기원정사 주변을 산책도 하였다. 새들이 지저귀고 꽃이 만발한 곳에서 우린 설마 꿈이 아닐까 서로 꼬집어 보기도 하며 믿기

지 않은 현실을 확인해 보기도 했다.

룸비니(탄생지)

다시 정오경 네팔에 위치해 있 는 룸비니 동산으로 향했다. 쉬 라바스티에서 룸비니 동산으로 가는 길은 사방이 탁트인 평원 으로 푸른 사탕수수와 노란 유 채꽃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쌀농 사는 이모작이라고 하는데 벼룰 벤 곳도 있고 아직 그대로 벼이 삭이 남아 있는 곳도 보였다. 어 둠이 오고 국경을 넘어 네팔 숙 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7시경 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9시 경, 사방이 칠흙같이. 어두운 밤 에 세계평화대기원 탑 앞에서 촛불기원행사를 겸해 탑돌이를 했고 목청껏 찬불가를 불렀다. 우리의 불음이 온 누리에 퍼져 나가도록 말이다. 하늘에 별이 쏟아질 듯한 아름다운 곳이었다.

7일 오전7시경 룸비니 동산으 로 출발했다. 부처님께서 탄생하 신 곳. 약 2500년 전 석가족의 왕국이 이 지방에 있었고 국왕 정반왕(슛도다나 왕)의 부인 마 야대비왕비가’ 산일이 가까워지 자 친정을 향해 길을 가던 중 이 동산에 이르러 휴식을 취하게 되었는데, 이때 백화만발한 꽃동 산을 거닐던 마야대비부인이 '꽃 이 만발한 무우수 나무 가지를 잡는 순간 갑자기 오른쪽 옆구 리로 아기가 탄생하였다.

지금은 마야대비 부인을 기념 하는 사당과 출산 후 목욕을 하 였다는 연못이 남아있다. 이 연 못을 바라보고 선 수백년 묵은 아름드리 보리수 나무 옆에 한 수행자가 평온한 얼굴로 좌선을 하고 있었다.

탄생이 없으면 성도와 열반이 어찌 있으랴. 모두의 마음에 환 희심이 절로 솟아 음성공양의 여운이 길게 퍼졌다. 어디선가 따뜻한 훈풍이 불어왔다.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마지막 구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반야심경 한 구절 한 구절에 마 음을 담는 것으로 예불은 끝났 다.

연못 뒤에는 마야데미 사원이 있었고 사원안에는 부처님의 갓 난아이적 발자국이 바위에 새겨 져 있었다. 사원입구에는 아쇼카 석주가 세워져있다. 최초로 인도 를 통일한 아쇼카왕(기‘원정 269〜232년)은 기원전249년에 룸 비니를 방문, 탑4기와 석주1개를 세웠다. 부처님 입멸 후 250년, 지금으로부터 2250년 전의 기록 이다.

쿠시나가르(열반지)

정오쯤 다시 국경을 넘어 인도 의 쿠시나가르로 향했다. 탄생지 를 답례하고 곧바 로 열반지로

아쇼카왕 석주.

향햐다니, 그것도 일몰이 되기 전 도착해야 우리가 준비한 행 사를 치룰 수 있다니 마음이 바 쁘기만 하다.

다시 끝없는 들판이다. 한가롭 게 풀을 뜯는 소, 염소 떼들..그 리고 낙타도 보인다. 오래된 아 름드리 나무가 많고 움막같은 곳에 사람들이 산다. 어찌보면 원시의 삶 같고 어찌보면 자연 인 그대로의 모습같다. 덜컹거리 며 흔들리던 버스는 해질녘에야 쿠시나가르에 도착했다.

부처님께서 마지막 숨을 거둔 자리는 아담한 사원으로 안락한 느낌이 들었다. 열반사 입구에서 모두 신발을 벗었다. 계단 양쪽 에 도열해서 불교종단협의회에 서 준비한 가사를 마주 잡고 열 반당 안으로 향했다. 그 곳에 머 리는 북쪽으로, 한 손은 머리를 베고, 두 발은 포갠 채 부처님께 서 누워 계셨다. 열반상 위로 천 천히 가사를 덮어 드리고 석가 모니불을 염송했다. 일몰이 오면 정확하게 문을 닫는 관례가 있 어 모두 밖으로 나왔다. 문 밖에 서, 어둠 속에서의 음성공양이 있었다. 부처님께서 숨을 거두신 그날(인도력으로 2월 보름)은 보 름달이 떴다고 한다. 사라나무 숲, 보름달 아래서 열반하셨다.

찬불가 가사에도 있는 구절이 지만 “부처님은 어디 계실까?” 귓전에 조용히 알려 주시는것 같다. “너라는 상이 없는 곳, 거 기에 내가 있다”라고 말이다. ,

일 아침, 아직 여명이 걷히기 전 다비장을 다시 방문했다. 전 날 서둘러 나오는 바람에 사리 를 모셔둔 열반사 뒤쪽 다비장

을 참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비장을 3번 돌며 석가모니불 을 염송하고 나서야 우리의 발 걸음이 가벼워진 듯 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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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탄생지 룸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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